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국경없는의사회 윤호일 활동가의 이야기

동아프리카 수단의 움라쿠바(Um Rakuba)로 활동을 다녀온 내과의 윤호일 활동가를 만났다.

수단 현지 주민과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피난민을 위해 의료지원을 제공하고, 현지 의료진을 교육한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제가 활동한 수단 움라쿠바에는 인접국가 에티오피아의 티그라이(Tigray)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전 때문에 국경 근처에서 피난 온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피난민들을 위한 임시 캠프가 꾸려지면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지원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2년 정도 되어가네요. 분쟁과 피난에 대응한 긴급구호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환자의 약 60% 정도가 수단 주민이고 다른 40% 정도가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사람들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에서는 이들을 위해 1차 의료를 제공하고 있고, 외래 진료소, 응급실, 입원실, 영양 치료 센터, 분만실, 정신건강 진료소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Hoil Yoon/MSF

느닷없는 총소리에 집을 떠나 난민 캠프로 온 사람들

이곳은 풍토병인 흑열병(내장 리슈마니아증) 환자가 많기로 알려진 곳이었어요. 말라리아는 흔하고요. 영양실조 환자도 많았습니다. 영양실조로 오는 아동환자 중 95%가 수단 주민이었던 것 같아요. 수단 주민들은 아이를 가능한 많이 낳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보통 큰 아이가 젖을 떼기 전에 또 임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적절한 영양을 못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 매달 사망례 분석을 해보면 사망하는 환자의 절반 이상은 영양실조였어요. 모자보건 관련 문제도 심각했고, 각종 외상과 화상 환자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가정집 지붕이 짚으로 되어 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불을 때는 등 전반적인 주거 환경이 낙후되어 있어서 화재가 많은 편입니다. 난민 캠프에 사는 사람들은, 짐을 싸서 집을 떠나온 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마을에서 총소리가 들려 곧장 도망쳐 나와서는 정말 운 좋게 난민 캠프에 도착한 사람들이에요. 마을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소식을 전혀 알 수 없고,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가 없죠. 난민 캠프에 들어오고 나면 이곳에서 나가기가 힘들어요. 사실 ‘멘탈이 붕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을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축구 보면서 환호도 하고... 그게 저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동료와 함께. ©Hoil Yoon/MSF

치료의 지속성을 위해 노력하다

복수가 찬 젊은 남성 환자가 기억에 남아요. 계속 복통을 호소했고, 체중도 급격히 빠지고 있었죠. 결핵성 복막염이 의심돼서 복수를 빼는 시술을 했습니다. 파견 이후 복수 천자*를 처음으로 시행했던 환자였죠.

*복수 천자 : 복수를 채취해 검사를 시행하거나 복강 내에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고여 있는 복수를 제거해 복부 불편감을 감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 복수가 증가하면 복통이나 호흡부전을일으킬수있다.

검사 장비가 불충분하다 보니 쉽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정황상 결핵으로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지표가 있어서 결핵 치료를 시작 했어요. 이후 병원 밖에서 우연히 이 환자를 마주쳤는데요, 몰라보게 건강해진 모습에 무척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현지 직원들에게 제가 가진 의학적 지식과 술기를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복수·흉수 천자, 뇌 척수액 뽑는 시술, 기흉이 있을 때 가슴에서 공기를 빼내는 시술, 제가 현장을 떠난 후에도 이런 치료를 지속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였죠. 현장은 검사나 치료에 필요 한 장비도 부족하고, 술기를 가진 의료진도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 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큰 장비가 없더라도 시행할 수 있는 시술 위주로 교육했죠.

수단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들. ©Hoil Yoon/MSF

가장 필요한 곳으로, 가장 먼저 가는 국경없는의사회

난민 캠프의 환자들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존재를 정말 고마워합니다. 다른 병원은 애초에 갈 수가 없거든요. 수단 지역사회에서도 국경 없는의사회는 의미가 큽니다. 수단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죠. 수단 동료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단의 민간 병원에서 받는 치료와 국경없는의사회가 제공하는 치료의 질이 다르다고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은 편이죠. 현장에서 보니 국경없는의사회는 정말 특별한 단체였습니다. 이 특별함은 많은 개인 후원자님들이 모아 주시는 후원금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국제기구의 지원 을 받지 않고 대부분 민간 개인 후원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곳으로, 가장 먼저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