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 활동가 이야기] 현장에서 온 편지

구호 활동가들의

이야기

2004년 가정의학과 전문의 출신의 첫 한국인 구호 활동가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2018년 말까지 52명의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 출신 구호 활동가가 156개 현장 활동을 수행하였습니다. 

구호 활동가들의 생생한 현장 소식을 확인 해보세요. 


박선영 구호 활동가 (수술장 간호사)

우리 팀은 5월 14일 하루에만 17건의 수술을 했습니다. ‘야전병원이 이런 곳이구나!’ 처음 알았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일단 우리는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응급 상황 때문에 여기 온 거니까’ 다들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다리가 풀려 병실에 앉았는데, 어시스트했던 영국인 의사가 다가와 고맙다면서 수고했다고 안아주었습니다.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과 진한 전우애가 느껴졌습니다.

2018년 5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홍기배 구호 활동가 (소아과의)

학생 때부터 의료 지원이 필요한 나라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소아감염을 공부했습니다. 예상대로 감염 환자들이 많았지만 한국에서는 잊히거나 보지 못하는 질환들도 있었습니다. 레바논 프로젝트에서는 피부리슈만편모충증이라고 하는 모래파리에 의한 감염 환자들도 만났습니다. 모두 시리아 난민들이었는데, 시리아에서 감염되고 증상이 레바논에서 발현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아플 때 갈 곳이 국경없는의사회 병원뿐인 난민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2018년 10월 레바논 베카 계곡에서


김용민 구호 활동가 (정형외과의)

총상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수술 팀을 확대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리 총상 환자가 대부분이고, 젊은 남자 환자들 혹은 나이가 어린 12살 정도의 소년들도 종종 보입니다. 수술이 많은 날은 아침 9시부터 계속 수술 환자가 들어오고, 수술방 네 개에서 동시에 이뤄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이 첫 번째 구호 활동인데, 평소에 가볼 수 없던 세상을 몸소 경험하고 있습니다.

2018년 6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정의 구호 활동가 (산부인과의)

환자가 살아서 돌아갈 때면 ‘내가 여기 오길 정말 잘했구나’ 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집이 병원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산모들은 제왕절개 후 2주 동안 병원에 머물게 되는데, 함께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의료진과도 가까워집니다. 출산 직후에는 몸도 붓고 혼란스러워하던 산모들이 병원에 머물면서 하루가 다르게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합니다.

흔히들 분만 과정에서 피를 많이 본다고 해서 산부인과 일을 ‘블러디 비즈니스(Bloody Business)’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산부인과는 의사와 혈액만 있으면 산모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저에게 시에라리온 프로젝트는 혈액만 있으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산모를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2018년 8월 시에라리온 코이나두구에서


박지혜 구호 활동가 (수술장 간호사)

국민 수에 비해 의료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라이베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잘 걸리지 않는 병에 걸려 치료시기를 놓쳐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술이 필요할 만큼 상태가 심한 아이들은 대부분 치료시기를 놓치고 온 경우라 이미 몸의 컨디션, 장기의 기능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수술로도 그 아이의 회복을 확실하게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늦은 밤까지 수술을 하고 나와도 아이들의 상태가 회복하기에 너무 약한 상태이기에 안심할 수 없는 날이 많았고 한국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환자들을 많이 잃으면서 상실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무사히 회복한 고마운 아이들도 있습니다.5번의 수술 후 모두의 비관적인 예상과 건강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난 어린 환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수술실을 다시 찾아왔을 때,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고 제가 간호사인 것이 행복했습니다.

2018년 11월 라이베리아 몬로비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