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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남수단 증언: “나뭇잎밖에 먹을 게 없어요”

2017.06.05

2017년 6월 2일

엘리자베스 니아문(Elisabeth Nyamoun, 44세)에게는 자녀 8명, 손주 6명이 있다. 3개월 전 유아이(Yuai)를 탈출한 이후, 엘리자베스 가족은 피에리(Pieri)에 피신해 나무 밑에서 지내 왔다. ⓒAmandine Colin/MSF

피에리에서 석 달을 보냈어요. 시내에 어떤 사람 집 안에 있는 나무 밑에서 살고 있어요. 교전 때문에 온 가족이 탈출해서 피에리에 와 있어요. 유아이에서는 무장한 사람들이 와서 사람들을 죽여요. 그래야만 이길 수 있거든요. 마을에 와서는 총도 쐈어요.
 

집을 떠나 피신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2013년에도 한번 탈출을 했었죠. 당시 전투가 벌어져 저는 말라칼에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유아이로 오게 된 건데, 다시 떠나게 된 거예요.
 

도망칠 때 아이들 몇몇을 잃어버렸어요. 도저히 아이들을 다 데리고 뛸 수가 없었거든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살해당한 사람이 15명, 총격당한 사람이 10명이 있어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피해를 입었죠.
 

2월 16일, 먹을 것을 찾아 사람들이 다시 시내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그날 하루 만에 30명도 넘는 여자들이 강간을 당했고, 어린 여자아이 2명은 살해를 당했어요.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었는데… 유아이 밖에 정착을 하려고 식량, 옷, 그 밖에 필요한 것을 구하러 갔던 거예요. 그 일이 있은 뒤로 어떤 여자들은 의료를 받으러 랑키엔으로 갔지만, 다들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남편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안 해요.

여기서는 세 가지가 힘들어요. 거처가 없고, 먹을 것이 없고, 콜레라가 도사리고 있어요. 우리가 먹는 거라곤 나뭇잎 아니면 식량 배급으로 얻는 것들뿐이에요. 식량을 구하기란 쉽지 않아요. 수수 한 봉지를 받았는데, 그 정도면 대략 12일을 먹을 수 있어요. 아직 남은 게 좀 있는데, 식량 배급을 받을 수 있는 카드를 못 구한 사람들까지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사정을 해요. 주변 마을에서 오는 사람들인데 저는 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줘요.
 

식량과 물이 없어서 시내에는 혼란에 빠진 사람들도 있어요. 두고 온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차를 만들어 마시려고 하는데 시장에서는 너무 비싸고 우리에겐 돈이 없어요. 봉급을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장작을 사 올 수 있는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 물건을 팔지 못하면 시장에서 물건을 살 돈을 마련할 수가 없어요.
 

땅속 깊이 구멍을 파 놓은 시추공에서 물을 퍼다 쓰는데, 모든 사람이 쓰기에는 부족해요. 하지만 유아이에는 군인들이 다 사라진 뒤에야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살던 움막은 불에 타 버렸어요. 하지만 언젠가 돌아가고 싶네요.

 

윌리엄 뉴온 쿨랑(William Nyuon Kuolang, 41세)에게는 자녀 5명이 있다. 윌리엄은 올해 2월까지 유아이에 살았는데, 수단인민해방군(SPLA)과 반대 단체들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서 그곳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윌리엄은 가족들과 함께 피에리 인근 마을에 피신해 있었다. ⓒAmandine Colin/MSF

전투가 벌어져서 2월 15일에 유아이를 떠났습니다. 오후 2시쯤 무장한 남자들이 우릴 공격했거든요. 저는 아내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요. 도망치듯 떠나는 바람에 뭘 챙겨 올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를 안고 뛰쳐나왔죠.
 

그들(무장 남성들)은 시내에서 총을 쏴대기 시작했어요. 여자들과 소녀들, 시내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기까지 했어요. 제 자매와 조카들도 죽였고, 제 아버지와 삼촌도 죽였습니다. 여자를 죽일 때는 질에다 막대기를 꽂아 놓고, 아이를 죽일 때는 항문에 총알을 꽂아 놓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사는 움막에 불을 지르고, 가축도 빼앗아 가고, 심지어 마을에 있는 시추공까지 전부 망가뜨려 놨어요. 유아이에 살 때 제법 넓은 밭과 가축도 있었는데, 가축들도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유아이는 살기 좋은 곳이었어요. 의약품도 많이 구할 수 있었죠. 하지만 도시를 공격한 그들이 의약품이며 옷들을 전부 빼앗아 갔어요. 이제 아이들이 아플 때 줄 약도 없고 옷도 없어요. 게다가 아이들은 이제 나무 밑에서 잠을 자고 있어요.

