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활동가가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겠습니다.
지난 14년 동안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로, 사무소 직원으로 일한 파스콸레 피날디는 최근 구호활동가 채용 및 지원을 담당하는 ‘현장 인력 개발(Field HR) 매니저’로 한국사무소에 합류했다. “구호활동가가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파스콸레를 만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채용과 현장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국경없는의사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이전에는 이탈리아에서 주로 은행과 금융 분야에서 일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평소 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국경없는의사회에 오게 된 계기도 ‘책’ 때문입니다. 2003년 여름, 인류학 입문서를 읽었는데 정말 흥미로워서 인류학 석사를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인도적 지원과 보건 사회결정론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이때 저는 처음으로 “내 삶이 금융 분야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2005년 겨울에는 국경없는의사회 초기 활동가 중 한 명인 로니 브라우먼이 쓴 <보건 유토피아(Utopies Sanitaires)>를 우연히 읽게 됐는데, 의료 접근성 격차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이 멋진 단체의 일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채용되었다는 전화를 받던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구호활동가로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저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현장 경험과 학문적 채움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6년 7월, 파키스탄으로 첫 활동을 나가 2년 가까이 활동했고, 이후 케냐, 이집트, 라이베리아, 미얀마 등 여 러 나라에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활동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저는 지평을 넓히고자 ‘공중보건’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석사 과정을 밟으며 저는 ‘역학’이라는 분야에도 매료되었고, 1년 후 네덜란드로 가 역학 석사 과정도 밟았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이후 아이티에서 현장 역학 연구자로 활동할 수 있게 해주었죠. 아이티에서 ‘성 기반 폭력’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성·생식 건강과 권리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이후 청소년기 생식 건강을 중심으로 한 ‘인권’ 연구로 이어졌죠. 이후 계속해 현장에서 ‘역학자’로서의 역할을 이어갔고, 의료 데이터와 툴 분야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남수단, 말레이시아, 아이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죠. 이제는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전 경험을 살려 구호활동가 채용과 지원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수많은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각각 독특한 특성이 있어서 매 활동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수많은 추억을 안겨줍니다. 한번은 파키스탄의 외딴 지역에서 활동하는데,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였고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역의 유일한 국제 구호 단체였죠.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국경없는의사회가 일하는 지역 중에는 이런 곳이 많지만 국경없는의사회는 끊임없이 ‘접근(Access)’를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나중에 한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병원의 응급실에서 치료받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응급 이송 서비스를 지원받은 것이죠. “국경없는의사회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는데, 그때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케냐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시설을 국가의 보건부에 인도했던 과정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곳은 민족 간 분쟁이 있어 기초 의료 서비스가 매우 제한적인 지역이었는데,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을 이어가다 보건부에 시설을 인도하는 기념식에서 보건부 관계자가 “다른 단체와 달리 국경없는의사회는 매우 구체적인 의료 지원을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접근’을 위한 노력의 결실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죠. 여러 다른 현지 직원과 함께 일하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최근 이탈리아가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전 세계에서 연락이 왔어요. 10년 전에 같이 일하던 직원도 연락을 줘서 정말 고마웠죠.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의 삶을 소개한다면?
현장에서 만난 한 여의사를 소개하고 싶은데, 원래는 미국 뉴욕의 대학병원에서 일하다 은퇴하고 15년 넘게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해온 78세 의사였어요. 뉴욕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를 치료했다고 했는데, 그간 쌓은 전문성으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지역에서도 큰 기여를 한 분이었습니다. 특히 젊은 현지 의사 교육에 전념했는데, 이분은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런 전문성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국경없는의사회에서만 만날 수 있어요. 현장에서 같이 일하다보면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진정한 동료’가 되죠.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활동가를 찾고 있나요?
“적합한 때, 적합한 곳으로 적합한 사람을 보내는(Right person at the right time and place)”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 사무소의 경우 모든 구호활동가 파견의 가장 기초가 되는 ‘지원자 수’가 부족한 것이 큰 과제 중 하나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는 단언컨대 ‘가장 기억에 남는 여정’이 될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건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죠? 자신의 지식과 전문성을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를 만났을 때, 부상을 입었던 환자가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끊임없이 불확실성과 싸워야 하는 현장에서의 활동은 활동가 자신에게도 큰 자산이 됩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해결해나가며 결코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경험과 역량을 쌓아갑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적응력과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열정과 동기 부여, 국경없는의사회 가치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죠.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현장에서 함께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