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인터뷰] <중증외상센터> 원작자 이낙준 후원자와의 만남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원작 웹소설 작가, 이낙준 후원자 인터뷰

넷플릭스 글로벌 1위 히트작 '중증외상센터' 원작자가 국경없는의사회에 후원해온 이유

Q1. 이비인후과 전문의이기도 하시지만, 이제 명실공히 넷플릭스 글로벌 1위에 빛나는 ‘중증외상센터’ 원작 소설 작가로 더 잘 알려지고 계세요. 그런데 이 인기작 ‘중증외상센터’에 한국 너머의 지역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게 된 계기가 바로 직접 알고 지내시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인 활동가이시라고요?

저의 의대 동기 중에 최용준이라는 친한 형이 있어요. 학교도 수석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의대 졸업 후에는 이 세상 어려운 이들을 위한 활동을 해볼 거라고 늘 말하곤 했거든요. 사실 그렇게 말하는 건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산다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그런데 이 형은 그동안 정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다녀왔을 뿐 아니라, 지금도 상대적으로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국내 지역 소아과 진료에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저 형은 정말 자기가 말했던 것처럼 사네. 그런데 저 단체는 뭘까?’하고 생각했던 것을 계기로 국경없는의사회 관련 책들도 좀 읽어봤습니다.

남수단 활동 당시 국경없는의사회 최용준 활동가 ©MSF/최용준

작품을 쓰면서는 ‘우리나라 의료계가 정상화될 수 있다면, 주인공은 무엇을 하게 될까? 이 세상에는 뭐가 더 필요할까?’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전력이나 이후 활동 무대가 외국으로 넓어지게 됐고요. 물론 제 작품 속 설정들이 현실과 다른 측면도 많고, ‘사실상 판타지’인 내용에 엄연히 정치적 중립 원칙과 안전 활동 수칙에 따라 일하고 있는 실제 단체명을 쓸 수는 없으니까, 이번 넷플릭스 시리즈 화 과정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 대신) 적절한 다른 이름으로 단체명 변경이 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를 방문한 이낙준 후원자 ⓒMSF

Q2. 이전에도 여러 작품을 써 오신 인기 작가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시지만, 본인도 직접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될 생각을 해보셨다고요?

저도 의대생 시절 스리랑카 모 지역으로 의료 봉사 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차밭이 되고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었는데 정작 거주민들은 시민권도 없어 기초적 의료보건 서비스도 누리지 못하는 곳이었죠.

국경없는의사회가 한국사무소를 통해 활동가를 채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가 채용설명회도 여러 번 들어봤어요. 직접 구호 활동을 나가볼 마음이 있는데, 제가 지금 작가이기도 하고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는 등 현실에 욕심도 있고, 아직 아이들도 어리고 하니까, ‘애들 대학은 보내고 나가보자’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거죠.

당장 직접 활동을 못 나가니까 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국경없는의사회 관련 책들을 읽어보니, 보다 투명하고, 생명을 살리는 활동에 순수하게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요. 국경없는의사회가 중립과 공정을 지향하는 단체로서 의료 본연의 활동에 집중하는 점이 좋습니다.

Q3.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가로서는 나가보지 않으셨지만, 규모가 꽤 큰 후원은 여러 번 하셨어요.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장 활동을 봐도 다른 나라에서 구호 활동을 한다는 게 정말이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의료인들만 따로 나가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종합적인 일이고요. 현장에서는 심지어 당장 생명을 구해주려고 한다고 해도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을 거고, 나름의 싸움이 있을 겁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위해 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구호 활동가 들은 꼭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우리가 생각하기에 쾌적하기보다는 열악한 환경에 나가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잖아요. 본질적으로 우리와 좀 다른 사람들이 바로 구호 활동가들이라고 생각해요.

2019-2021년경 ‘중증외상센터’ 원작 웹소설이 웹툰화가 먼저 되면서 돈이 좀 생겼습니다. 2022년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격화로 인해서, 제가 그곳을 대상으로 지정한 기부를 딱히 하진 않았지만, 후원에 관심이 더욱 생겼던 것 같고요. 요즘에도 가자지구나 아프리카 곳곳에서 분쟁으로 인해 주민들이 힘든 상황에 처한 곳이 많죠. 활발히 조명되지 않는 곳들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런 곳들에 더욱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인터뷰 중인 이낙준 후원자 ⓒMSF

Q4. 분쟁 현장에 대해 평소 가지고 계신 관심이 작품 속에 잘 녹아 있는 것 같아요.

