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파키스탄 긴급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6~9월, 세 달간 이어진 계절성 폭우와 이로 인한 홍수로 파키스탄 국토 전체의 1/3이 잠겼다.

홍수로 인구의 약 15%가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는데, 목숨을 잃은 사람은 1,700명에 달했고 3,300만 명이 수재민이 되었다. 2022년 8월 25일, 파키스탄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홍수로 파손된 철도 옆 도로를 걷고 있는 파키스탄 신드주의 마을 주민. ©Asim Hafeez

파키스탄 신드주에서 비식량구호품을 받은 수재민. ©Asim Hafeez/MSF

신드주에 설치된 이동식 정수시설에서 물을 받아 이동하고 있는 여성. ©Asim Hafeez/MSF

홍수 발생 후 6개월이 지난 현재, 파키스탄은 여전히 대홍수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의 필요는 막대하나 실제 이뤄지는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홍수 피해가 심각한 지역 에선 여전히 식량, 깨끗한 식수와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차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홍수 이후 영양실조와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고 있는 파키스탄 신드(Sindh)주 와 발루치스탄(Balochistan)주 동부의 홍수 피해 지역에는 지난해 말부터 말라리아나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아동 환자가 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일반적으로 말라리아 환자가 감소해야 하는데,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국경없는의사회의 이동진료소에서 검사한 환자의 절반이 말라리아 양성일 정도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 지역에서 42,000명에 달하는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했다.

홍수가 지역의 주요 생계 수단인 작물과 가축에도 피해를 끼치면서 급성 영양실조 환자도 늘고 있다. 말라리아와 마찬가지로 활동을 개시한 시점부터 1월까지 이동진료소에서 검사한 환자의 절반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였다. 더 나아가 여전히 텐트나 임시거처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고 깨끗한 식수가 부족한 상황 이다보니, 설사나 피부 감염 환자도 많은 상황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살던 집은 홍수로 파괴됐고 주변도 여전히 침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파괴된 삶의 터전은 생계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심리적 응급처치와 집단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수위가 잦아들었더라도 수원이 오염돼 식수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작물 및 식량 창고는 파괴되고 가축은 폐사했다. 게다가 다음 파종시기에 맞춰 밭을 복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식량 부족 문제는 앞으로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외곽 지역에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고 위생 키트를 가정마다 보급하고 있지만, 여전히 홍수 피해는 지역주민에게 큰 고통이 되고 있다.

특히 수재민의 겨울나기는 더욱 혹독했다. 열악한 임시거처에서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수재민을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담요 등 방한 용품으로 구성된 비식량 구호품을 보급했다.

 

수재민이 모인 카라치의 임시 정착촌. ©Zahra Shoukat/MSF

수재민이 모인 카라치의 임시 정착촌. ©Zahra Shoukat/MSF

파키스탄 대홍수 직후 접근이 차단된 마을로 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긴급구호팀. ©Zahra Shoukat/MSF

 

2월 23일,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는 활동 브리핑 시리즈 ‘포커스’를 통해 파키스탄 홍수 위기를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번 브리핑에서는 세르지오 체키니(Sergio Cecchini) 파키스탄 현장 책임자가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위기 상황과 국경없는 의사회의 대응 내용에 대해 직접 전했다.

“파키스탄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10여 개국 중 하나 입니다. 몬순(Monsoon)이라고도 부르는 계절성 폭우가 원래 발생 하는 지역이지만 이번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더욱 심각 했죠. 파키스탄은 고산지대가 많은데, 온도가 상승하여 산 위의 눈이 녹아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했습니다.

6개월 전 발생한 홍수로 3,300만 명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걸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동이나 담요 등 기본적인 필수품도 없으며, 특히 모기로 전파되는 말라리아와 같은 벡터 매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모기장을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피해가 극심한 신드주에서는 보통 일 년 에 두 번, 3월과 10~11월에 말라리아 유행철이 있습니다. 하지만 홍수가 발생하고 수위가 잦아들지 않아 모기가 번식하여 말라리아 유행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동진료소를 통해 호흡기 감염이나 설사, 피부병, 말라리아 등을 앓는 환자를 위한 필수 의료서비스 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외에 물탱크 및 식수펌프를 설치하고 벡터를 통제하기 위한 식수위생 활동과 모기장·담요·양동이 등을 보급하는 비식량 구호품 보급 활동, 보건증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콜레라와 뎅기열이 유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26,000회 이상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번 대응 활동을 잘 운영할 수 있었던 데는 파키스탄 당국과의 협업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인데요. 국경없는의사회가 긴급 대응 활동을 개시한 9월, 국경없는의사회는 파키스탄에서 원활히 활동하기 위해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끊임없이 우리 단체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저 환자들을 돕기 위해 파키스탄에 왔다고 전했죠. 현지 당국을 설득해 추후 다른 위기 발생 시 재빠르게 개입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 원칙인 독립성, 중립성, 공정성을 강조하고 설명하는 일은 효과적인 활동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 주어 환자를 신속히 치료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홍수 위기는 단기간에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또 한번의 계절성 폭우철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고, 보건 영역도 만성적인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빈곤으로 인한 풍토병 유행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현지 당국과 협업해 가장 극심한 필요에 대응하고 긴급 대응 역량을 제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긴급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테일러(Edward Taylor) 국경없는의사회 긴급구호 코디네이터는 “현재 피해 복구와 재건 에 초점이 옮겨가고 있어, 피해 인구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지원 확대는 부족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지역에는 의료적, 인도적 지원이 여전히 절실 하며, 식량, 깨끗한 식수, 의료서비스, 거처 등 필수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시급히 확대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해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지만, 언제나 가장 취약한 인구에게 가장 큰 피해를 남긴다. 취약한 지역에서 일어난 재해의 결과는 더욱 길고 무겁게 남지만 외부의 관심과 지원은 그만큼 이어지기가 어렵다. 6개월 지난 시점에 돌아본 파키스탄 홍수, ‘과거’가 되기엔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인도적 필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