 

저는 매일 피에리에 옵니다. 걸어서 네 시간 정도 걸리는데, 애들 먹을 것을 찾으러 오는 거죠. 그리고 전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 보려고 오기도 합니다. 그들이 와서 피에리 시를 공격할까 봐 식구들과 함께 피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아요. 지난주에 그들이 와서 3시간가량 있었습니다. 총격이 좀 있었는데 다행히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유아이에 있을 땐 식구들이 먹을 게 충분했어요. 지금은 구호 식량을 받거나 나뭇잎을 따서 먹는 게 전부예요. 나뭇잎을 먹고 나면 속이 아픈데, 설사가 나는 것도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1주일 전에 제 아이 중 하나가 콜레라로 숨을 거뒀습니다. 이름은 니야델이었고, 이제 다섯 살 된 아들이었어요. 피에리에는 의약품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지만, 결국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바로 다음날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시추공에서 물을 구하지만, 마을 사람 전체가 쓰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피에리에 오는 것이기도 하죠. 제가 사는 마을보다 그래도 여기는 물을 구하기가 더 쉬우니까요. 우기가 오면 아마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도 물을 구할 수 거예요. 하지만 비가 오면 플라스틱 같은 게 필요할 겁니다. 지금은 나무 밑에서 지내고 있는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니안 차르(Nhiaan Chaar *, 29세)는 유아이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약사로 활동했다. 2월에 아내와 세 자녀를 데리고 유아이를 떠난 그는 피에리에 와서, 다른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과 함께 이동 진료소 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기본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Amandine Colin/MSF

저는 유아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90년대 초, 부모님께서는 분쟁도 일어나고 더 이상 식량도 없다며 카르툼(수단의 수도)으로 떠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2004-2005년 평화 조약 체결 때 저는 카르툼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유아이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원래 피에리 출신입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가축이 많았는데 지금은 소 6마리뿐입니다. 유아이에서는 참 잘 살았습니다. 전투원들도 없었고, 평화롭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죠.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시작한 것은 20011년도였습니다. 처음에는 파견 진료 담당자로 일했고, 2014년에 약사가 됐죠. 일은 좋았습니다. 환자들도 많이 만나 봤어요. 의료진 17명을 포함해 직원은 30명쯤 되었습니다.
 

오후 2시경 그들이 와서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병원에 갔을 때 병원 관리자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으니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있으라고 했었습니다. 총소리가 들려서 우리는 환자들에게도 집에 돌아가 친지들과 함께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들(공격하는 사람들)은 진료소에 있는 것을 모조리 가져갔습니다. 재빨리 달아나지 못하는 사람들, 노인, 장애인을 죽이기도 했고, 강간도 저질렀습니다. 저는 노트북과 국경없는의사회 티셔츠만 챙겨서 이리로 왔습니다. 돈은 두고 왔습니다. 가족들과 여기 왔더니 장인어른께서 움막을 하나 마련해 주셨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돈도 좀 보태 주셨습니다.

(피에리로) 들어오자마자 우리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필요한 환자들에게 의약품을 나눠 주면서 바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의료진 6명, 경비원 4명이 1팀을 이루어 총 3 팀이 3개의 이동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건이 허락될 때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여기에 의약품을 가지고 옵니다. 항공기가 착륙하지 못할 때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을 만나러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합니다.


주사도 놓을 수 없고 흑열병 같은 병은 치료조차 할 수 없지만 이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됩니다. 때로는 필요한 약이 없어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생 환경이 나빠서 수많은 아이들이 병에 걸립니다. 이곳 마을이 의약품과 기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에리에는 약 3만2000명이 살았는데, 지금은 모두 떠났습니다. 그중 일부는 우간다•케냐•에티오피아의 캠프로 갔습니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 에티오피아로 갑니다. 하지만 거기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에티오피아로 갈 수 있지만, 여기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한 피에리를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피에리의 식량 상황은 몹시 나쁩니다. 시장에는 물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뭔가를 살 수도 없습니다. 비정부기구들도 대부분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돈이 돌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제 아내와 아이들, 제 자매의 부부와 그들의 자녀 4명, 그리고 장인어른 가족까지 세 가족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들 중 돈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제가 어떻게 에티오피아로 가겠습니까?
 

사람들은 콜레라를 무서워합니다. 무슨 증상이 나타나면 전부 콜레라로 여기고 진료소로 찾아옵니다. 지난주에 이 마을에서 23명이 숨졌고, 이번 주에도 4명이 숨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두들 콜레라로 죽은 것 같습니다. 지금 저희들은 환자들에게 콜레라 예방법을 설명해 줍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심지어 우리 집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계속 설명을 해 주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유아이가 좋습니다. 이곳 피에리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살던 집도 일부 훼손됐고, 제 모든 돈과 가진 것들을 그들이 훔쳐 갔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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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안상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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