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주제보고] 전쟁의 연무 속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을 조정해 나가는

이유

제이콥 번스 Jacob Burns,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전 세계적으로 최근 수년간 벌어지는 전쟁의 개수는 물론 그 극단적 폭력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활동의 초점은 분쟁 지역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맞춰져 있는 만큼, 매 위기 때마다 우리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전개했던 대응 내용의 장단점을 진지하게 검토해 다음 위기에 보다 잘 대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모든 전쟁에는 제각기 다른 어려운 점이 생기는 법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전쟁 대응 내용이 부상자 수술, 다른 단체가 가지 못하는 외딴 지역에서의 실향민 지원 등으로 매번 동일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매번 특수한 상황에 따라 대응 활동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전쟁들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이 마주한 문제들 몇 가지를 언급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접근성 문제입니다. 분쟁 지역 당국이 국경없는의사회가 해당 지역 일부 혹은 전부에서 일하기를 원치 않아서 효과적 대응에 필요한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당국이 자신들에 대항하는 세력 혹은 그 세력 아래 놓인 사람들에게 의료지원이 제공되는 것을 원치 않을 때 발생합니다.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인들이 목격하길 바라지 않거나, 외국 단체가 의료보건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수단에서 그러한 문제를 겪어왔습니다. 2023년 4월 전쟁 발발 후 국경없는의사회 인력에게 비자 등 필요한 허가가 발급되지 않아 특히 카르툼 지역의 엄청난 의료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023년 10월에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수도에서 지원하는 병원 중 한 곳에서 일시적으로 수술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전히 전투 활동이 전개되고 있고 삼백만 명 이상 인구가 거주해 막대한 의료 수요에 비해 턱없이 지원이 부족한 곳인데도 말입니다. 외상 치료를 군대가 막고 있는 바람에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 역량의 극히 일부만 가동해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치안입니다. 전투가 너무 격렬해서 일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없으면 국경없는의사회 팀의 안전도 보장될 수 없습니다. 전투 세력 중 일부가 국경없는의사회 팀이나 병원을 공격하거나 팀원을 납치하는 등 표적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후 해당 지역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지금까지 활동 경험 중 치안 상황이 가장 극단적인 곳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의 폭격에서 자유로운 곳이 없으며, 병원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다수의 장소가 파괴되거나 기능이 중단됐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과 그 가족들이 자택에서, 출근길에서, 병원에서, 대피처에서 죽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국경없는의사회가 필수적 의료지원을 지속 중이긴 하지만, 이토록 잔혹한 전쟁 상황 속 수요 규모에 대응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역량 이상의 일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아마 덜 명확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국경없는의사회의 상관성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우리의 역할을 의료체계 내 공백을 메우는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로 어떤 상황에서는, 설령 전면전이 진행중일지라도, 국가 보건체계나 국제 원조가 대다수 의료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전문성이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과연 어떤 부가가치를 더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건지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고요. 때로는 우리가 처음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고, 달리 활동을 변경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이 생기는 거죠. ‘우리가 다른 곳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모든 분쟁 지역에서 반드시 활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우크라이나가 이러한 상황의 예시입니다.

헤르손 지역 병원 폭격 사건 후 국경없는의사회는 10월 20~22일에 걸쳐 약 150명의 환자를 의료 대피 열차에 태워 다른 지역으로 이송했다. 2023년 10월. ©Verity Kowal/MSF

전쟁으로 사상자 수가 많고 대규모 실향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지만, 국가 의료보건체계는 대체로 그 기능을 계속해 왔습니다. 게다가 막대한 규모의 국제 원조로 인해 수요 대부분이 충족될 수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의료 대피 열차 등 혁신적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한편, 재활 치료 등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활용해야 했죠. 그러한 성공들에도 불구하고 국경없는의사회는 우크라이나 일부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세계 다른 곳, 좀더 위급한 수요가 있는 지역으로 가용 자원을 옮기기 위해서죠. 물론 이러한 문제점들이 제각기 따로 떨어져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상관성 문제는 접근성 문제와도 연관돼 있습니다. 당국이 군대 내 부상자들 치료를 직접 담당하기를 선호한다면 국경없는의사회는 통상적으로 병원에서 직접적인 구명 지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선 지대에서 병원이 자주 공격당하는 등 큰 위험이 상존한다면
우리가 구명 치료 활동에 신경을 덜 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활동 전개의 이점이 직원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점들에 대한 고려가 전쟁 상황 속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전개할 수 있는 활동의 한계를 결정짓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나 다른 단체들이 전쟁 당사자들과 교섭해 낼 수 있는 공간은 때로 “인도주의적 공간”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반드시 지도상에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장소들에 영향을 미칩니다. 인도주의적 공간은 정치 및 군사적 제약과 치안 문제, 기존 의료보건체계의 역량을 감안하고나서 우리에게 남은, 활동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이 공간 안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가진 기술과 전문성,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자분들이 보내주신 재원을 최대로 활용할 방법을 결정하는 거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전쟁이란 상황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말입니다.