국제적 분쟁을 포함한 전 세계 역사와 상황에 원래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현장에 대한 정보는 요즘은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많이 찾아보고요. 파키스탄 한구에 대한 책을 읽어 그곳을 배경으로 작품을 쓰기도 했고, 제가 다녀온 스리랑카 지역을 기억하며 쓰기도 했죠. 국경없는의사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현장소식도 평소에 잘 챙겨보고 있습니다(웃음).

Q5. 이번에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진 중증외상센터에 대해 ‘정말 잘 쓴 판타지’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현실에도 영웅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 외상 응급의료 체계를 보면 사실 현실은 꽤 엉망인 편이죠.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 영국,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체계가 잘 되어 있고 보상도 확실하게 해주며 의료인의 사법처리에 대해서도 보호를 잘 해줍니다. 중증 외상 환자가 수는 적지만 돌발적 변수로 일어나는 일들인데, 타 국가들은 권역을 만들어 관리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체계가 잘 관리가 안 되고 있고 수가 조정 등도 어려워 이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결국 포기하고 나가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현실에서 기존에 성립되어 작동 중인 이해관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 곳, 분쟁 지역처럼 아예 기존 체계가 거의 없는 곳이라면, 의료 활동을 하러 가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일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생각 안하고, 다른 것 안 보고, 그저 사람을 살리려고 왔다. 내가 없었으면 죽었을 사람들’ 이렇게 어떻게 보면 현실을 단순화시켜볼 수가 있는 거죠.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 ‘판타지’를 통해 사람들이 현실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우리나라에 외상센터들이 2015년 이후로 꽤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잘 운영이 되지 않고 상황은 어떻게 보면 더 악화된 것 같거든요.

Q6. 향후 집필 계획을 알려주시겠어요?

지금 CSI같은 법의학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국경없는의사회와는 관련 없는 분야겠죠(웃음). 디지털 헬스케어쪽에서 활동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도 생각 중이고요.

Q7.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감화시킬 수도 있을까요? 인도주의라는 가치는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인도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종교로 인한 갈등들도 보면 ‘이런 게 과연 언젠가는 해결이 될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서로 다르게 살아온지 너무 오래되고, 미움이 너무 오래 쌓여온 곳들에서는 특히 그렇죠.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느 날 자신과 다른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와서 몇 명 정도의 생명을 살려낸다고 해서 그 사람들 마음이 근본적으로 바뀔까요? 그런 생각이 솔직히 조금은 있지만, 적어도 제가 쓰는 소설 속 세계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마음이 변화하는 단 한 가지 경우 정도는 제가 그려내볼 수가 있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계속하는 사람들과, 거기 끝내 감화되어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도 있고요. 그렇게 소설은 현실 세계와는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까 결국은 조금 판타지가 되는 것 같아요. 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시면, 예를 들어 병원 안에서 갈등이 거의 없어요(웃음).

Q8. 그간 국경없는의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 주신 이유,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소 후원에 대해 가지고 계셨던 생각을 나눠주세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하지 않은 곳들이 이 세상에는 많잖아요. 예를 들어 한국에 사는 우리는 나이가 많아 백내장이 생기면 수술하면 되고, 당뇨가 생기면 관리하면 되는데, 같은 상황에서 시력을 잃거나 죽음에 이르는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고요. 저의 경우 특히 어린이들에게 마음이 많이 가요. 어릴 때 고아원에 봉사를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부모가 없으면 우리나라에서 사는 게 굉장히 어렵구나’ 생각했거든요. 사회보장체계가 더 열악하거나 아예 난민들처럼 의지할 사회적 기반 시설이 없는 경우에는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성인이 된 난민이라면 현실을 벗어날 가능성을 꿈꾸기도 더욱 어렵겠죠. 그런데 어린이라면 일단 어떻게든 지지해 주고 제대로 된 교육까지 받게 되면 나중에 고국을 잊지 않고서 더욱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빚진 건 없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는 굉장히 운이 좋아서 대한민국에 태어나 운이 좋게 교육까지 받게 된 사람들이니까요. 이제 이런 걸 조금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