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중동, 아메리카 대륙까지… 전 세계 동시다발적 콜레라 확산 비상
아이티, 시리아, 레바논 등 전 세계 29개국에서 콜레라가 창궐해 국제사회에 비상이 걸렸다. 수인성 질환인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균이 유발하는 급성 위장 감염병이다. 심한 경우 중증 설사와 구토 증상을 보이는데, 최대 25리터의 체액이 손실돼 중증 탈수와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위생 여건이 열악하고 깨끗한 물이 부족한 인구 과밀 지역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세계 각지에서 콜레라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경구 콜레라 백신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고 전 세계적인 콜레라 백신 부족 사태가 초래됐다. 이러한 사태는 이미 가뭄이나 홍수, 분쟁, 피난 등 인도적 위기에 직면한 국가들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이에 세계보건기구는 비상용 백신 공급량을 관리하는 국제조정그룹(International Coordinating Group)의 판단에 따라 기존 2회였던 백신 투여 횟수를 1회로 임시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1회 투여는 기존 2회 투여법보다 예방기간은 짧지만, 백신을 제공받을 국가를 선별적으로 택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백신을 제공할 수 있는 공정하고 공평한 방법이란 판단에서 내린 임시방편적 결정이다.
글로벌 백신 공급 부족 사태는 올해 콜레라 발병국이 추가로 발생할 시 전개해야 하는 중단기 대응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대응활동의 일환으로 콜레라 예방접종 캠페인도 시행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대응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카메룬, 나이지리아, 아이티, 레바논, 시리아, 말라위 등 전 세계 10개국에서 콜레라 대응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특히 보건인식 제고, 식수위생 활동, 콜레라 예방접종 등 세 가지 주요 활동에 더해 기존 의료시설에 콜레라 치료병동을 추가 설치하여 운영하거나 동시에 수백 명의 콜레라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별도의 콜레라 치료센터를 신설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아이티
국경없는의사회는 콜레라 환자를 위해 특수 제작된 병상을 제공하고 있다. ©Alexandre Marcou/MSF
혼란 속 심각한 의료 사각지대가 된 아이티
10월,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콜레라 환자가 3년 만에 재확산하고 있다는 아이티 보건부 발표에 이어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 보건당국과 협력하여 긴급 대응활동을 개시했다.
만성적인 폭력 사태에 극심한 연료난 및 식수난까지 겹쳐 수많은 의료시설이 의료서비스 규모를 축소하거나 운영을 중단하는 가운데 발생한 콜레라 확산은 심히 우려스럽다. 특히 전국적인 연료난으로 교통편을 구하기 힘들어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의료시설에 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9월 29일 첫 콜레라 환자가 발견된 이후 총 389병상이 마련된 6개의 콜레라 치료센터를 설치했다. 하지만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 남은 병상이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콜레라 유행 2주차에 하루 평균 50명의 환자를 치료했는데, 10월 말이 되자 하루 평균 270명의 환자가 유입됐습니다. 11월 17일까지 총 8,500명의 환자가 입원했는데, 그중 사망자는 97명이었습니다.”_무무자 무힌도(Mumuza Muhindo) / 국경없는의사회 아이티 현장 책임자
시테솔레이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의 콜레라 치료센터 ©Alexandre Marcou/MSF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포르토프랭스에서 가동되는 콜레라 치료 병상 중 60%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가장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서 보건증진 전담팀이 질병 확산법에 관한 인식을 제고하고 있으며, 식수위생 전문팀이 약 100개의 급수소에서 식수를 소독하고 8개의 보급소를 설치하여 경구 수액, 깨끗한 식수, 필수품 등을 보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피해 규모에 비해 지원이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여타 인도주의 구호단체 및 공여국이 식수위생 접근성을 확대하고 치료센터를 증설하는 등 콜레라 대응활동에 동참하길 촉구한다.
