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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한계에 다다른 의료 지원”

2016.09.13

캐나다 출신 간호사 크리스탈 반 리우벤(Crystal van Leeuwen)은 7개월간 예멘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활동을 총괄하는 일을 하다가 이제 막 돌아왔다. 국경없는의사회 긴급구호팀의 일원으로서 반 리우벤은 시리아,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나이지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참여했고, 서아프리카에서는 에볼라 대응 활동에도 함께했다.

지부티에서 비행기를 타고 예멘 수도 사나로 들어갔을 때, 활주로 양 옆에는 파괴된 항공기 잔해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전쟁의 피해가 있는 나라라는 것이 분명했죠.

7시간에 걸쳐 타이즈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산지 곳곳에 돌로 지은 오래된 집들을 지났습니다. 그런 작은 마을에서는 지금도 평범한 시골 생활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관광객으로 예멘에 온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2년 가까이 이어진 분쟁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무려 30군데가 넘는 군 검문소를 지났고, 무너진 교각이며 파괴된 고가 도로 그리고 유산탄 파편들이 사방에 보였으니까요.

타이즈만 해도 그렇습니다. 도시 대부분이 전쟁의 극심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텅 빈 거리는 바리케이드로 꽉 차 있었고, 건물들은 파괴돼 있었으며, 폭탄으로 생긴 움푹 패인 곳들과 아직도 전투가 벌어지는 교전선이 도시 곳곳에 있었습니다. 당시 국경없는의사회 건물과 사무실은 교전선에서 꽤 가까워서 밤낮으로 폭격과 공습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리를 들으면 폭격 방향이 어디인지 금세 알 수 있을 정도였죠. 그때 이후로 우리는 병원 건물 안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제가 머무른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이런 상황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분쟁과 공포의 한가운데에서도 일상생활을 이어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장도 계속 열리고 거리에는 사람들 모습도 보이지만, 과연 언제 어디서 공습이 벌어질지, 어디에서 폭격과 유탄이 터질지 결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곳 사람들이 늘 안고 살아야 하는 공포를 생각하니 너무도 슬픕니다.

타이즈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하는 활동 중 하나는 모자 병원 운영입니다. 원래 호텔과 쇼핑몰로 쓰려던 건물 안에서 운영되는 곳이죠. 우리는 5세 미만 아동을 위한 지원과 생식 건강 서비스를 지원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제왕절개, 출산, 산전/산후 지원, 가족계획, 영양, 신생아 지원, 소아과 지원 등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민 대부분이 이러한 무료 서비스를 어디서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설은 지역민들에게 크게 환영 받고 있습니다.

그 병원에서 태어난 첫 번째 쌍둥이를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그 아이들은 우리가 처음 받았던 위독한 신생아들이었습니다. 젊은 초산의 산모에게서 겨우 임신 7개월 만에 태어난 이 쌍둥이들은 제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몸이 작았습니다. 너무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아이들이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낮았지만 우리 직원들은 두 생명을 살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베이비 워머’라 불리는 따뜻한 램프가 달린 침대를 이용해 아이들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했습니다. 무척이나 아슬아슬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을 긴급히 소생시켜야 하는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7주 뒤에는 쌍둥이 올라(Ola), 오스만(Osman) 모두 매우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시킬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얼마나 고마워하셨는지 모릅니다. 병원을 떠나는 부모님의 얼굴에 만족감이 가득한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뻤습니다.

시내를 지나가는 교전선 반대편에서, 우리는 생식 건강을 지원하는 보건소 시설과 소아과 병원을 도우면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전선 양쪽에서 외상 응급실을 지원하거나 혹은 직접 운영하면서 분쟁으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8월 중순 어느 날, 평화 협상이 결렬되고 다시금 폭력이 격렬해지면서, 타이즈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시설에서는 여성과 아동 19명을 포함해 전쟁으로 부상을 입은 민간인 59명을 받았습니다. 대개 폭발, 저격, 유산탄, 지뢰로 인한 부상이 많고 교통사고 피해자도 많습니다. 좀더 특수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돕습니다. 하지만 타이즈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교전선 사이에 갇혀 지내는 지역민들은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제한된 의료 서비스로 어떻게든 이겨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멘 전역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인도적·의료적 필요사항은 어마어마합니다. 좀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도 선명히 알 수 있습니다. 폭력 때문에 집에서 떠나 피난 중인 사람들에게는 필수 구호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1차 의료 지원, 만성질환 지원도 필요하죠. 생명을 살리는 모자 보건 지원, 그리고 고도의 수술과 재활 지원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택해,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최선의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예멘에서 일하면서 특별히 이것이 어려운 이유를 찾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나에서 우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 프로그램은 우리의 안전지대 밖의 일입니다. 바로 신부전 환자들에 대한 투석 지원이죠. 우리가 이 일에 관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국경없는의사회처럼 신속하게 개입하여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부전 환자들의 경우, 치료를 중단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병의 진전 상태에 따라 치료를 중단하면 금세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아주 느리고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환자들은 분쟁으로 인해 집에서 탈출한 경우가 많고, 의료 시설을 찾아 또 한번 피난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직 훼손되지 않았고 의료 물자도 충분히 구비하고 있으며 환자들이 그리 많지 않아 새 환자를 받을 만한 시설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타이즈 포위 지역에 있는 알-타우라 병원 외래병동 앞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 리더 크리스탈 반 리우벤. 이 지역은  2015년 8월 후티 세력에 의해 포위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5개월 동간 고립지역으로 의료 구호 물자를 들여 갈 수 없었다. 그 기간 동안 국경없는의사회가 통행 승인을 받고 고립지역 안에 있는 알-타우라 병원에 의료 구호 물자를 들여간 것은 1월 16일뿐이었다.

예멘의 의료 지원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어 왔습니다. 아동 예방접종 프로그램과 같은 예방 차원의 의료 지원이든, 1·2차 의료 지원이든, 암·만성질환 치료와 같은 3차 의료 지원이든 관계없이 말이죠. 의료 기반시설 자체도 전쟁으로 막대한 영향을 입었습니다. 현재 예멘 전역에 걸쳐 병원들과 의료 센터들은 국제인도법이 보장하는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병원들과 보건소들이 공습, 폭격, 총격을 맞아 훼손되거나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렇게 피해가 있던 시설 중에 국경없는의사회 병원들도 있습니다. 예멘에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을 겨냥한 가장 치명적인 공격은 8월 15일 아브스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19명이 숨졌고 24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아브스에서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그 밖에 예멘 북부의 사다·하자 지역에서 우리가 지원하는 다른 병원 5곳에서도 직원들을 철수시킨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몇몇 헌신적인 보건부 직원들은 불안전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사회를 지원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가 철수한 병원들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예멘에 있는 모든 의료진과 환자들은 자신들이 전쟁 속에 살고 있다는 불안한 사실을 인식한 채 살고 있습니다. 민간인들과 군사적 표적 사이에 구분을 거의 두지 않는 그런 가혹한 전쟁 말입니다.

예멘에서 아직 운영을 지속하고 있는 공립 병원들의 병상은 환자들로 가득합니다.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사립 진료소뿐인데요. 지금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 그러한 사립 병원이 요구하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현지 의료진의 헌신적인 태도를 보며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쟁은 그들과 그들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끼쳤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일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의료 시설까지 오려고 교전선을 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검문소에서 줄을 서고, 대치하는 양 군대 사이의 중간(무인) 지대를 건너며, 저격수 공격의 위협도 무릅쓰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탈출한 경우가 많은데, 정작 자신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돕겠다고 계속해서 목숨을 거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분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