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로힝야 난민 위기 5년

잊혀가는 ‘세상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2017년, 77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미얀마에서 조직적 탄압을 피해 대규모 피난을 떠난 후 5년이 지났다. 그보다 더 과거에 고향에서 쫓겨난 주민과 합류한 대부분의 로힝야 난민은 방글라데시의 난민캠프에 정착했다. 현재 100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은 포화 상태가 된 임시캠프에서 인도적 지원에 의지하며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잡은 채 살아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국적 없는 민족’ 로힝야를 찾아 나섰다.

“아이들을 데리고 정글과 진흙길을 지나 방글라데시로 오는 길은 험난했어요. 방글라데시 국경에 도착해서도 쉴 곳이 없어 비가 많이 오면 나무 아래 앉아 도움을 기다리곤 했죠.” _타예바 베굼(Tayeba Begum) / 로힝야 여성

로힝야 여성이 가족과 콕스바자르 난민캠프 안에 위치한 임시 거처 앞에 서 있다. ©Saikat Mojumder/MSF

오래전부터 시작된 로힝야 난민 위기

미얀마 라카인(Rakhine)주에서 수백 년간 불교 사회와 공존한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는 1962년부터 체계적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78년 당시 군부정권의 통치를 받고 있던 버마(현 미얀마)는 ‘드래곤 킹 작전(Operation Dragon King)’을 개시했고 이 작전으로 로힝야족은 신분증을 압수당했으며 국적을 박탈당 했다. 이후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자행된 폭력으로 약 20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시간이 지나 군부정권이 로힝야족의 버마 귀환을 허락했지만, 대부분 신분증이 없던 상태라 버마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규정됐다. 1982년, 버마에서 새롭게 통과한 시민법으로 135개의 소수민족이 법적지위를 인정받았으나 100 만 명에 가까운 로힝야족은 대상에서 제외되어 무국적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1991년, 군부정권이 버마의 국호를 미얀마로 바꾸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라’ 작전을 개시하면서 수많은 로힝야족이 처형, 폭력, 성폭력, 강제 노동, 결혼 금 지, 토지 몰수, 강제 주택 철거 등의 피해를 입었다. 1992년, 20만 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고,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정부는 방글라데시로 유입된 난민을 미얀마로 송환한다는 합의서를 체결했다. 1992년 말, 국제 사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강제 송환이 시작됐고 1996년 말, 난민 대부분이 미얀마로 강제 송환됐다.

그러던 2012년, 미얀마에서 불교와 무슬림 사회 간 충돌이 빚어졌다.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집이 불탔으며, 사원은 파괴됐다. 생존한 로힝야 인구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캠프에 격리되 었다. 현재 이 캠프에는 14만 명의 로힝야족이 생활 하고 있다. 2016년 로힝야족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 년간 자행된 폭력, 법적 제한, 인종차별 등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다른 나라로 피난했지만 일부는 무력단체를 만들었다.

2017년, 미얀마 정부의 보안군이 로힝야를 겨냥해 근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군사작전을 개시했는데, 로힝야족 무장단체의 공격에 대한 보복성 작전이었 다는 의견도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집계에 따르면 이 폭력적인 군사작전 이후 약 6,9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77만 명이 강제 실향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들을 수용했지만 난민 지위는 부여하지 않았다.

“영국 식민지령에서 독립한 1948년 이후 정부는 우리를 시민으로 인정해줬습니다. 그땐 아무도 차별받지 않았는데, 1978년 인구 통계 조사 이후 모든 게 변했어요. 누가 미얀마 시민이고 누가 방글라데시 시민인지 규정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됐죠. 저는 목숨의 위협을 느껴 도망쳤지만 나중에 미얀마 정부가 우릴 다시 받아줬어요. 방글라데시 정부와 협정을 맺으면서 우리가 돌아오면 권리를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죠. 우리를 점점 궁핍하게 만들면서 박해가 시작된 겁니다.” _모하마드 후세인(Mohamed Hussein) / 65세 로힝야 남성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잠톨리(Jamtoli)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외래병동에 서 대기 환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Elizabeth Costa/MSF콕스바자르 쿠투팔롱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언덕 위의 병원’ 진료소. ©Saikat Mojumder/MSF

현재 로힝야의 상황은?

현재 미얀마에는 약 60만 명의 로힝야족이 남았다. 이들은 이동의 자유나 생계수단을 유지할 권리, 교육권이나 건강권 등을 전부 박탈당한 채 난민캠프나 라카인주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또한 수십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말레이시아, 인도, 파 키스탄 등에서 무국적자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방글라데시에는 약 100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있는데, 이들은 일을 할 수도, 정규 교육과정을 밟을 수도 없어서 오직 인도적 지원에만 의지해야 한 다. 뿐만 아니라, 캠프의 생활 수준은 매우 열악하 다. 깨끗한 식수, 위생 및 의료서비스, 안전한 거 처 등의 접근성은 차단되어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보장되지 않는 환경이다. 또한 캠프 내 과밀한 생활 환경과 밀접히 연관된 옴진드기 환자도 치솟아 최근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는 초등교육까 지만 제공이 돼요. 다른 배울 기회는 공동체 선생님들이 로힝야 아이들을 모아 가르쳐주실 때뿐입니다. 제 꿈은 의사가 되어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지만 이 꿈이 실현될 일은 없을 지도 모릅니다.” _안와르(Anwar) / 15세 로힝야 소년

"이제 여기서 산 지 5년째입니다. 2년 전에 병에 걸렸죠. 어지러움과 가슴 통증을 느꼈고, 의식을 잃고 쿠투팔롱 Kutupalong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16일간 심장 치료를 받고 마침내 회복했습니다.” _하시물라(Hashimullah) / 45세 로힝야 남성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원

국경없는의사회는 1985년 방글라데시에서 활동을 개시했고, 2009년 대규모 난민캠프가 위치한 콕스바자르에서 첫 야전 병원을 설치해 로힝야 난민과 방글라데시 지역사회를 위한 의료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방글라데시 당국과 협력해 콕스바자르에서 9개의 의 료시설을 운영하고 식수 펌프 설치 및 관리 작업도 지원하고 있다. 미얀마에 서는 라카인주에 남아 있는 로힝야 인구를 위해 필수 의료서비스, 정신건강 지원, 응급환자 및 전문 치료를 요하는 환자 이송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로힝야 난민 위기에는 여전히 장기적인 해결책 이 보이지 않는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돌아가긴 어렵다. 로힝야를 겨냥 한 조직적 폭력과 대규모 이동 이후 5년, 로힝야 난민 위기는 ‘잊혀진 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난민캠프엔 열병, 장염, 후두염 등 여러 질병이 많아 요. 열이 날 때면 목이 붓고 숨쉬기도 어렵죠. 한번은 앰뷸런스로 쿠투팔롱 병원에 실려가 3일 동안 산소호 흡기를 달고 있던 적도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면 국경없는의사회로 갑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도 그렇고요.” _나비 울라(Nabi Ullah) / 25세 로힝야 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