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VOICES FROM THE FIELD

이효민 I 마취과의

홍준표 I 성형외과의

2023년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이야기 내용을 일부 발췌 소개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국경없는의사회 웹사이트 활동가 이야기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봄에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을에는 차드에서

이효민 활동가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설립 10년이 지나는 동안가장 자주 현장에 파견된 한국인 활동가 중 한 명이다. 2023년 4-5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 9-10월 차드 아드레라는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각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내용을 소개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활동만 총 6회

2015년 보상고아를 필두로 방기, 밤바리 등지에서 일해봤으니까 이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만 총 여섯 번 활동을 다녀온 셈인데요. 그러다보니 나라가 변화하는 모습을 조금씩 눈에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갔을 때 수도 방기의 국제공항도 해가 지면 비행기가 이착륙을 못하는 정도였던 것, 출입국 심사대에 아무런 전자장비가 없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2018년 무렵부터는 공항에서 직원들이 노트북을 쓰는 것 같았죠. 우선 공항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인프라 측면의 변화를 실감했습니다.

기대 수명 53세인 곳, 주 7일 근무체제

주로 외상 환자나 배를 열어 수술해야 하는 꼬인 탈장 혹은 복막염 환자가 많이 왔습니다. 외상 환자의 경우에는 다치고 나서 바로 실려오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깊은 상처를 입고도 방치되어 있다가 오는 분들이 매우 많았고, 그것도 아니면 전통적 치료 요법을 시도하다가 상처부위 감염이나 괴사 상태로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도로가 잘 닦이지 않은 지역에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고 신호등도 거의 없어 교통사고 환자가 많습니다. 택시나 오토바이 사고로 정형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주로 10-40대 남성들이 많았지만, 70살 넘은 여성 환자가 교통사고로 왔는데 천식에 부정맥이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기대수명이 53세입니다. 사회적으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래도 사고를 당하는 환자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문제가 생겨도 쉽게 방치되는 거죠. 민간요법에 의존하게 되면 환자 상황이 훨씬 악화되는 경향도 있고요. 사실상 주 7일, 하루 24시간 근무 체제였습니다. 하루 10-15건 수술이 있고, 중간중간 응급 수술도 생겼습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치안이 이제 비교적 괜찮아졌다지만 여전히 국가적 통금 시간이 있습니다. 밤 12시-5시 사이에 밖에 나와 있으면 보통은 경찰이 단속하지만, 숙소와 병원 사이 거리가 짧아 급한 경우에는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혹시 몰라 여권 사본과 비자, 국경없는의사회 카드는 늘 소지하고 다녔어요.

차드 아드레에서 동료와 함께한 이효민 활동가 ©이효민/MSF

차드, 수단 분쟁 사태로 많은 난민이 도착해

1개월간 활동한 차드는 2022년에 모이살라에 다녀온 이후 두 번째 경험이었는데, 이번에 다녀온 아드레는 마침 차드 동부에 위치하고 있어 최근 심각하게 분쟁 사태를 겪고 있는 수단과 접경지대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차드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처럼 치안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상
황인 나라는 아닌 것 같았지만, 아드레는 올해 4월 격화 후 지속되고 있는 수단 내 분쟁 사태로 실향한 난민들이 많이 도착하고 있는 곳입니다.
예전부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비교적 소규모로 의료 지원 프로젝트를 하던 지역이지만, 최근에는 프로젝트 규모가 확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점차 확대되는 난민캠프들 내에서도 활동하고, 외곽지역 대상 이동진료소도 따로 운영해 저와 같이 타국에서 파견된 국경없는
의사회 직원용 숙소 안에 머무는 다국적 직원들만도 40-50명에 이르는 수준이었습니다. 새로 입원하는 환자보다 기존 상처 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중간중간 총상이나 자상을 입은 외상 환자들이 새로 들어오긴 했고요. 흉부 외상이 몇 건 있어 흉관 삽입 수술을 좀 했습니다. 총상 환자는 대부분 수단 국적인이었고 간혹 차드인들도 있었습니다. 상처가 감염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감염이 나을 때까지 소독과 드레싱을 변경해줘야 하니까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2-3개월간 입원 중이던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환자들이 계속 적체가 되니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거동이 가능하게 되는 환자들은 조금씩 이동을 시켰고요. 그런데 수단에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 대다수니까 이들은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하게 되어도 갈 곳이 없어 난민캠프로 넘어가게 되는 겁니다.