레바논
국경없는의사회가 아동에게 콜레라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MSF/Mohamad Cheblak
종식 30년 만에 다시 콜레라가 활개치는 레바논
레바논에선 콜레라 종식을 선언한 지 30년 만에 콜레라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미 경제·연료난으로 깨끗한 식수 접 근성이 차단된 상황에서 전기로 작동하는 수도 펌프가 전력난으 로 멈추면서 각 가정에 물 공급이 끊어진 지 오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주민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 위기로 생계에 큰 타격을 입고 대체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오염된 강이나 웅덩이를 식수원으로 사용한다. 설상가상으로 의약용품이나 진단 키트도 부족해 제대로 된 치료도 어려운 실정이다.
10월 6일 콜레라 창궐 공식 선언 이후 19명이 사망했고, 11월 16일 기준 확진 및 의심 환자는 3,671명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야전 병원을 설치하거나 기존의 병동을 콜레라 환자 전담 치료센터로 전환하는 등 콜레라 창궐 초기부터 확산을 예방하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레바논 보건당국이 실시 중인 백신 캠페인에 참여해 북부 및 북동부 지역에서 콜레라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감염 위험이 높은 열악한 고밀집 환경에서 생활하는 주민을 집중 접종 중이며, 한 주 만에 14,224명을 접종했다. 이번 예방접종 캠페인은 레바논 보건당국, 국제 및 현지 구호단체 공조 활동의 일환으로 1차 확보 분량인 총 60만 회분의 백신을 접종해 콜레라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목표다.
레바논에서 콜레라가 마지막으로 발생한 건 1993년이다. 따라서 콜레라 감염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확산을 막는 데도 필수적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북부와 북동부 지역에서 예방 노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레바논 콜레라 예방접종 캠페인에 사용할 콜레라 백신. ©MSF/Mohamad Cheblak
시리아
시리아 북서부에는 170만 명 이상의 국내실향민이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고 있다. ©Abdurzaq
유프라테스강 오염이 촉발한 콜레라, 시리아
2022년 9월부터 시리아 북동부와 북서부에서 콜레라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식수 오염과 북부의 극심한 물 부족 사태로 촉발된 콜레라 유행은 전국으로 퍼져 11월 20일 기준 시리아 북서부에서 11명의 사망자와 12,643명의 의심환자가, 북동부에서 30명의 사망자와 23,578명의 의심환자가 발생했다. 라카국립병원에 따르면 북동부에서 콜레라 환자가 발생한 건 2007년 이후 처음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 의료진 역량을 확대하고, 콜레라 전담 치료센터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지역사회 수준에서 예방활동을 전개하며, 위생 키트 등의 다양한 물자를 지원하는 등 시리아에서의 콜레라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대응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리아 북서부 국내실향민 캠프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제공한 깨끗한 식수를 받고 있는 국내실향민. ©Abdurzaq Alshami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 보건당국과 협력해 시리아 북동부 라카(Raqqa)에 위치한 20병상 규모의 콜레라 치료센터에서 의료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콜레라 창궐이 공식 선언된 9월부터,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북동부에서 3,000명 이상의 콜레라 의심환자를 치료했다. 현재 입원 환자수가 줄고 있고, 증상이 경미한 환자만 라카 콜레라 치료센터를 찾고 있어 치료센터를 기존 60병상에서 20병상 규모로 축소했다.
시리아 북서부에서는 이들리브(Idlib) 서부에서 24병상 규모의 콜레라 치료센터를 지원하고 있다. 이 치료센터에는 한 달 사이 150명 이상의 환자가 입원했는데, 이 중 22%는 치료가 지연된 위중증 환자였으며 심각한 탈수 증상을 보였다. 11월 15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들리브 북부에도 20병상 규모의 콜레라 치료센터를 신설하였다.
시리아에서 마지막으로 콜레라가 발생한 지 15년이 지났기 때문에 치료와 식수위생 개선과 더불어 콜레라 감염 경로 및 치료에 관한 인식 제고 노력도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경없는의사회는 22,000명 이상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기반 보건 인식 제고 활동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