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나와있는 국경없는리포터입니다!"
‘윈터 블루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겨울이 되면 해가 짧아져 피곤함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계절성 정동장애(계절성 우울증)라고도 하죠. 그만큼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국경없는의사회라고 하면 메스를 든 의사가 피를 흘리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셨나요? 국경없는의사회는 눈에 보이는 상처를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 즉 정신건강 지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정신건강을 지원하는지 궁금하시다고요? 국경없는의사회가 요르단, 남수단, 그리스, 방글라데시, 시리아 등지에서 펼치고 있는 활동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볼까요?
요르단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정신건강 팀은 이미 십수년간 이라크,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 인근 분쟁 지역에서 심각한 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겪고 그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해왔습니다.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시겠어요?
►요르단 암만 국경없는의사회 재건수술병원 정신건강 담당자 다이에드 인터뷰
2023년 가자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실업, 빈곤, 높은 중독률, 이전 전쟁으로 인한 사지절단 및 신체적 장애로 인한 우울증과 좌절감을 겪고 있었는데요.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 주민들의 정신건강은 더욱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주민 다수가 자택이 파괴되고 가족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삶을 뒤바꾸는 부상을 입었으니까요.
자택이 무너져 어깨에 부상을 입은 가자지구 출신 디마는 11살이다. 요르단 암만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재건수술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그저 전쟁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라고 전했다. 2024년 8월. ©Moises Saman/Magnum Photos
암만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활동하는 정신건강 팀은 가자지구에서 의료대피한 일부 환자들 역시 치료중입니다. 일대일 심리 지원은 물론 어린이를 위한 교육 활동과 어른들을 위한 작업 치료도 제공하여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합니다. 보다 심각한 경우에는 정신과적 지원과 약물 치료를 받도록 하고요.
암만 병원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 닥터 알 살렘에 따르면 특히 청소년의 경우 급성 스트레스와 뒤바뀐 삶으로 인한 혼란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상을 입은 청소년 환자들이 괴로운 기억과 정신적 트라우마 대처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회복하고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면 장기적인 심리 치료가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의 경우 이제 막 성격과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라 엄청난 불행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자신들이 처한 위치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언젠가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돈을 벌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으니까요. 이 아이들은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이들과 작업 치료를 하고 성장과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_닥터 아흐마드 마흐무드 알 살렘
요르단 암만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가자지구 출신 청소년 카람은 힘든 여정이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회복하고 싶다고 전했다. 2024년 8월. ©Moises Saman/Magnum Photos
남수단
빈곤과 폭력, 이주 문제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가 필요한 만큼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남수단에서는 어떨까요? 보건 체계에서의 소외와 깊게 뿌리박힌 사회적 낙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건강 문제를 홀로 감내한다는데요. 국경없는의사회는 남수단에서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몇 안되는 단체 중 하나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물론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산모들이 많습니다.” 남수단 랑키엔의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책임자 제르만도 카곰바의 말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남수단에서 2024년 1월부터 7월까지 9,600건 이상의 정신건강 상담을 실시하고 54,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그룹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남수단 랑키엔 주민 조셉 알리멘 쿠르는 “저는 정신건강 생존자입니다. 예전엔 좌절과 절망을 느꼈지만, 상담을 받은 후 건강해졌고 이러한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었죠”라고 전했다. 2024년 8월. ©Isaac Buay/MSF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수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한 실정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지원을 받은 환자 4명중 3명은 공동체간 폭력,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인프라가 제한적이라 어떤 환자들은 병원으로 오는데만 4일이 걸립니다. 정신건강 문제가 있을때 사람들이 이들을 다른 환자들을 돌보듯 돌봐주지는 않기 때문에 어떤 환자들은 병원에 한번 오고나서 이후 추가 조치에 필요한 만큼 더 오지를 못합니다.” 카곰바가 말합니다.
폭력과 빈곤, 그리고 이로 인한 반복적인 스트레스는 물론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조차 어려워합니다. 이로 인해 가족들이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을 집에 가두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슬로 묶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의료와 인프라 부족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종종 교도소와 같은 부적절한 장소에 수감되어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수단 어퍼나일주 말라칼에서 환자와 상담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상담사 ©Isaac Buay/MSF
치료하지 않은 정신건강 문제는 장기적으로 신체적 건강의 악화로 이어져 개인 뿐 아니라 세대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이들은 가족과 함께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며, 이는 지역사회에서의 활동 제한과 취업 기회의 축소로 이어져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집니다. 이것은 또한 십대 임신율 상승과 가정폭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고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남수단 정신건강 문제도 보다 폭넓은 의료보건체계에 관리가 통합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수단 국민들이 빈곤과 실향으로 인한 인한 깊은 상처에서 치유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리스
그리스 레스보스 사모스, 키오스, 아테네 등지에 도착한 난민과 이주민들은 망명 신청 과정에서 자신의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비인간적인 경험을 겪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이자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로 아테네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파노스 밀로나스는 성인을 동반하지 않은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자, 정신건강 치료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지원해 왔는데요. 그리스에 도착하는 이주민들은 출신지에서부터 여정이 진행되는 동안 겪은 폭력, 고문, 성폭행 등의 경험으로 복합적인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이들이 자살하려는 생각,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 수면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파노스의 말입니다.
