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VOICES FROM THE FIELD

홍기배 활동가  |  소아과의 
최정윤 활동가  |  약사
신효정 활동가  |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이진희 활동가  |  건축 팀장 

2024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국경없는의사회는 분쟁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을 구하는 인도주의 구호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을 조명했다.

한국사무소에서 비교적 최근 세계 각지에 파견됐던 다양한 분야의 여성 활동가들 이야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들어보자.

01 홍기배 활동가 | 소아과의 /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아파르 Afar 지역 듀브티 Dubti 소재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왔습니다. 인근 티그라이 Tigray 지역에서 분쟁이 격화되는 바람에 유입되는 영양실조 아동이 급증해, 제가 부임하기 약 8개월쯤 전(2022년 12월)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영양실조 병동 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프로젝트를 이곳에서 시작했습니다. 듀브티 병원에 마취과의나 성형외과의는 없고, 수도 아디스아바바로의 전원도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게 이동에 적어도 8시간은 소요되고, 운전해서 가는 길이 치안이 불안해선지 보통은 거의 하루가 꼬박 걸리는 실정이었습니다. 3차병원이다보니 중환자가 꽤 많았고 저도 중환자실에서 꽤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흑열병내장 리슈마니아증의 경우 많이 진행된 상태로 환자가 오면 사실 치료가 힘들거든요. 내장까지 장기간 병이 진행돼 간과 비장이 커지고 골수와 면역 기능이 떨어지며 지혈마저 안되면 사실상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고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버티도록 약제로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의 경우 보통 1인당 아이 네다섯 명을 낳아 기르는 경우가 많은데 워낙 영아사망률이 높아 그런지 기본적으로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가 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와 국경없는의사회 현지 의료진은 이에 ‘물론 어떻게 될지는 신의 뜻이겠지만 치료 과정을 견디는 것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없겠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환자와 보호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설득 안되고 바로 도망가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10명 중 6명은 그래도 설득됐습니다. 사실 의료진뿐 아니라 병원 문 앞 경비원까지 한마음이 되어, 환자가 말도 없이 퇴원하는 것 같은 경우에는 전화로 의료진에게 바로 연락하고 출발하려는 뚝뚝(모터바이크가 달린 현지 교통수단)을 함께 붙잡고 마지막까지 설득에 최선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02 최정윤 활동가 | 약사 / 한국 광주에서 원격 근무

모바일 실행가 Mobile Implementation Officer 라는 말이 붙는 원거리 근무 자리에서 아시아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와 중동예멘 제외, 유럽의 그리스와 발칸 북부까지, 현지 프로젝트들에서 약사로서 일하는 동료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지에서 근무 중인 동료들을 상대로 일종의 온라인 고객 서비스 센터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2011년 첫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이번에 제가 지원한 현장 중 방글라데시 같은 곳은, 제가 그곳에 나가서 일한 적도 두 번이나 있는 데다가 마침 지금 거기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저의 이전 동료거든요. 시리아의 경우도 이전에 제가 베이루트에 기반을 두고 지원한적이 있는 현장이기도 하고 아직도 그때 동료 중 일부가 근무하고 있기도 해서 익숙했고요. 이런 식으로 그동안 제가 여기서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보람 있는 일이 효율적으로 더 잘 진행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한국의 약국에서 일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경제적 이익을 무시하고 운영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면 정말이 지 순수하게 오직 환자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자유로운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우리가 어차피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 있는 건 사실인데, 그걸 전제로 택할 수 있는 직업 중에서 저는 경제적 요소보다는 내가 흥미와 보람을 느낀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걸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03 신효정 활동가 |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 키르기스스탄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해당 지역에서 운영되는 긴급의료구호 프로젝트의 수장으로서 각각의 책임 부서의료, 인사, 재무, 운송, 물자 등 담당자들과 함께 현장 사무소를 운영합니다. 국가 내 ‘현장 책임자’에게 보고하면서 해당 프로젝트 관련 모든 실무 결정권과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물론 의료분야 지원에 특화된 조직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분쟁이나 재해가 발발한 곳에 의료 인력이 도착한다고 해서  갑자기 병원 시설이 생겨나거나 수술대가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타국 출신 활동가들이 긴급 현장에 도착할 때는 기본적인 의식주나 활동 현장의 안전보장은 물론 필수적 의료 관련 물품도 준비되어 있어야 활동이 가능하고, 프로젝트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현지 의료·행정·보건·교육 등 관계 당국과 협력 체계 역시 제대로 구축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쨌든 모든 게 사람이 조직을 이뤄 하는 일이다 보니 이에 보편적으로 필요한 업무 기반은 물론, 특수한 상황에 맞는 부가적 요구사항이 항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그런 프로젝트의 전체적 진행과 현장 사무소 운영 부문을 총괄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장은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구소련 붕괴 후 불명확한 영토 관계로 인해 계속 소요 사태와 국가 간 분쟁이 발발하던 곳입니다. 사실상 ‘국경 없는’ 지대였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2021년에 이어 2022년 9월에는 수백 명의 사상자와 십여 만 명의 실향민이 발생할정도로 큰 유혈 분쟁이 발생한 겁니다. 다행히 키르기스스탄의 다른 지역에서 의료구호활동을 하고 있던 국경없는의사회가 사태가 발생한 직후 바로 바트켄 주에 인력을 투입해 긴급대응을 할 수 있었습니다.
 

04 이진희 활동가 | 건축 팀장 /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보르노주 마이두구리에서 현지 보건부가 관할하고 국경없는의사회가 입원환자들을 진료하는 병원 부지 내 약국 창고 1개 리모델링과 물류 창고 1개 신축 과정을 진행하고 왔습니다. 공사기간은 총 3개월이었고, 저는 8개월 근무했는데요. 이미 타당성 검토가 진행되고 설계도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시설계와 공사 발주, 공사와 완공 과정을 관리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에서 일어나는 건축 관련 행위를 관리하는 직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설계만 하는 것도, 현장 관리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의 한국 내 경력이나 알고 있던 환경과는 많이 다르고, 현장에서 쓰이는 재료도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벽돌과 콘크리트가 주요 자재인데 그곳에서 쓰는 콘크리트 블록은 모래가 많은 지역에서 일정치 않은 품질로 제조되어 그런지 잘 부서질 때도 있어 현장에서 섞이는 시멘트 비율이나 철근 크기 등 관리 감독도 하고요. 상하수도 시설이 없거나 전력 시설이 불안정한 등 제약사항에 대한 대처법도 찾습니다. 저는 이 일이 적성에 맞는 이유가 새로운 환경에서 건축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렇지만, 보람도 크게 느낄 수 있어서입니다. 이게 조금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누군가들을 위해서 짓는 건물들이니까요. 어차피 건축이라는 업이 나무 자르고 시멘트로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