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나와있는 국경없는리포터입니다!
여러분께 처음으로 전해드리는 소식은 2021년, 국경없는의사회가 설립된 지 50년이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먼저 한국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로 불리는 이 단체, 원래 이름이 뭔지 아시나요? 프랑스에서 태어난 단체인 만큼 원래 이름은 프랑스어인데요, 바로 ”Médecins Sans Frontières (메ㄷ쌩 썽 ㅍ홍띠에흐)”, 줄여서 “MSF”라고 하기도 합니다. 직역하면 “Doctors Without Borders, 국경 없는 의사들”이 되죠. 왜 이런 이름의 단체가 만들어졌을까요? 국경없는의사회 공동 설립자 13명 중 한 명인 베르나르 쿠슈네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설립 이념은 단순합니다.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 지금은 당연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국경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로 이름을 정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 베르나르 쿠슈네르(Bernard Kouchner, 국경없는의사회 공동 설립자)
1971년 비아프라 참상의 현장으로 뛰어든 의사들
프랑스 68혁명의 열기 속에서 전쟁과 재난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가 환자를 돕겠다고 나선 젊은 의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인도주의(Humanitarianism)’를 표방하며 ‘긴급 구호’의 개념을 새롭게 변화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국경없는의사회’의 시초가 되었죠. 여기서 ‘인도주의’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신념 아래 인간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인종, 민족, 국가, 종교 등의 차이를 초월해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남부의 비아프라(Biafra)라는 지역이 분리 독립을 선언했는데요. 나이지리아 군이 이 지역을 봉쇄해버리면서 비아프라 주민들은 기근으로 생명을 잃어 갔고, 프랑스 적십자사는 이곳에서 직접 주민들을 도울 자원봉사자를 찾았습니다.
이 요청에 응한 사람이 바로 막스 레카미에(Max Recamier)와 베르나르 쿠슈네르(Bernard Kouchner)였고, 이들은 다른 임상의 2명, 간호사 2명과 한 팀을 이뤄 비아프라로 향했습니다. 이들이 비아프라에서 목격한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유혈이 난무하는 교전 지역에서 하루하루가 위태로웠죠. 병원은 나이지리아 군의 표적이 되기 일쑤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전쟁 부상자를 수술했습니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려라!
레카미에와 쿠슈네르는 지역이 봉쇄된 탓에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굶주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이 상황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나이지리아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동시에, 나이지리아 정부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적십자사에 대해서도 비판했는데요, 이 뜻에 함께 한 의사들이 바로 ‘비아프라인들(Biafrans)’이라고 불렸죠. 이들은 자체적인 긴급 의료구호 단체를 설립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1971년 어느 날 프랑스의 의학 잡지 토누스(Tonus) 소속 기자였던 레이몬드 보렐(Raymond Borel)과 필립 베르니에(Philippe Bernier)는 재난의 한 가운데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의료 단체를 설립하자는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비아프라인들’이 뜻을 함께하게 된 것이죠.
프랑스 의학 잡지 토누스에 게재된 호소문. ©MSF
1971년 12월 22일, 드디어 국경없는의사회가 공식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의사와 언론인으로 구성된 13명의 설립자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지원자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성별, 인종, 종교, 정치적 성향을 떠나 누구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신념, 그리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 지원이 국경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치를 바탕으로 국경없는의사회가 설립된 것입니다.
1971년 12월 20일 헌장에 서명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설립자들. ©MSF
국경없는의사회 초기 설립 멤버 큐슈네르, 레카미에와 베르니에. ©MSF
바로 여기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핵심 가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단체의 시초부터 ‘의사’와 ‘언론인’이 함께 한 만큼, 전 세계의 취약하고 소외된 환자를 위한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세상의 관심 밖에 있는 이러한 ‘소외된’ 인도적 위기를 세상에 알리는 ‘증언 활동’도 국경없는의사회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단체의 사명입니다.
