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VOICES FROM THE FIELD

정상훈 I 강경애

수단 I 시에라리온

 

수단 정상훈 활동가 I 시에라리온 강경애 활동가


정상훈 활동가 | 수단

작년 말부터 올해 4월 중순 분쟁이 격화되기 전 3월까지
수단 옴두르만 근처 움바다 지역에서 근무하고 돌아온 의사 정상훈 활동가가 이번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소개한다

수단의 옴두르만이라는 대도시에서 차로 40-50분 정도 걸리는 변두리 지역인 움바다Um Bada에 위치한 4개의 진료소에서 주로 일했습니다. 수단의 정치경제 상황이 좀 복잡합니다. 2017년만 해도 수단 1인당 국내총생산이 3,188달러였는데 최근 수년간 불안정한 정치 국면이 계속되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2021년 1인당 국내총생산은 751달러로 전보다 무려 4분의 1토막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고통받는 사람들은 빈곤한 사람들이죠. 대도시에서는 빈부격차도 심해졌고요. 국경없는의사회는 수단에서 코로나19 긴급대응도 하다가 움바다의 열악한 상황을 보고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서도 진료소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빈민도 많고, 인근 남수단이나 에티오피아 분쟁지역에서 넘어온 난민도 많았습니다. 진료의사로서 진료도 하고, 현지 의사들에게 기술적 조언을 하는 일종의 자문Technical Advisor 역할도 했죠.

‘우리 진료소가 없었으면 이 아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4개 진료소에서 모두, 거의 대부분이 아동 환자였습니다. 응급환자 중에서는 폐렴 환자들이 가장 많았어요. 열에 들뜬 채 숨을 헐떡거리고 갈비뼈 사이 살이 움푹움푹 들어가는 어린 아기들이요. ‘우리 진료소가 없었으면 이 아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한 순간들이었죠. 다행히 이들을 병원으로 후송하면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퇴원할 때까지 치료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폐렴과 함께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역시 영양실조였습니다. 저희 진료소를 방문한 어린이 환자의 약 20%는 중등도 또는 중증의 급성 영양실조였어요. 지금도 한 아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2kg정도 되는 한 아기는 위 팔 둘레가 성인 손가락 두 개를 합친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였죠. 보호자에게 물으니 지난 한 달간 설사를 계속했다는 겁니다. 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왜 이 아기를 좀 더 일찍 데려오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영양실조가 그렇게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전 묻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왜 더 일찍 데려오지 않으셨어요?” 그랬더니 “여행을 해야 했다”고 짧게 대답하시더군요. 더는 꼬치꼬치 캐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국내 실향민(무력분쟁, 재해 등의 영향을 받거나 피해를 피하기 위해 집을 강제적으로 떠나야 한 사람들) 으로서 이주를 자주 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을지 모르죠. 또 그곳에서는 아이들을 평균 4명 이상은 낳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이들을 일일이 돌볼 겨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식량 상황도 불안정하고, 엄마들이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면 모유가 원활하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요. 영양실조에 폐렴이나 말라리아가 동반되면 상태는 더욱 위험해집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현장을 떠나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옴두르만의 하루는 아침 8시에 시작합니다. 8시에 옴두르만 시내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실 앞에서 다같이 만나서 차량에 올라탔습니다.
40-50분간 포장과 비포장이 번갈아 나타나는 도로를 따라 진료소로 출근을 합니다. 10-12월 기간에는 40도가 넘는 기온이 계속돼 태양이 쏟아내는 광자光子에 얻어맞아 짜부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진료소에는 전기가 안 들어와서 에어컨은커녕 팬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잠깐 일어설 틈도 없이 바쁘다보니 위아래 옷이 흥건해질 정도로 땀에 젖었죠. 출퇴근길에도 제게 보이는 건 모래뿐이라 처음에는 수단 인구 90%가 농업에 종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움바다라는 곳도 초록색이라고는 볼 수 없는 지역이라 하루 일과가 끝나면 머리카락이 모래를 하도 뒤집어써서 철사처럼 뻣뻣해지곤 했습니다. 수단 동료들이 가끔 “수단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 물었어요. 사실 저에겐 ‘건조한 모래땅’이라는 인상뿐이었습니다. 수도도 전깃줄도 없이 드문드문 놓인 단층 흙벽돌집들이 하늘과 모래땅 사이 풍경의 전부인 곳이었거든요. 그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분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생명줄입니다. 일단 비용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산전·산후 관리와 보건증진 활동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보건증진 활동가Health Promoter들은 지역사회에서 인지제고 활동을 많이 하는데요. 제가 체류하는 동안에도 뎅기열이 유행하고, 남수단에서는 콜레라가 유행하기 시작해서 예방적 차원의 교육이 많이 이뤄졌습니다. 그런 활동들을 보면서, 의사들이 살리는 목숨도 많지만, 그런 보건증진 활동이 살리는 목숨도 많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공유되고 전수된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 그것들은 국경없는의사회가 현장을 떠나도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강경애 활동가 | 시에라리온

