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개요] 2021년 한 해를 돌아보며

빈번한 폭력, 활동 제한, 행정적 제약 속에서 인도주의 활동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2021년 12월 22일은 프랑스 파리에서 언론인과 의사가 함께 국경없는의사회를 설립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반세기 동안의 인도주의 의료 구호활동을 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앞으로도 공정성, 중립성, 독립성의 원칙에 따라 전력을 다해 생명을 살리는 의료적·인도적 활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2021년 한 해를 돌아보며

국경없는의사회는 1971년 처음으로 인도주의 의료 구호활동을 개시했습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21년 63,000명이 넘는 직원이 70여 개 나라에서 생명을 살리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에서의 비극

2021년 에티오피아는 의료 구호활동을 절실히 필요로 했습니다. 북부 티그라이(Tigray) 지역에서는 무력 분쟁이 지속되어 수십만 명의 국내실향민이 발생했고, 이들은 현재 식량, 식수,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차단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3월, 국경없는의사회는 3개월에 걸쳐 방문했던 현지 의료시설의 6/ 7이 인력 및 물자 부족이나 체계적인 공격과 약탈로 인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지 않다고 발표했습니다. 한편 6월에는 티그라이에서 활동하던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공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운전수 테드로스 게브레마리암 게브레마이클 (Tedros Gebremariam Gebremichael), 부코디네이터 요하네스 할레폼 레다(Yohannes Halefom Reda), 긴급구호 코디네이터 마리아 에르난데스 마타스(Maria Hernandez Matas) 가 이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잔혹한 공격의 배후와 원인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경없는의사회는 유가족을 위해 계속해서 조사를 이어 나갈 것입니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빈번한 폭력, 활동 제한, 행정적 제약 속에서 인도주의 구호단체의 활동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8월부터는 단 한 팀만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고, 11월 말에 접어들어서는 동료의 사망 사건에 더해 현장에 물자 등을 지원하는 데 있어 제약이 심해져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7월 말,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경없는의사회 암스테르담 운영센터가 관장하는 구호활동에 대해 3개월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등 비정부기구 전반을 겨냥한 고의적인 언론 공격과 국경없는의사회 동료 사망에 대한 불충분한 조사 및 답변으로 에티오피아에서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 졌습니다. 해당 기간 동안, 국경없는의사회는 에티오피아 내 한 개 지역에서만 활동이 가능했고, 인접국인 수단에서 에티오피아 난민을 지원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콩고민주공화국 이투리주 국내실향민 캠프에서 식수위생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Alexis Huguet

정치적 위기에 휩싸인 이들

2월, 미얀마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활동에 있어 많은 제약을 겪었습니다. 활동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파견할 수 없었고, 직원 급여 지급을 위한 자금이나 물자 등을 미얀마로 송달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제약은 국경없는의사회 조직 차원을 넘어 치료가 당장 필요한 환자들에게 극심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1년 상반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기존에 주둔하던 연합군이 철수했으며 8월에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Kabul)을 점령하는 것을 끝으로 급격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탈레반의 정권 장악에도 활동을 이어갔으며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현지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을 위한 국제 후원금이 끊기고 아프간 정부의 자금과 자산이 동결된 상황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의 높은 의료적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은 하반기에 더욱 악화했는데, 가뭄에 더해 경제적 위기가 심화하여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를 찾는 아동 영양실조 환자가 증가했습니다.

 

두 해째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

코로나19가 2년째 지속되면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코로나19가 특히 심했던 시리아, 예멘, 페루,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베네수엘라에서 감염 예방 및 통제 지원과 환자 치료에 집중하며 활동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가 위중증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의료용 산소난을 겪는 상황에서 예멘과 레소토 왕국 등지의 병원에 의료용 산소를 지원하였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자 국경없는의사회는 레바논, 튀니지, 에스와티니 등 몇몇 국가에서 백신 접종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필수 의약품 접근성 강화 캠페인(Access Campaign·액세스 캠페인)은 백신의 공평한 분배와 백신의 대량 생산을 가속화할 수 있는 백신 지적재산권 면제의 필요성을 주창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재권 및 공급 문제에 더해 접종 실행 비용 부담, 백신 기피 현상, 의료진의 백신 거부, 잘못된 정보의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실질적인 백신 접종률 제고가 어려웠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더욱 시급한 보건 문제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온라인 캠페인 및 현장 보건증진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의 예방접종팀이 레바논의 요양원에서 노년의 여성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 MSF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 이주민 지원