팔레스타인

2023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이스라엘-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해 부상당하거나 실향한 팔레스타인 주민 지원을 위해 활동을 재빨리 조정해야 했습니다.

가자지구

2023년 첫 3개 분기가 지나는 동안 국경없는의사회는 15년 이상 이스라엘-이집트 봉쇄 대상이었던 가자지구 지역에서 3개 병원과 여러 진료소를 통해 지역 의료보건체계를 지원해 왔습니다. 이때까지는 화상 및 외상 환자 대상 수술과 재활, 심리지원, 작업치료와 보건증진교육 등 종합 치료가 가능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10월 7일을 기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당일 이스라엘 영토에서 가한 죽음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팔레스타인에 전례없이 무자비한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수주에서 수개월 무차별 폭격이 계속되는 가자지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의료지원을 계속하는 한편 스스로의 안위를 보장하려 애쓰다가 남부로 대피했습니다. 이곳에서 수주간 차단돼 있다가 다국적 직원들은 라파 쪽 국경을 통해 빠져나왔으나,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직원들은 본인들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의료지원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이 전쟁의 사상자 중 여성, 아동과 고령층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식량과 의약품, 인도적 구호품이 가자지구로 반입되는데 수주 이상이 걸리거나 극소량만이 허용돼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외과의들이 마취제 없이 수술을 하게 되고,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는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우리가 목격한 것을 증언하는 것 역시 사명으로 여기므로, 전쟁 초기부터 가자지구 민간인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지속적인 휴전을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촉구해왔습니다. 그러나 의료보건시설에도 공격이 가해지고 의료보건 직원들 가운데 사상자가 늘어나는 등 상황은 더 악화했습니다. 우리는 가자에서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다섯 명의 직원과 그 외 수많은 동료 및 그들의 가족을 애도합니다. 가자지구 내 완전 혹은 부분 파괴된 병원들의 현실 역시 개탄합니다. 연말까지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폭격이 점점 더 심해진 칸유니스와 라파 등 가자지구 남부에서의 활동을 조정해 나갔습니다. 전쟁과 이스라엘 봉쇄가 지속되고 매일 사망자 수가 늘어나며 북쪽에서 백만 명 이상 실향민이 남부의 작은 땅에 군집하면서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고,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영양실조 위기마저 닥치고 있습니다. 12월 말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주로 가자지구 중부 및 남부에 있는 6개 병원 알 아우다, 알 아크사, 유럽, 나세르, 라파 인도네시아 및 에미레이트 모성 병원과 1개 진료소알 샤부라에서 활동 중이었습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는 수술 및 부상자, 재활 치료, 외래 진료및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하는 알 아우다 병원에 국경없는의사회 동료 몇 명만이 남아있습니다.

서안지구

2023년 10월 27일 제닌 병원에서 난민 캠프에 가해진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유입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 ©Faris Al-Jawad/MSF

10월 7일 공격의 여파는 원래 정착민들의 폭력이 증가 추세였던 서안지구를 포함한 점령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제닌 난민캠프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칼릴 술레이만 병원에서 응급 및 구명 치료를 계속 제공하면서 이스라엘군의 극심한 폭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헤브론, 나블루스, 칼킬야, 투바스 지역에서 폭력을 겪은 주민 대상 정신건강 및 심리지원을 계속했으나 때로 환자나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의 이동에 가해지는 위협으로 방해를 받았습니다.
9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H2로 알려진 헤브론 구시가지 지역 내 4~5개 장소 및 주민들이 철거와 강제 실향 위기를 겪는 서안지구 동남부 소재 마사페르 야타에서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10월 7일 이후 서안지구 내 증가한 폭력으로 인해 주민들의 의료접근성 및 의료보건 직원들의 활동 장소 접근이 어려워졌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11월부터 헤브론과 마사페르 야타 8개 지역에서 이동진료소를 확대 운영하는 것으로 이러한 어려움에 대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