활동가 생활의 팁

생활환경은 확실히 좋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아드레 같은 경우 좁은 지역안에 프로젝트가 크게 확대된 경우라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전 차드 내 근무지만 해도 주변에 시장도 있고 직원들이 주에 1-2회 다같이 식사하러 나가기도 할 수가 있었는데, 아드레의 경우 여가시간에 갈수 있는 곳이 없었고 중간에 식당 한 곳이 허가되기는 했는데 이마저도 48시간 전에는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본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잘 챙기는 게 중요합니다. 서양인 동료들의 경우 배구 같은 스포츠 활동을 통해서 긴장을 푸는 것 같더라고요. 숙소나 근무지 외부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는 경우 본인이 스스로 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겠죠.

 

 


‘나도 포기 안 할게, 너도 포기하지 마’
의사와 환자 사이에 끈끈한 믿음이 있는 곳

현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인 홍준표 활동가가 이스라엘-가자전쟁이 본격 격화하기 전인 2023년 5-6월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다녀온 내용을 소개한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는 첫 해외 의료 구호활동이었다.

‘이 의사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구나’

성형외과 의사로서 가기 전 국경없는의사회 브리핑에서는 주로 화상 환자가 많을 것으로 들었습니다. 가보니 전투나 가정 내 화상 환자가 하도 많았어서 기존에 병원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미 화상 치료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가자지구 남쪽의 나세르Nasser, 북쪽에는 알 시파Al Shifa라는 종합병원 2곳이 저의 주 활동지였습니다. 거주는 북쪽에서 하되 남쪽에 2-3회 갈 때는 차를 타고 약 45분-1시간 정도 이동했고요.
하지 외상, 즉 총상이나 폭발로 인한 소위 급성 복합골절 환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비교적 분쟁 휴지기간이라 간헐적으로 총소리나 폭발음이 들리는 정도였지만 가기 직전에도 한 번쯤 긴장 고조가 있었고, 무엇보다 2018년에 시작됐던 ‘귀환 대행진Great March of Return’ 때는 수백 명의 주민이 벽 쪽으로 나아가 시위를 했거든요. 당시 이스라엘군 측에서 발포한 총에 다리 쪽을 맞은 환자가 많았는데, 아예 절단한 경우도 꽤 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골수염이 심해진 경우도 많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병원 수술실에서 집도 중인 홍준표 활동가 ©홍준표/MSF

수술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환자를 미리 보면서 왜 그렇게 됐는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곳에서 물론 처음에 부상을 입었을 때 초기 재건이 잘 된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2018년 행진 당시에만 해도 외상 환자 수십 명이 동시에 들어오고, 그 후 폭발 건이 있을 때마다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는데, 성형외과의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일반의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급하게 임시 대처를 한 경우도 있거든요. 지금은 성형외과의가 남쪽 병원에 3인, 북쪽 병원에 12인 있는데 사실 이들이 체계적으로 성형의학을 이수한 의사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련 수술을 못하진 않아요. 자원이 부족한데도, 혹은 부족하니까, 정말 색다른 방식으로 어떤 경지에 올라있다고 할까요. 제약으로 인한 혁신이 나타나는 거죠. 또 현지 의료진은 어떤 경우에든 포기하지 않고 자기 동포들을 살리려는 열정을 바탕으로 일합니다. 그런 걸 보면서 그들에게 저도 존경심을 갖게 됐지만, 그들의 그런 열정을 느껴서인지 환자들도 기본적으로 의료진에 깊은 감사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리를 절단하게 됐다고 해서 원망하는 경우도 없고, 산 사람은 살아있는 대로 감사를 표하고요. 공통적인 상황으로 고난을 함께 겪다보니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어떤 끈끈한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겨있다고 할까요. ‘나도 포기 안 할게, 너도 포기하지 마’라는 느낌입니다.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환자로서는 사실 수년간 별 진전 없이 상태가 방치되어 있었다고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의사는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구나’라는 믿음이 있는 거죠.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생겨난 그런 상호 신뢰를 보면서 ‘아 이런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개인적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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