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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알레포 동부: 망가진 다리, 파괴된 마을

2016.12.05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스케치로 담은 아부 아흐메드(가명/27세)의 모습 ⓒNatasha Lewer/MSF

얼마 전, 알레포 동부에 사는 아부 아흐메드(가명/27세, 컴퓨터 수리공)는 친구들과 만나 커피를 마시러 가던 중 집속탄(cluster bomb: 다량의 소형 폭탄이 들어 있는 폭탄) 공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4주가 지났지만 다친 골절은 아물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터키에서 특수 정형외과 수술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아흐메드는 포위된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다. 종일 누워 지내는 아흐메드는 최근 벌어진 무자비한 공습 속에 동네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것을 절망 속에 바라보고 있다.

2016년 11월 24일과 28일, 아흐메드를 만나 그가 겪은 일들을 들어 보았다.


“한 달 전, 친구들과 만나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어요. 매일 아침 그러곤 했거든요. 그날 친구들은 모두 약속 장소에 늦게 왔고, 사고 당시 현장에는 저밖에 없었어요.

이웃집 근처에 서 있었는데, 미사일이 제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실제로 미사일을 보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부리나케 근처 건물로 뛰어갔지만…저는 그렇게 빨리 피하지 못했어요.

알고 보니 집속탄이었어요. 폭탄 몇 개가 주변 여러 건물을 강하게 내리치면서 폭발했고, 유산탄 조각 하나가 제 왼쪽 다리를 뚫고 들어왔어요. 그것 말고는 피부 여기저기에 상처가 좀 났어요.

충격 속에 땅바닥에 누워 있으니 제 몸 일부가 없어진 느낌이었어요.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제게 다가오지는 못했어요. 사방에 아직 터지지 않은 폭탄들이 널려 있었거든요. 그런데다가 1차 공격에 뒤이어 2차 공격이 있을지도 몰라 다들 무서워했어요. 지금 벌어지는 공격들이 그런 식이에요. 그래서 모두들 전투기가 완전히 지나갔다고 확신이 들 때까지 5분 정도 그대로 기다렸어요. (편집자 설명: 소위 ‘더블 탭’ 공격 — 1차 공격 피해자들을 도우러 가는 사람들을 겨냥해 사상자를 최대화하는 공격으로, 사람들에게 피해자를 도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함)

사람들이 저를 부축하려고 했고,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어요. 사람들이 불러준 구급차가 다행히 도착했어요. 병원이 가까워서 몇 분 안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공격이 벌어진 뒤로 파편과 시체 때문에 도로들이 막혀 버려서 다른 길로 가야 했어요.

아부의 X-ray, 폭발의 영향으로 다리는 탈구된채 허벅지 뼈(대퇴골)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MSF

병원에 가서 다리 X-ray를 찍고 바로 수술실로 향했어요. 저는 다리가 탈구되었고, 대퇴골은 산산조각이 났어요. 절단을 해야 하냐고 물어 보니까 의사 선생님은 그렇지는 않다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저는 1층인가 2층에 있는 방으로 옮겨졌어요. 굉장히 작은 방이었고, 공습을 받아 훼손된 곳이었어요. 창문에는 셔터나 유리창도 없었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드나들었어요.

그런 방에 있으면 언제 또 공격을 당하지는 않을까 계속 공포에 떨게 돼요. 뻥 뚫린 창문으로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도 들렸어요. 1시간쯤 지나니 도저히 그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어서 집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집에 갔더니 이미 어두워졌어요. 그래서 이웃들이 와서 저를 1층 제 방에 옮겨다 침대에 눕혀 줬어요.

좀 쉬어 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여전히 전투기 소리가 들렸고, 주변에서는 미사일이 폭발하는 소리도 들렸거든요. 그날 밤, 공습은 한시도 멈추지 않았어요.

병원에서 처방해 준 항생제와 진통제는 별 소용이 없었어요.

1주일 후, 상태가 좀 나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잠을 못 이룰 정도로 통증이 심했어요. 하지만 구급차가 없으니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막상 간다고 해도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좀더 빨리 상태가 나아질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간호사인 친구들, 그리고 전통 치료법을 알고 계신 어르신들의 조언을 듣고, 주변 분들한테 우유랑 꿀을 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것들을 살 돈은 없지만 대출이라도 받을 생각이었죠. 하지만 그것마저도 거의 불가능했어요.

이따금씩 주변에 사시는 좋은 분들이 닭고기와 달걀을 갖다 주시기도 했어요. 포위 속에 살아가면서 다들 집에 닭 한두 마리씩은 기르거든요.

그 후로 16일이 지나자 이번에는 허벅지가 붓기 시작하는 거예요. 너무 아파서 건드릴 수도 없었어요. 통증 때문에 담요로 덮을 수도 없었어요.

병원까지 타고 갈 차를 구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도 힘든 일이었어요. 연료가 부족해서 거리를 다니는 차가 거의 없는 상태예요. 결국 구급차를 부르면서, “필요하다면 병원까지 기어서라도 갈 거예요.”라고까지 말했어요. 결국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이 나타날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렸어요.

의사 선생님 지시에 따라 다시 한번 X-ray를 찍었고, 병원에서는 한 달 있다가 다시 오라고 했어요.

알레포 외곽에 있는 한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을 아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제 X-ray 사진들을 그분께 보냈어요. 하지만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됐죠. 수술이 잘못 돼서 새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극히 희박했어요. 그 의사 선생님 말을 들으니, 국경 넘어 터키에 가서 특수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 소식을 들은 저는 사기가 떨어져서 식욕도 다 잃어버렸어요. 한 달 내내 저는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도 않고 뼈가 아물기를 기다렸어요. 한 달 동안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다 달라고 계속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는데, 요즘 약값은 전보다 5배는 들어요. 하지만 다 소용 없는 일이었어요.

포위 상태가 아니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겠죠. 알레포 동부를 벗어나 다른 의사 선생님도 만나고, 터키에 가서 치료도 받을 수 있었을 거예요. 저는 다시 도로가 개방될 때까지 전처럼 진통제에 의존해 하루하루 버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의 식구들은 대부분 터키에 있지만, 저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려고 알레포 동부에 남았어요. 누나가 방문 차 돌아왔는데, 집에 도착하던 날 폭격을 맞아 지금은 누나도 알레포 동부에 갇혀 있어요.

이제 저는 제 방조차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웃들도 그립고 바깥 거리도 그리워요. 바깥 풍경이 어땠는지 다시 떠올리려면 전에 찍어 뒀던 사진들을 봐야 해요. 고맙게도 친구들이 매일 저를 보러 와요.

폭격이 벌어질 때에는 방에 그대로 있어요. 아래로 내려가려고 해 봤자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우리 집은 고작 3층이라서 그들이 쏘는 미사일이 지상까지 그대로 건물을 뚫고 들어와요.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제 여기 있는 문들도 다 부서졌고, 옆 건물도 다 파괴됐어요. 거리도 다 막혔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집을 떠나려고 시도해 볼 거예요.”

*환자의 이름은 가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포위 지역을 벗어나 알레포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통행로를 허락해 줄 것을 분쟁 당사자들에게 다시금 요청한다. 또한 중상자·부상자들의 대피를 허용하고, 의료 물자 및 기타 필수품을 포위 지역에 들여오는 것을 허락할 것을 요청한다. 나아가 국제인도법에 따라 알레포 시를 비롯한 모든 시에서 무차별 폭격을 전면 중지하고, 민간인과 민간 건물을 겨냥하는 것 또한 모두 멈출 것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