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소리를 지르거나 뛰거나 웃는 아이들이 없었는데 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고 노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된 게 기억에 가장 남는 것 같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홍기배 활동가의 이야기
수단 카르툼의 마이고마(Mygoma) 보육원으로 3번째 활동을 다녀온 홍기배 활동가를 만났다. 보육원의 전담 의사로서 의료시스템을 개발하고 아동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홍기배 활동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회의 시선 속 버려지는 아이들
제가 다녀온 곳은 수단 카르툼에 위치한 마이고마 국영 보육원이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치안 문제로 인해 이곳에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재개했습니다. 이번 활동에는 소아과 의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현장 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수단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혼외로 낳은 아이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외 자식은 대개 길거리에 버려지는데, 경찰이 보육원으로 데려와 돌봐줍니다. 한 달에 신생아부터 만 5세 사이 아이들 30명 정도가 새로 들어와서 벌써 340명이 보육원에서 생활 중입니다. 오자마자 사망하는 아이들도 있고, 큰 병원으로 전원이 되었다가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의 현지 보육원
보육원은 원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지고 2차 병원으로 전원하기도 힘들어서 클리닉을 입원 병동으로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환자들만 모아 놨을 뿐 치료가 잘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인원의 반은 신생아에서 만 2개월 정도 되는 아주 어린 아기입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세균성 장염이 많고 탈수 증상도 많습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적은 월급으로 운영하고 있어 의료 물품이 부족하고 많은 아이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침대가 부족하여 작은 침대에 두 명의 아이가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생아들이 있는 방에서는 시터들이 바쁘다며 급하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켜주지 않고 눕히는 경우가 많아 흡인성 폐렴이나 질식사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처음에 보육원으로 간다고 했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치료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침대가 부족해서 한 침대에 작은 아이 둘이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침대에서 꺼내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질 못합니다. 아이들은 좁은 공간에 있다 보니 움직임도 제한되어 발달이 느립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혼자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아 세 살이 되어도 먹여줘야 할 정도입니다. 처음엔 소리를 지르거나 뛰거나 웃는 아이들이 없었는데 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고 노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된 게 기억에 가장 남는 것 같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스템
저는 보육원의 의료시스템을 개발하고 시설에서 질환이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의사, 간호사, 영양사를 교육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아이들 중 40여 명 정도가 신경계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어 지속해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병원뿐 아니라 시설에 있는 아이들 건강 상태 확인과 시터 교육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아이들 방에서 일하는 시터들은 주로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지 직원이 보육원 직원과 협업하여 교육합니다. 교육은 안전하게 수유하여 음식물이 기관지로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는 흡인성 폐렴 예방법, 위생 교육 등 다양하게 진행됐습니다. 보육원의 대부분의 아이들의 발달이 느려서 9월부터는 정신건강 매니저도 활동에 추가되어 아이들의 발달에 대한 교육도 시행하였습니다.
카르툼에 마이고마 보육원 직원들과 함께. ©홍기배/MSF
그 중 자파르(Jafar)라는 아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심각한 영양실조 환자였는데, 장염에 걸려서 심한 탈수로 입원했다가 패혈증과 신부전까지 진행했던 아이입니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하였습니다. 처음에 이 아기는 표정도 없고 사물에 관심도 없어서 청력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료진과 친해지고 나니 옹알이도 하고 웃으며 장난을 치기도 해서 안도했습니다.
6개월간 꾸준히 자파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도 관계를 만들어가고 1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매일 이야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관심도 없고 표정도 없던 아이들이 변화해 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가가서 이야기하면 웃어주고,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지금은 놀이터도 생겼고 밖에서 뛰고 노는 아이도 많습니다. 조금씩 바뀌는 중이지요. 시간이 지나며 제대로 된 보육원 같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육원 내 침대에 있는 영아. ©홍기배/MSF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따뜻한 집
신생 프로젝트였고 처음엔 모든 곳에 문제가 많이 보여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해야 할 것과 유지해야 할 것이 많은 상황이지만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보육원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집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이고마 보육원 놀이터의 모습. ©홍기배/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