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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에서 온 편지] 1화 - 한국 의사가 요르단으로 떠난 까닭

2016.12.08

오늘도 시리아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사상자 소식이 전해진다. 시리아 전쟁은 그렇게 5년을 훌쩍 넘겼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북부에서 현지 의료인을 통해 6곳의 의료 시설을 운영하고, 전역에서 150곳이 넘는 보건소 및 병원을 지원하고 있다. 주변 국가인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터키 등지에서도 시리아 난민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을 벌이고 있다. 그 중 요르단 람사 프로젝트는 시리아 전쟁 부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외과적 수술을 주로 실시하고 있다.

정형외과의 이재헌 활동가는 2016년 4월부터 6월까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Ramtha Hospital, Jordan

요르단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수술 집도 중인 이재헌 활동가 © Joosarang Lee/MSF

나는 동료들과 함께 칼을 들었다

무력분쟁지역으로 다가갔다. 아무나 갈 수 없는 지역, 아니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지역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를 보호할 무기 한 점 없이 갔다, 아니 어쩌면 무기가 없기에 더 떳떳하게 갈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믿는 것은, 즉 우리 단체의 무기는, 중립성이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종교적으로부터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그 바로 옆에서 함께 하고 있다.

나는 혼자 비행기에 올랐지만, 그곳에는 인도주의 깃발 아래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고, 나는 선임의 바통을 넘겨받아 그들과 함께 칼을 들었다. 이 수술용 메스로 총알 파편을 빼어내고, 폭탄으로 찢겨진 살들을 다듬고, 다친 뼈와 동맥, 신경과 같은 내부장기를 복구하기 위해 피부를 갈랐다.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시리아에 접한 지역으로 향하는 초행길이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납치와 감금에 대한 대처요령과 그럴 경우 단체에서 어떤 조치를 할지에 대한 숙지 사항을 읽고 서명을 했다. 여느 수련회에서 있기도 한 현재의 삶을 성찰해보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본인의 죽음을 상상해보며 가상유서를 적어보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나와 전쟁터 사이는 단 5분

프로젝트 현장은, 각별한 안전수칙들을 지켜야 하지만 염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훨씬 안전하게 느껴졌다. 람사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있는 요르단 국경 안쪽은 안전했다. 하지만 숙소에서 맨 눈으로 보이는 국경인 저 언덕 바로 너머부터는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왔던 그 죽음의 땅이었다. 총탄과 지뢰, 수류탄에 의해 손상된 환자들을 보며, 국경 너머가 어떨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국경을 넘어 병원으로 실려오는 환자 수는 시리아 남부의 정세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비교적 평온한 날이 지속되기도 하다가 환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몰려오기도 했다.

심한 손상으로 긴급하게 실려온 이 시리아인들은 자국의 보호는 기대도 못할뿐더러, 신원불명으로 내려온 환자를 요르단 병원에서도 선뜻 나서서 치료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의료시스템 자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 환자들에게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활동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배치되었다. 여기에는 의사, 간호사, 약사 등의 의료인 활동가뿐 아니라, 행정가, 법률가, 건축가 등의 무력분쟁지역 내에서 의료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을 담당하는 비의료인 활동가들이 또 하나의 큰 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 부상을 입은 시리아 소년의 회복 과정을 확인하고 있다. © Joosarang Lee/MSF

그래서 일기를 적었다

우리는 특별한 순간을 보다 선명히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 그 무언가는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선물이, 편지가, 그리고 일기가 될 수도 있다. 분쟁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가로 활동한 경험이 나에게 특별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일기를 적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내가 만난 팀원들과 환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일상을 지내며 눈을 돌리기 쉽지 않은 세상 너머에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내 자신이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적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다이어리는 시리아 국경이 보이는 람사의 밤공기 속에서 적은 글들이다. 수필의 형식으로 글을 적어보았다. 세상에는 아직 수많은 암흑이 있고, 또 수많은 희망릴레이가 있다. 희망은 작은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리아 분쟁지역에서의 다이어리가 누군가에게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희망의 끈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웹툰 [보통남자, 국경 너무 생명을 살리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1625/episodes

클릭하시면 웹툰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재헌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정형외과 전문의로, 2016년 요르단과 아이티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전부터 국제 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탄자니아를 비롯해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올해 요르단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일기로 적었고, 그 일기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