그리스 아테네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보호 센터에 상담을 위해 들어가는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 ©Hussein Amri/MSF
게다가 그리스에서 망명 신청 진행을 기다리며 답보 상태에 놓인 이주민들의 미래는 절망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불확실성이 트라우마를 강화하며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이들 중 상당수는 망명 신청이 거부되면 의료 접근성을 잃게 되는데, 이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의료서비스의 부재는 이들이 회복할 기회를 앗아가고, 심리적 고통을 더욱 깊어지게 만드니까요.
특히 보호자 없이 홀로 여정을 떠난 미성년자들은 가장 취약한 집단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지원이 중단되고 캠프로 이송되어 보호와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난민과 이주민들에게 인종, 성별,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존중과 환영을 받는 공간을 제공하며, 심리적 지원뿐만 아니라 이들의 실질적, 정서적 수요를 모두 충족하는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국경없는의사회 지원만으로 수요를 충족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파노스는 보다 빠른 망명 신청 처리, 거주자들에게 감옥같이 느껴질 수 있는 캠프 내 생활 여건 개선, 현지 주민 사회에서의 인식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27세 에티오피아 출신 이주민이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표현한 제한된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의지, 2024년. ©MSF
방글라데시
2024년초부터 미얀마에서 분쟁이 격화됨에 따라 이를 피해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들은 과밀한 환경과 필수적 서비스 접근성 부족, 정신건강 악화 등의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할 수 있던 난민들은 여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고, 재정적으로 큰 빚을 지게 되기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콕스바자르 캠프 쿠투팔롱과 발루칼리 클리닉의 정신건강 담당자 샤리풀 이슬람은 로힝야 난민들과 일하면서 최근 미얀마에서 피난해온 사람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폭력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전에 미얀마에서 안정적 상태였던 환자들도 여정 동안의 치료 부족으로 인해 상태가 악화됩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는 2024년 수개월간 수천 명의 신규 피란민이 도착했다. ©Yunus Ali Shamrat/MSF
제일 심각한 건 우울과 불안 상태로 각자 겪은 끔찍한 경험이 이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미얀마에서 올해 7-8월 폭력이 격화됐을 때 환자 수가 훨씬 늘어났습니다. 이들은 본인들의 정신건강 문제 뿐 아니라 오래 폭력과 관심 부족에 기인한 신체적 통증도 겪고 있습니다.”_샤리풀 이슬람
방글라데시의 안전한 환경에 도착해도 등록 관련 우려, 부적절한 주거 환경, 부족한 자원 속에서 삶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정신건강은 계속 악화합니다. 서로 다른 그룹간에 일어나는 총격과 갈등으로 공포가 만연하고 새로 도착한 이들에게 이는 트라우마를 심화시킵니다.
여성과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더욱 특수한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에 기인한 우울과 근심을 보고하는데, 지난 7년간 미얀마 내 상황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고, 절망을 느끼는 남자들은 취약한 가정 내 구성원들에게 이를 분출해 가정 내 트라우마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상담자들은 환자들이 시설 방문시 무엇보다 안전과 비밀 보장을 우선시합니다. 환자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고통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여성의 경우 이는 종종 특수한 상황에 맞춘 심리 상담과 함께 진행됩니다.
콕스바자르 내 국경없는의사회 1차 보건소의 정신건강 부서 ©Chiara Spadaro/MSF
시리아 북서부
13년 전에 시작된 전쟁 이후 태어난 아이들 수가 몇일까요? 이중 몇 명이 몇 살부터 어떤 심리적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아갈까요? 35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실향민이 있는 대규모 실향과 계속되는 폭력, 2023년 2월 대규모 지진과 2024년 8월 지진 등 자연재해의 영향은 또 어떨까요?
지속적인 폭력과 상실, 열악한 생활 여건, 반복된 이주 등은 주민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영향을 미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 우울증 등의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시리아 북서부에서 활동중이었던 국경없는의사회는 2024년초 이후 11명의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을 지원했는데요. 이중 대다수가 20-45세 여성이지만 15세 이하 아동도 2명이었습니다.
경도의 화상 환자인 12세 모함마드는 상처 드레싱을 위해 보건소를 방문할 때마다 심리상담사도 방문한다. © Abdulrahman Sadeq/MSF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63%가 여성으로, 스트레스 주 요인은 생활환경, 폭력, 가족 관련 문제로 보고됩니다. 2024년 해당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12,000건 이상의 개인 상담과 69,000건 이상의 그룹 상담을 통해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해왔습니다. 그러나 시리아 인도적 대응 계획의 재원 부족으로 인해 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시리아 북서부 주민들의 불안정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리아 북서부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여전히 큰 장애물로 남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편견과 판단의 두려움으로 인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환자들은 약물 중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피하고 있으며, 이는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북서부에서 심리 지원과 의료 지원을 결합한 통합적 접근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치유를 함께 제공하고자 합니다.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북부 한 실향민 캠프 일부, 2023년 12월. ©Abdulrahman Sadeq/MSF
시리아 북서부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관리자로 일하는 루메이사 세이흐는 자살 위험에 대한 인지 제고 세션 후 환자들이 인용한 유명한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싯구를 공유했습니다.
“우리는 삶을 사랑합니다 그에 이르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면” _마흐무드 다르위시
그렇게 극심한 고통에 직면해서도 사람들은 삶에 깊은 애착을 느낍니다.”_루메이사 세이흐
국경없는의사회가 세계 각지에서 펼치고 있는 의료 구호 활동에서 자칫 보이지 않는 상처로 여겨지는 정신건강 지원을 통합하고자 노력해 온 이유, 분명하게 보이지 않나요?
정신건강, 생명을 살리는 데 필수적인 활동 분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해주시는 여러분, 늘 몸과 마음 함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