2013년 11월 필리핀 태풍 하이옌 재해 현장에서 피해 상황을 전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로지스티션. © Yann Libessart/MSF
국경없는의사회는 제약회사 존슨앤존슨에게 결핵 치료제 베다퀼린의 가격을 낮춰 필요한 모든 환자에게 접근성을 향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 Negin Allamehzadeh/MSF
이렇게 탄생한 국경없는의사회, 무엇이 특별할까?
그렇다면 국경없는의사회가 다른 단체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국경없는의사회가 50년 동안 지켜온 세 가지 핵심 원칙, 공정성, 중립성, 독립성에 있습니다. 비슷한 단어 같지만 각각 중요한 의미가 있고, 이 세 가지 원칙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국경없는의사회가 의료 구호 현장에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특정 국가의 정부나 국제기구를 비롯해 어떤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독립성’의 원칙은 분쟁, 전염병, 자연 재해 등 긴급 상황에서 독립적인 상황 판단과 의사 결정을 통해 신속하게 투입되어 활동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정부나 국제기구 지원금을 최소화하고 전체 후원금의 95% 이상을 민간 후원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지하는 개개인 후원자가 힘을 보태 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죠.
분쟁 상황에서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중립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모두 똑같은 ‘환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죠. 국경없는의사회는 분쟁 상황에서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중립을 유지합니다. 실제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는 서로 총을 겨눴던 적군이 함께 치료받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떠한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의료 지원을 제공하며 ‘공정성’을 지킵니다. 인종, 종교, 성별,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오직 환자의 의료적 필요에만 근거해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죠.
이 세 가지 원칙과 더불어 국경없는의사회는 치료받는 환자와 후원자에게 단체의 활동을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여기고 활동의 효과에 대해 정기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책무성’, 의료 윤리 규범을 준수하며, 특히 의료 활동 중 개인이나 집단에 해를 가하지 않을 의무를 다하는 ‘의료 윤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환자의 비밀을 지키고, 자율성과 치료에 동의할 권리, 환자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 것이죠.
이 원칙들은 국경없는의사회가 50년간 활동하는 데 변함없는 중심축이 되어주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달려온 50년
50년이 지난 지금, 국경없는의사회는 전 세계 45,000여명의 활동가가 함께하는 세계적인 국제 의료구호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37개의 국가 사무소와 지역 사무소가 현장 활동을 지원하고 있고, 역학 및 의학 연구나 인도주의 또는 사회 활동 관련 연구 등 특수 전담 기관의 역할을 하는 8개의 위성 기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65,000여명의 후원자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뜻을 함께 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50년은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신속하고 효과적인 의료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 존재 이유는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세계 곳곳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며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중립성을 지켰습니다. 자연재해 속에서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분초를 다투고, 전염병과 여러 다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무엇보다 의료 서비스 접근이 제한된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5년 격렬한 분쟁으로 공습과 포격이 일어나고 도로가 통제되는 등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극히 제한된 예멘에서 긴급 수술 병원을 운영했다. © Guillaume Binet/MYOP
국경없는의사회는 2014년 서아프리카에 창궐한 에볼라에 대응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이 에볼라로 가족을 잃은 아동 환자의 퇴원을 준비하며 소독을 돕고 있다. © Anna Surinyach
2013년 필리핀 태풍 하이옌 피해 지역에 공기주입식 임시 병원을 설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 Yann Libessart/MSF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외딴 지역에서 홍역 예방접종을 진행하기 위해 오토바이로 백신을 운반하고 있다. ©Diana Zeyneb Alhindawi
현장 구호활동가와 현지 직원, 환자, 협력단체와 후원자, 모두가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말라위의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활동 매니저가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 Isabel Corthier/MSF
1971년 프랑스의 젊은 의사와 언론인에 의해 태어난 ‘국경없는의사회’.
5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 없이, 전 세계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