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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세계폐렴의날] 폐렴 이야기

2016.11.10

폐렴의 실체는 아주 무섭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매년 100만 명의 아동들이 폐렴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폐렴을 예방할 백신이 분명 존재하는데, 많은 국가들이 이를 확보하기엔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이자(Pfizer),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 두 회사는 저소득 국가들과 인도주의 단체들을 위해 아동 1명당 폐렴 백신 가격을 5달러까지 낮춰야 합니다.

Bangassou - multi antigen vaccination campaign.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방가수 병원 소아과 병동에서 일라리아 모네타(Ilaria Moneta) 박사가 동료들과 함께 환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Sandra Smiley/MSF

일라리아 모네타 박사 |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출신 소아과 의사

가장 인상 깊었던 환자 중에 생후 18개월 된 남자 아기가 있었어요. 폐렴과 중증 영양실조를 앓던 아기인데요. 입원할 때는 너무 약했는데, 열흘간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어요. 아시다시피 어린 아이가 병원에 그렇게 오래 있는 건 좋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 작은 아이는 놀라운 회복을 보여 주었죠. 퇴원할 즈음에는 상태가 너무 좋아서 제가 갈 때면 늘 함박웃음을 지었고, 제 손을 잡고 같이 어울리려고도 했답니다.

그런데 어제 후속 진료가 있어서 아이가 병원에 다시 찾아 왔는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일주일 사이에 몸무게가 많이 줄어든 거예요. 그렇게 어린 아이에겐 안 좋은 신호죠. 얼른 봐도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어요. 더 이상 저도 못 알아보고, 슬프게 축 처져 있는 모습이 영 다른 사람 같았어요. 다시 입원시켜서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다행히 아이 가족이 시내에 살고 있어서 병원까지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아요. 그런데 오늘은 오지 않은 걸 보니 아이가 잘 지내고 있나 봐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33세의 미국 청년 존존(JonJon) 

폐렴을 앓았던 그 달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2010년 12월 초, 몹시 춥던 어느 화요일이었어요. 감기에 걸렸구나 싶었는데, 목요일쯤 되자 지독한 독감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토요일 아침,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폐렴구균 진단을 받으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죠.

열이 펄펄 끓는데다 눈앞도 잘 안 보였고, 숨쉴 때마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만 같았어요. 공기를 들이마시는 게 어찌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말 그대로 익사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어떻게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이 저를 진정시키려고 마취제를 놓을 때, 제가 계속 헐떡거리면서 엄마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진짜 제가 죽는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며칠 지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저는 기계를 달고 숨을 쉬고 있었어요. 알고 보니 제 폐가 너무 심하게 감염돼서 오른쪽 폐는 3분의 1만 산소를 들이마실 수 있는 상태였어요. 그 후로 2주간 저는 폐렴과 사투를 벌였어요.

기계를 떼고 집에 돌아간 건 제야 직전이었어요. 그간 내내 누워 있으면서 몇 주 동안 단단한 음식이나 물을 못 먹어서인지, 저는 너무 허약해진 나머지 걷거나 혼자 서 있기도 힘들었어요. 폐 기능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몇 킬로미터를 조깅한 것처럼 숨이 찼어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완치했어요.

이 일을 무사히 잘 겪어 냈다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저는 그 누구에게도 폐렴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말하고 다녀요.

35세의 영국 청년 개리(Garry)

비행기를 타고 방글라데시에서 터키로,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이틀 동안 뭔가 이상했어요.

그날 늦게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면서 이유를 알았죠. 더운 나라에 있는 사무실은 왜 그렇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춥게 지내는 건지 모르겠다며 아내에게 한탄을 늘어놨어요. 저는 그런 나라들에 갈 때면 늘 감기에 걸려요. 이번엔 집에 돌아오면서 감기를 달고 온 거죠. 그런데 좀 이상한, 지독한 감기였어요. 콧물이 나면서 가만히 시작하는 게 아니라, 뭔가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저는 평소대로 했어요. 쉽게 본 거죠. 그런데 이번 감기는 뭔가 천천히 달궈지는 버너 같았어요. 더 잘 설명하자면 폐가 근질근질했어요. 바이러스가 있는데 더 커져서 나오려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는 상태랄까요. 기침이 나지는 않았어요. 딱히 아프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죠.

엿새 후, 이메일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요.

그 다음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세상에 그런 느낌은 없었어요. 사원에 앉아 있는데 얼음 팩으로 갑자기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 얼음이 피부를 뚫고 들어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걷잡을 수 없이 벌벌 몸을 떨었어요. 계단에서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들더라고요. ‘침대에서 일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스크린에 시선을 모을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눈을 감았고, 이후 1시간 동안 환각 상태에 빠졌어요. 눈앞에는 방글라데시와 관련된 일들이 전날 밤 봤던 스릴러 시리즈랑 온통 뒤섞여 나타났어요. 다시 정신을 차렸더니 이번엔 얼음물이 너무 마시고 싶더라고요. 아래층으로 내려가 쓰레기통을 치우고, 냉장고 앞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얼음통에서 얼음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너무도 힘들었어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동안에만 몇 번을 쉬면서, 겨우 몇 분 만에 냉장고 앞에 다다랐죠.

이틀 뒤, 의사인 친구에게 연락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사흘간 열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병원에 찾아가 보지 않아도 될까?” 그랬더니 그 친구는, “아직은 괜찮아. 조금 더 기다려봐.”라고 했어요.

다음날도 비슷했어요. 뭔가 날카로운 것이 오른쪽 옆구리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몰려오기 전까지는요. 그렇게 되자 숨쉴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어요.

우선 콜택시를 부르고, 모든 것을 취소한 뒤 병원에 갔어요. 택시기사가 저를 내려주면서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를 해주더군요.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마치 꿈 같았어요. 주사를 맞고, 휠체어를 타고 가서 X-ray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위험한 폐렴에 걸리셨네요.”라고 했어요. 몇 시간 있다가 주사도 몇 개 더 맞고, 항생제를 한 박스 받아서 집에 돌아왔어요. 정말 상황이 절묘했어요. 기침할 때 피가 나오기 시작할 즈음에 약을 먹고 있었던 게 참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최소한 뭔가를 복용하고 있었더니 며칠 지나니까 훨씬 상태가 좋아졌어요.

앞서 제가 연락했던 그 의사 친구랑 농담을 했어요. 그때 병원에 오라고 하지 않은 건 너무 조심성 없었다고 말이죠. 그랬더니 그 친구는 “아직 살아 있잖아, 안 그래?”라고 답하더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중에는 좀더 체크할 게 있는지 봐주겠다며 제 X-ray 사진을 직접 보겠다고 했어요. 그 후로 며칠간 별 소식이 없기에 제가 전화를 걸었죠.

“X-ray 사진 잘 봤어?”

“물론이지. 이제 괜찮아. 아주 매력적인 폐로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