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영양실조 위기 – 극심한 허기에 정신을 잃는 것만 같았어요
나이지리아 북동부 반키(Banki) 근처 마을에 사는 환자 2명의 이야기.
지금 그곳에는 인도적 의료 긴급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 8월 12일
7월 후반, 마카(55세)는 반키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의 도움을 받아 카메룬의 모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Josephine Makamukanga/MSF
마카(Maka, 55세의 할머니)
7월 후반, 나이지리아인 할머니 마카(Maka, 55세)는 카메룬에 있는 모라 병원에서 긴급 의료 지원을 받았다. 이를 위해 나이지리아-카메룬 국경에서 30km 떨어진 도시 반키 인근의 자택에서부터 먼 길을 이동해야 했다.
마카는 성인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중증 급성 영양실조를 앓고 있다. 최근 4개월 동안 나이지리아 북동부에서 벌어진 긴급 식량 위기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카와 함께 다섯 살배기 손자, 그리고 마카의 조카도 병원을 찾았다. 마카의 조카는 생후 11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왔다. 영양실조가 많이 진행된 상태인 두 아이도 병원에 입원해 구명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마카는 미소를 잃었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바싹 마른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치료를 받은 지 9일이 되자 마카는 점점 상태가 나아졌다. 마카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 저는 반키 외곽에 있는 마을 출신이에요. 잔인한 공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나야 했고, 넉 달 전에 식구들이랑 다 반키에 갇혀서 시내를 떠나지 못했어요. 그러다 식구들 몇몇은 행방도 놓쳐 버렸어요. 넉 달 동안 시내를 떠나지도 못하고, 우린 아무것도 못했어요.
정말 살기가 너무 어려워지더군요. 매주 식량 2kg을 겨우 받았는데 주로 쌀이나 옥수수였어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을 받았죠. 혼자 있든 아이가 10명이든 관계없이 말이에요. 저는 식량을 잘 나눠서 먹어야 했어요. 모두가 배불리 해먹으면 다음 배급 때까지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을 테니까요.
물은 하루에 한 양동이씩 받았는데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걸로 식수로도 쓰고 그릇이며 옷도 씻어야 했거든요. 심지어 한 양동이조차 못 받을 때도 있었어요.
당국에서 보낸 의료진이 이따금씩 와서 의료 지원을 했는데요. 그 사람들이 반키에 그리 오래 머물며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아직 반키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랑 다른 식구들이 이곳 카메룬으로 다 왔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나마 여기에는 취사도구도 좀 있고 식량도 있는데다, 힘들게 연명하긴 해도 안전하거든요. 병원 근처에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나이지리아가 고국이긴 하지만 거기서는 자유롭지 않고, 너무 무서워서 돌아갈 수도 없어요.”
7월 후반, 다요(31세)는 나이지리아 반키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의 도움을 받아 카메룬의 모라 병원에 이송되었다. ⓒJosephine Makamukanga/MSF
다요 (31세 어머니)
7월 후반, 다요(31세)는 반키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의 도움을 받아 카메룬의 모라 병원에 오게 되었다. 다요는 몸이 아픈 네 살배기 아들 바리네(Barine)와 함께 왔다. 중증 급성 영양실조에 걸린 바리네는 급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모라에 도착하기 전, 다요는 허기가 너무 심해서 어느 때엔 정신을 잃는 것만 같았다면서 “누군가 제게 말을 건넸는데,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였어요.”라고 전했다. 다요는 그 지역 의료팀들이 진료 뒤에 처방한 몇 안 되는 약조차 복용을 거부했다. 빈속에 알약을 먹으면 참을 수 없는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입원하고 9일이 지나자 바리네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아직 영양실조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치료식을 삼키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바리네와 관계가 없는 다른 아동 2명도 같은 시기에 입원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둘은 생명을 잃고 말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그들의 상태는 너무나도 심했던 것이다.
바리네, 다요와 같은 나이지리아 피난민 1만5000여 명은 반키에서 근 5개월간 말할 수 없는 여건 속에 지내 왔다. 모든 활동이 멈추고 시내를 떠날 수도 없는 지금, 반키는 거의 유령도시나 다름없다. 다요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반키에서 15km 떨어진 마을에서 왔어요. 어느 날 무장한 남자들이 마을에 들어오더니 걸어 다니지도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 남자들은 폭력적이었고, 우리를 위협했어요. 그래서 저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덤불 속으로 피신했어요. 손에 든 것이라곤 긴 칼 몇 개와 막대기들뿐이었죠. 그렇게 있는데 허기가 찾아왔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른 수수며 콩과 같이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요리해서 먹었어요. 밤에 불을 피우면 우리가 피하려는 이들의 주의를 살 수도 있어서 낮에만 요리를 할 수 있었죠.
이후 우리 마을은 완전히 불타버렸어요. 그 폭력사태 속에 저는 어머니, 아버지, 시어머니를 잃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빈손으로 반키에 도착했어요. 그릇이나 냄비도 하나 없이 그저 등에 옷가지만 몇 개 있을 뿐이었죠. 시내를 벗어날 수 없었던 우리는 물자가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외부 물자에 완전히 의존해서 살았죠. 다행히 당국이 사람들에게 식량을 좀 나눠 주는데요. 정말 양이 부족해요. 매주 쌀이나 옥수수 2kg 정도를 겨우 받는데, 때로는 그걸로 2주를 버텨야 할 때도 있어요. 연료가 필요할 땐 창고에서 나무를 가져다 땔감으로 쓰고, 폐가 같은 곳에 가면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도 있어요.
반키에 있는 동안 아직 비누를 한 번도 못 봤어요. 물은 진짜 주의해서 써야 돼요. 매일 받는 적은 양을 가지고 식수로도 쓰고 세면도 하고 옷도 빨아야 하거든요.
반키가 제 집인데도 너무 무서워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하룻밤 사이에 아이 셋과 여자 둘이 납치를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가지고 있던 식량이랑 다요. 거기 있는 아이들이 너무 걱정이에요. 남동생이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지금 제 아들이 아프거든요. 병원에서 식사를 받을 때마다 아직 거기 있는 사람들이 생각나요.
우리 식구들이 전부 이리로 왔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지낼 수만 있다면 식구들과 나무 밑에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아요. 나이지리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반키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