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깨끗한 식수 공급이 몹시 필요합니다
폭력을 피해 미얀마를 떠나온 난민들 대다수가 제대로 된 거처와 식량, 깨끗한 물과 화장실을 찾기 힘든 임시 정착촌에 머물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남동부, 운치파랑(Unchiparang) 정착촌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식수위생 전문가 폴 야보르(Paul Jawor)에게 물어 봤습니다.
Q. 방글라데시 상황이 어떤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수십만 명이 오도가도 못한 채 기본적인 서비스를 거의 구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물론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난민들에게는 많은 것들, 특히 깨끗한 물 공급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논이나 웅덩이, 손으로 파서 만든 얕은 우물에서 물을 구합니다. 그나마 몇 개 없는 화장실 구덩이들은 이미 꽉 차 버려서 사람들은 야외에서 일을 해결하고 있고, 이 때문에 물이 더욱 오염되고 있습니다.
한 청년이 손으로 판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다. ⓒPaul Andrew Jawor/MSF
Q. 깨끗한 물에 대한 수요가 이렇게 높은데,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운치파랑에서 어떤 일들을 했나요?
이러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우리의 우선순위는 먼저 정착지에 마련한 진료소에 깨끗한 물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의료 시설에서만큼은 다른 병, 특히 설사 같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의료진은 손도 깨끗이 씻고, 물품도 늘 깨끗이 관리해야 합니다. 환자들은 약을 복용할 때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 한 일은 주요 수원이 되는 강물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염소 소독으로 깨끗해진 물을 하루 3만 리터씩 운반할 수 있는 대형 탱크에 긴 파이프도 설치했습니다. 특히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곳에서는 전통 방식의 ‘시추공’을 사용하되 보다 크고 안전하게 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현재 침투 ‘우물’을 파기 시작했고, 앞으로 이런 우물을 15-20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물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할 콘크리트와 물이 넘치는 것을 막아줄 작은 벽을 설치하고, 표층수의 오염을 막아줄 기구도 안쪽에 설치할 겁니다. 물론 우물물은 염소 처리를 하죠.
지표 상황과 몰려 있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시추공 설치 장소를 정하는 일이 몹시 까다롭습니다. 우리는 진료소 의료 기록을 살펴본 뒤, 보건 홍보팀 단원들과 함께 설사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는 곳들을 찾아냈습니다. 거처 주변에 우물을 설치하는 것과 더불어 큰 물통, 위생·소독 물품 키트도 제공하려고 합니다. 물론 정착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국경없는의사회 보건 홍보팀은 물 염소 처리법과 수도 관리법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예정입니다.
Q. 몇 달 뒤 운치파랑에 있는 난민들의 상황은 어떻게 될 거라고 보시나요?
건기가 다가오면서 더 많은 난민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모든 정착촌에서는 물 공급 문제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운치파랑의 경우,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2-3개월 안에 정착지를 가로지르는 강이 말라 버릴 겁니다. 그러면 시추공에서 얻는 물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겠죠.
우리는 건기를 버텨낼 계획 중 하나로 운치파랑 정착촌에 200㎥의 물이 들어갈 ‘수영장’ 4곳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빗물도 받고 지하수도 받는 거죠. 전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이 지역의 모든 사원과 일부 민가에는 그런 탱크가 있으니까요. 국경없는의사회는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 이라와디 삼각주를 강타했을 때 이 같은 체계를 수립했던 적이 있습니다.
임시 거주지의 천장으로 쓰이는 비닐을 오염된 물에 씻어내고 있다. ⓒPaul Andrew Jawor/MSF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여정
후마이라(Humaira)는 라카인 주에서 방글라데시로 건너온 스물다섯 살의 로힝야 난민입니다. 후마이라는 잠톨리 임시 정착지에서 쇼크 상태에 빠진 상태로 국경없는의사회 파견 진료팀에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1차 의료 센터에서 수분 보충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잠톨리의 국경없는의사회 1차 의료센터에 머물고 있는 후마이라의 아이들 ⓒAnna Surinyach
폭력사태가 터지고 남편은 미얀마 군에게 끌려갔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들은 우릴 몰아내더니 집을 불사르고는 우릴 심하게 때렸어요. 탈출 당시 이미 저는 임신 후반이었어요. 우리는 숲길을 헤치면서 며칠 동안 걷고 또 걸었어요. 너무 배가 고팠고, 나뭇잎을 먹으며 겨우 살아남았어요. 밤에는 수풀 속에서 잠을 잤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강가에 다다라 배를 타고 방글라데시로 오게 됐어요. 제 아기 루지나는 강에서 태어났어요. 이미 배에 올랐는데 진통이 시작된 거예요.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 시간 만에 아기를 낳았어요. 여기까지 오는 내내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그저 아기를 낳아 폭력이 없는 곳으로 데려갈 생각만 했어요.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 후마이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