약사, 시에라리온
산골 마을을 찾아가다

작년 말부터 올해 4월까지 시에라리온에서
첫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약사 강경애 활동가가 프로젝트 내용과 소감을 나눈다.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Freetown에서 서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는 케네마Kenema라는 지역의 국경없는의사회 모성병동과 아웃리치팀에서 약사로 활동했습니다. 인접국 라이베리아 및 기니 국경과도 가까운 지역입니다. 하지만 교통편이 잘 없고 도로 사정이 열악해서 비가 오면 길이 끊겨버리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병원은커녕, 한국의 보건소와 유사한 형태인 지역 내 보건 거점을 방문하려면 6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진 의료 소외계층이 많은 곳이기도 하죠. 국경없는의사회는 병원팀과 아웃리치팀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였는데요. 지역적으로 라싸열Lassa Fever 및 말라리아 발병률이 높은 곳이기 때문에, 아웃리치팀은 외딴 지역 소외계층으로 하여금 예방·진단 및 치료를 위한 약품 공급과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보다 쉽게 확보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남 구례군 보건소를 통해 지리산 골짜기 곳곳에 있는 환자에게도 약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거랄까요. 저는 약사로서 이런 팀에 합류하여, 외딴 지역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꼭 필요한 약국 내 의약품의 저장 상태, 재고 확보 및 의약품의 유효기간 등을 확인하고, 이것들이 환자들에게 제대로 투약되는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이와 관련하여 현지 직원을 교육하는 일을 했습니다.

냉장고 옆에서 마음이 편했던 이유

외딴 지역 곳곳에 백신을 공급해 질병예방을 우선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백신의 유효성을 유지하여 수혜자들이 안전하게 접종을 받으려면 ‘콜드체인Cold Chain’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요. 쉽게 말해 백신 저장장치의 온도 유지관리인데요. 현지 온도가 보통 36도가 넘어가는 기간에는 이 콜드체인에 문제가 생기기 쉬워서 일과시간과 상관없이 24시간 대기하다가 필요 물품을 수령하는 등 관리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에너지나 설비관리팀이 아마 저 때문에 성가시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콜드체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요. 창고에 전기가 나가서 약품을 못 쓰게 되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안되니까, 주말에도 나가서 가동 상태를 확인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오전 8시에 국제 배송되는 약품 조달을 준비하려고 한 보관 현장에 나가보니 모든 냉장고 전원이 내려져 있어서 아찔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쥐가 전선을 갉아먹은 것이었어요. 휴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팀에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기 전에 전원을 다시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세 번쯤 있었는데, 다들 휴일을 망쳤다고 짜증내지 않고 달려와 주셔서 거듭 감사를 드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있는 동안은 콜드체인에 문제가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냉장고 옆에서 온도 체크하고 있을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웃음)

‘내가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다’

제가 근무하던 곳은 기본적으로 1960년대 한국 시골 마을들 같은 환경이라, 저는 될 수 있는대로 많이 걷고 동네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았는데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약품 사용량 모니터링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보고서 작업을 하고, 6시쯤에는 동네에 나가 한 바퀴 돌면서 동네 주민들과 인사도 하고 그랬습니다. 출근하면 콜드체인과 창고 온도 현황 확인부터 하고, 기타 물류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점검했습니다. 현지 의료진과 상시로 협업하며 복약지도에 오류가 없도록 안내하기도 했고요. 업무 중 약국 환경 개선과 재고 관리가 있다 보니 직접 물건도 나르고 했습니다. 보건소에 나가보면 보통 오전 11시면 사람들이 꽉 차 있어요. 5세 이하 백신 접종 프로그램에 따라 보호자들이 아이 백신을 맞히려고 집에서 새벽에 나와서 걸어오는 것이죠. 그리고 12시가 넘으면 다시 몇 시간을 걸어 황량한 곳의 집으로 돌아가고요.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플 때, ‘내가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도 무사히 안전하게 도와주고, 설령 분만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아기와 내가 둘 다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오랫동안 쌓아온 결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그곳에서 믿을 수 있는 고품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죠. 치료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는 그 믿음을 충족시킵니다. 인간을 존중한다는 편견 없는 가치와 그에 대한 신뢰를 추구하고, 실제로 이를 실행하는 기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