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VOICES FROM THE FIELD

정부근 공급망 관리자
스칼렛 웡 응급 정신건강 활동 관리자

"내가 후원하는 곳에 직접 가서 잘 돌아가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

“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01 정부근 공급망 관리자 
나이지리아 아부자 Abuja | 2023년 11월 – 2024년 5월

어떤 ‘인생 이모작’

어떤 일을 했냐고요? 공급망 관리자Supply Chain Manager로서 현지에서 이뤄지는 물품과 서비스의 조달을 담당했습니다. 온갖 종류의 물품, 즉 기름 등 발전기에 필요한 연료부터 컴퓨터, 에어컨, 스마트폰 등 각종 사무실 비품까지 제때, 적정가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했죠.

국내외 유수 기업체에서 수십 년간 경력을 쌓고 임원급으로 은퇴했지만, 처음 국경없는의사회 매니지먼트 역량과 기술을 보고 놀란 이유?

알아서 잘 굴러가서요. 파견되기 전에는 ‘현지 직원들이 있고, 국제적으로 파견되는 직원International Mobile Staff, 이하 IMS로 표기 즉, 활동가들은 단기로 6-9개월씩만 파견된다’고 해서, ‘이게 관리가 잘 되겠나’하는 회의를 품고 있었거든요. 제가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유럽계 다국적 회사 사장으로도 있어봤고, 한국 정부 원조기관에서 파견되는 타국 정부 장관 자문으로도 일해봤는데요. 이런 곳들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어서 처음엔 ‘여기는 뭐가 있어서 잘 굴러갈까?’ 궁금했을 정도로 잘 돌아갑니다. 아무래도 민간 부문은 높은 급여가 일의 동력이 될 테지만, 국경없는의사회는 급여가 높은 편이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는데도요(웃음). 결국은 정책과 매뉴얼 부분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현지에 나가보기 전에는 제가 나이가 많다 보니 조금은 어색하고 위축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자신감이 붙었어요.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고객 만족이다. 그런데 우리 고객이 누구냐?’ 내부적으로는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소, 프로젝트 현장 책임자가 될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생명을 살리는 환자들이 될 수도 있죠.


후원자에서 활동가로

저도 작년 초반부터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을 시작한 후원자입니다. 활동을 나가게 된 동기로 생업에서 은퇴 후에 ‘내가 후원하는 곳에 직접 가서 체험을 해서 잘 돌아가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현장에 다녀온 후부터는 집사람과 결혼한 자식들에게도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을 권유해서 이제 그들도 후원자가 됐습니다. 주위 친구, 소모임 등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경험과 현장 사례를 소개하고 적극 추천할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더 나이 들기 전에 너희도 다녀와라. 아니면 후원을 해라’하고요. 인생 이모작 시기에는 손주들 돌보기와 강의 등 여러 가지 우선순위가 있을 수 있고 실제 저도 그런 것들도 다 하고 있지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도 정말 좋은 선택지였다고 생각합니다.

 



02 스칼렛 웡 Scarlett Wong 응급 정신건강 활동 관리자 
가자지구 라파 Rafah | 2023년 11월 – 2024년 5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전력을 다하는 현지 동료들

팔레스타인 현지 동료들은 매일 출근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민들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탱크, 미사일, 쿼드콥터, 드론, 아파치 헬리콥터 사격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일터로 향해 할 일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원을 찾아온 모든 아동, 남성, 여성들에게 헌신과 친절을 보이는 동료들을 보면서 저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죠.

 

분쟁 지역의 정신건강 지원

보호자 없이 고아가 된 아동들의 숫자가 보고된 바에 따르면 약 17,000명으로 추산됩니다. 피난처를 찾아 비좁은 라파 지역으로 이주한 인구의 밀도도 상당합니다. 수십만 개의 텐트가 비, 바람, 추위에 노출된 채 사생활 보호와 식량, 물, 전기에 대한 접근성도 거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죠. 이는 가자지구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흔치 않은 일입니다. 주민들은 보통 우리같이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살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부모들은 일하러 가는 것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텐트에서 거주하며 학교나 일터에도 가지 못하고 식량과 거처도 없는 채로 지내고 있죠. 두려움 속에서 불가피하게 느껴지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삶은 사실상 멈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매일 밤 많은 부모들이 이른 새벽에 다시 들려오는 포격과 폭격 소리에 울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가자지구 상황은 제가 본 것 중 최악의 인도적 재앙입니다. 다른 인도적 상황의 경우, 사람들이 피난할 수 있고 민간인의 생명이 무엇보다 우선시됩니다. 다른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대개 이렇게까지 고의적이고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굶주림을 당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망하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다수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살해되고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은 본 적이 없습니다.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국경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밥을먹고, 외출하고, 학교와 직장에 다니며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동네 전체가 파괴되고, 민간 인프라가 손상되고, 주민들이 인위적인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평화로운 삶과 우리가 누리고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똑같이 원합니다. 그들은 친구 혹은 가족들과 밥을 먹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자지구의 문해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좋은 삶과 미래를 꿈꿉니다. 그들은 어머니, 아버지, 교사, 간호사, 소규모 자영업자, 변호사, 조산사, 축구팬, 예술가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국제사회 전체가 이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민간인, 병원, 의료진들을 위한 휴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국제법과 국제 질서의 정당성에 우리가 과연 희망, 믿음, 기대를 걸어도 되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