2021년, 파나마와 콜롬비아 국경에 걸쳐 있는 늪지대인 다리엔 갭(Darien Gap)을 지나려는 이주민이 급증했습니다. 다리엔 갭은 남미에서 북미로 향하는 유일한 육지 경로입니다. 이곳을 통과하려는 이주민은 미끄러짐이나 수위水位 상승 등 밀림에 내재한 위험뿐만 아니라 범죄 집단, 인신매매단의 표적이 되어 강도, 폭행, 성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습니다. 이에 국경없는의사회는 파나마 쪽 정글을 통과하는 이주민에게 의료적·인도적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이주민은 대부분 쿠바나 아이티 출신이며, 간혹 서아프리카 출신도 있습니다. 다리엔 갭을 건너는 이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모두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북미로 향합니다. 하지만 험준한 정글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멕시코에서 미국까지 또 한 번의 다사다난한 여정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1년 하반기, 유럽 연합은 벨라루스가 이주민과 망명 신청자를 폴란드 및 리투아니아 국경 인근으로 보내 불법 월경을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규탄했습니다. 이 위기는 점차 정치적 위기로 변모했고, 급기야 폴란드는 장벽을 설치하여 이주민 유입을 억제했습니다. 동시에 벨라루스 당국 또한 이주민을 국경 쪽으로 밀어내면서 이주민은 방한 준비도 못한 채 엄동설한에 떨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활동이 가능했던 벨라루스 내 허가를 받은 지역에서 이주민을 위한 의료적·인도적 지원을 제공했지만, 폴란드에서는 관할 당국의 활동 허가를 받지 못해 연말이 되기 전에 활동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비아에서는 구금센터에 구금된 이주민 및 난민을 대상으로 극심한 폭력이 자행되고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졌습니다. 결국 국경없는의사회는 2021년 6~9월 사이 수도 트리폴리Tripoli에서의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리비아 내 상황이 열악하여 수많은 이주민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이주 경로라고 불리는 지중해 횡단을 시도했습니다. 2021년 한 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새로운 전세 선박 지오배런츠(Geo Barents)호로 지중해 난민 수색·구조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질병과 피난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헬지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사헬지대 인구의 삶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나이지리아 전역에 만연한 폭력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피난민이 대거 발생했습니다.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는 피난민 또한 안전하지만은 않았는데, 열악한 위생 수준으로 인해 전염병과 온갖 질병이 창궐하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었습니다. 나이지리아 잠파라(Zamfara)주와 카치나(Katsina)주 등 북서부 지역에서 폭력이 급증하여 수천명이 국경을 넘어 니제르로 피난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니제르에서 활동하며 전례 없이 많은 수의 아동 영양실조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또한 니제르 및 주변국에서 말라리아, 홍역, 뇌수막염 등 영양실조 아동에게 특히나 치명적인 질병이 창궐하여 이에 대응했습니다. 의료 구호활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1월, 말리 중부에서 국경없는의사회 구급차가 무장단체에 의해 공격을 당하여 이송 중이던 환자가 사망했습니다.

 

만성적인 폭력이 보건 위기로 심화

2021년, 다양한 국가에서 폭력과 분쟁이 만성적으로 발생해 현지 인구와 지역사회가 계속해서 고통받았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 북키부(North Kivu)주, 남키부(South Kivu)주, 이투리(Ituri)주 등 북동부 지역주민은 수십 년째 극심한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북키부 인구는 콩고민주공화국 사상 열두 번째 에
볼라 유행과 니라공고(Nyiragongo)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을 겪었고, 정부군과 현지 무장단체 간 교전이 심해지자 이를 피해 인근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의 국내실향민 캠프에서 생활하며 전염성 질병과 성·젠더 기반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또한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10월 말, 이투리주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호송차량이 신원 미상의 무장 남성들에 의해 공격을 당해 직원 두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공격으로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 결국 의료 접근성이 크게 차단된 두 개의 보건 구역에서 전개하던 프로젝트를 종료하게 됐습니다. 아이티에서는 7월의 대통령 암살 사건에 이어 8월에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정치·경제·안보적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의 거리는 무장단체가 장악했으며, 납치, 폭력, 살해가 만연했습니다. 치안 불안정으로 현지 주민이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카메룬에서 는 영어권 지역인 북서부와 남서부에서 폭력 사태가 이어져 지역사회의 의료서비스 접근이 차단되었습니다. 북서부 지역에서는 카메룬 당국이 활동 중단 명령을 내려 구호활동을 강제 철수해야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던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한 활동 중단 명령은 무력 분쟁으로 이미 컸던 의료 공백이 더욱 커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모잠비크 카부델가두(Cabo Delgado),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일부 지역 등 폭력이 지속되거나 만연한 지역사회의 높은 의료적 필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극한기후가 야기한 위기

국경없는의사회는 극한기후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응했습니다. 남수단에서는 3년 연속 대홍수가 발생하여 벤티우(Bentiu) 국내실향민 캠프와 마욤(Mayom) 지역이 침수되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긴급 의료지원에 더해 플라스틱 시트와 모기장 등 구호품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니제르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량 증가로 수도 니아메(Niamey) 등 여러지역에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지난 20년간 활동을 지속해온 니아메에서는 2년 연속 말라리아 및 영양실조 환자가 두드러지게 증가했습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일부 지역에 건기가 지속되고 가뭄이 극심해져 수확할 곡물이 없는 시기인 ‘기아 공백(Hunger Gap)’이 악화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삼림 파괴로 가뭄이 악화해 작황 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해당 지역에서 급증하는 영양실조 환자에 대응했습니다.

홍수로 약835,000명의 수재민이 발생한 남수단 벤티우에서 마을 주민이 대피하고 있다. ©Sean Sutton

결핵 임상시험의 고무적 성과

10월 말, 국경없는의사회는 결핵 임상시험 <TB PRACTECAL>의 고무적인 초기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임상시험은 약제내성 결핵 치료법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시험에 참여한 약제내성 결핵 환자 90%가 6개월간의 완전 경구요법으로 완치됐습니다. 2년 동안 매일 고통스러운 주사 요법에도 완치율이 절반에 지나지 않고 부작용까지 있던 기존의 치료법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는 매우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임상 결과를 토대로 세계보건기구는 기존의 치료 요법의 아닌 새로운 약제내성 결핵 요법을 권고했습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endTB-Q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이번 임상시험은 약제내성 결핵균 중에서도 가장 강한 균주에 대한 치료 요법의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결핵은 여전히 소외질병이며, 여전히 환자의 고통 경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요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핵 아동을 위한 적절한 치료법
과 진단법 등 기간이 더 짧고 환자 친화적인 치료 과정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2021년 12월 22일은 프랑스 파리에서 언론인과 의사가 함께 국경없는의사회를 설립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반세기 동안의 인도주의 의료 구호활동을 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앞으로도 공정성, 중립성, 독립성의 원칙에 따라 전력을 다해 생명을 살리는 의료적·인도적 활동을 전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