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을 통한 환자들의 삶 재건
국경없는의사회가 3D프린팅 프로그램을 쓰는 이유
2018년 요르단 암만에서 화상을 입은 이라크 출신 아동 환자 얼굴에 상처 진정을 위한 투명 마스크를 씌워보고 있는 피에르 모로 ©Hussein Amri/MSF
피에르 모로(Pierre Moreau)
국경없는의사회 재단
재활 개발 책임자
긴박한 구호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국경없는의사회가 3D프린팅같은 최첨단 기술을 접할 일이 있을까? 2023년 11월 한국을 찾은 국경없는의사회 재단 재활 프로그램 책임자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국경없는의사회가 환자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 펼치는 다양한 노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한국 방문(2023년 11월)을 환영합니다. 이 기회에 국경없는의사회 재단을 처음 만나는 한국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자들에게 재단에서 전개하고 있는 활동을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재단(fondation.msf.fr)은 무엇보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 세계 현장 의료 구호활동에 새로운 의학적 도구나 연구 결과로써 기여하고자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만이 가지고 있는 현장으로부터 직접 획득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외부 파트너들과 협력을 모색하기도 하죠. 제가 재단에서 담당하고 있는 3D 재건 및 재활 프로그램은 현재 요르단 암만에 활동 기반을 두고 있는데요. 이라크, 팔레스타인, 예멘, 시리아 등 인근 국가들로부터 유입되는 부상자 및 기타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3D프로그램은 급박한 인도주의적 구호 현장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의학 관련 기술 중 비교적 최첨단 기술이겠죠?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 목적은 아시다시피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긴급대응 프로그램의 경우 당장 생명을 구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사실 재활을 위한 보철물 제공은 활동 영역이 아니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는 보철물 전문 기술자나 기능 회복 훈련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구한 환자의 삶이 재건되는 데 개입할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왜 생명을 구하나요? 우리 프로그램은 환자들의 삶에 좀 더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3D프린팅 프로그램은 크게 보면 국경없는의사회의 재활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한 부분입니다. 2017년 요르단 암만에서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유는 분쟁 현장에서 하지 보철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지 보철의 경우엔 재활이 훨씬 어렵고 과정도 굉장히 기술적이고요. 지금 저희 프로그램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진행 중인데, 우선 현재의 3개 집중 분야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소아 재활, 여성 건강, 화상 치료가 그것이죠. 2년 전쯤부터는 국경없는의사회 암만 사무소에서 이 재활 프로젝트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재단이 제공하는 것은 기술적 지원이고요.
아동과 여성, 그리고 화상 환자, 모두 국경없는의사회가 인도주의적 의료 지원을 제공해온 주요 그룹입니다. 3D프로그램을 활용한 이들의 치료 과정을 좀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일단 보철물은 암만에서만 제공됩니다. 인근 지역과 요르단 국내 환자들이 이곳에 와서 재활팀의 진단을 받습니다. 보철물·보조기구 전문가와 엔지니어를 포함한 국경없는의사회의 다학제적 팀이 이곳에 있거든요. 예를 들어봅시다. 요르단 암만에 팔레스타인 출신 난민 혹은 이라크, 예멘 등지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의사의 전원을 통해 도착한 환자가 들어옵니다. 그러면 우리 팀이 환자 상태를 체크하면서 보철물이 필요할지를 결정합니다. 환자를 스캔하고 컴퓨터 3D프로그램을 활용해 내부적으로 모든 것을 디자인합니다. 보철물은 간단하면서도 가볍고, 편안하고 유용한 수동형 종류입니다. 진단에서 보철물의 전달까지는 평균 1개월 반 정도의 기간이 소요됐는데 이게 이제 3-4주로 감소됐죠. 이때 심리사회지원(psychosocial support)도 평균 2개월 동안 제공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손이나 팔꿈치 아랫부분이 없어진 상태라 절단된 부위를 스캔하고 접합을 위한 해당 부위의 정확한 치수와 모양을 잰답니다.
아무래도 분쟁 지역에 3D프로그램 혜택을 받을 만한 환자들이 많은 걸까요?
애초에 요르단에 기반을 두게 된 이유가 아무래도 그렇긴 하죠. 2020년경 가자지구 어느 빵집에서 폭발이 발생해 60여 명의 얼굴에 화상을 입은 환자들이 현지 병원에 유입된 기억이 나네요.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 놓여 있던 우리는 스캐너, 컴퓨터 등 모든 장비를 그곳으로 보내고 현지 직원들에게 장비 사용법을 원격으로 교육했습니다. 물론 이게 가능했던 건 가자지구 내 현지 직원들이 굉장히 잘 훈련된 고급 인력이었기 때문이긴 합니다. 아마 지난 3년 반 동안 가자지구에서만 약 170여 명의 화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티, 아르메니아 등 다른 지역 화상 환자들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총 330명 정도가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지역들에서도 3D프로그램과 이를 활용한 재건 및 재활이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의 공식적 일부로 통합되도록 노력 중인데요, 2018년 12월에 활동을 개시했고 2024년 2월 종료를 계획하고 있는 아이티의 3D프로그램 팀도 있습니다. 인구 과밀로 생활공간이 좁은, 빈곤한 도시지역 환경에서는 화상 환자 발생 빈도가 높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전기도 불안정하고 요리를 위한 공간도 부족하니까요.
아동이 재활 프로그램의 중점 그룹으로 고려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 세계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프로젝트의 일부로 통합되기 위해 현장 인력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보니 이구동성으로 이 프로그램의 우선순위는 여성 건강과 아동 재활이 되어야 한다는 답들이 돌아왔습니다. 아동의 경우 발달이 늦어지거나 말라리아, 뇌수막염 등의 후유증을 겪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주요 환자군은 일시적으로 영양실조나 홍역을 겪은 이들일 수도 있고요. 우리 팀은 소아 재활을 특정한 프로그램을 시작한 예멘에서 이들의 영양실조 환자들의 신체적 재활을 돕기 위해 물리치료사들의 역량강화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예멘에서 생후 6개월에 침대에 양초가 떨어지는 바람에 측면과 손에 심한 화상을 입었던 여아 환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때 화상이 너무 심해 손은 절단해야 했죠. 이 아이는 자라면서 성장 및 발달과정 장애를 경험합니다. 2017년 이 아이가 8-9살 경일 때 얼굴과 절단 부위 성형을 위해 다시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를 찾아왔더군요. 보철물을 원했지만 아직 우리 프로그램 초기 단계여서 이를 공급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2018년 이 아이가 다시 찾아왔을 때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었죠. 2021년에 환자가 다시 찾아왔을 때는 얼굴 마스크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십대 청소년으로서 살아가고 있죠. 장기적으로 환자의 삶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회복과 재활을 위한 개입이 부상 초기 단계부터 잘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2022년 2월 상하지가 절단된 환자들을 위해 3D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보철물 원형이 요르단 암만 병원 내 선반 위에 놓여 있다. ©SORIYA/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