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가 달려온 50년] 1971-1980

1971 - 1980

국경없는의사회는 1971년부터 1980년까지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1971  |  국경없는의사회 설립
나이지리아 비아프라(Biafra)의 내전과 기아, 파키스탄 동부(현재의 방글라데시)의 홍수에 대응하기 위해 모인 프랑스의 의사와 의학 전문 언론인이 함께 국경없는의사회를 설립했다.

1972   |   니카라과 지진 대응 
국경없는의사회는 니카라과에서 지진 피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구호 활동을 펼쳤다.

1972년 니카라과 마나구아(Managua) 지진 피해지역.

1974   |   온두라스 허리케인 대응
국경없는의사회는 온두라스 허리케인 대응을 계기로 최초로 장기적인 의료 지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74년 온두라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피피(Fifi). 

1975   |   크메르루주 캄보디아 피난민 지원
국경없는의사회는 집단학살로 발생한 난민 위기의 최전선에서 의료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캄보디아-태국 국경에서 대규모 지원 활동을 개시했다.

1975년 캄보디아 난민이 태국으로 피난한 지 5년 후. 

1976   |   레바논 전쟁 의료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1986년 레바논에서 처음으로 분쟁지역 의료 활동을 개시했다.  

1979   |   아프가니스탄 전쟁 의료 활동 
1979년 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이후 10년간 이어진 전쟁이 발발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비밀리에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을 넘어, 노새를 타고 몇 주를 이동해 외딴 지역의 민간인 부상자를 치료했다.

1980년 노새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1980   |   최초의 증언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캄보디아를 위한 대행진’을 통해 최초로 국제 무대에서 증언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 ‘캄보디아를 위한 대행진’.

 |   첫 영양실조 프로그램 개시 
우간다의 내전과 기근으로 첫 영양실조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탄생

1968년, 프랑스에서는 흑백 텔레비전을 통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충격적인 장면이 전해졌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상의 다른 편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남부의 비아프라 지역이 내전 가운데 나이지리아 군에 의해 봉쇄됐고, 비아프라 주민들은 기근으로 생명을 잃어갔다. 프랑스 적십자사는 이곳에서 직접 주민들을 도울 자원봉사자를 찾았는데, 프랑스인 의사 막스 레카미에(Max Recamier)와 베르나르 쿠슈네르(Bernard Kouchner)가 이 요청에 응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설립 이념은 단순합니다.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 지금은 당연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국경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로 이름을 정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_국경없는의사회 공동 설립자 베르나르 쿠슈네르(Bernard Kouchner)

1971년, 프랑스의 의학 잡지 토누스(Tonus) 소속 기자였던 레이몬드 보렐(Raymond Borel)과 필립 베르니에(Philippe Bernier)는 재난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의료 단체를 설립하자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비아프라로 향했던 의사들이 뜻을 함께하게 됐다. 이들은 나이지리아뿐 아니라 예멘에서도 활동했고, 자체적인 긴급 의료 구호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1971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헌장에 서명 중인 국경없는의사회 설립자들.

1971년 12월 22일, 국경없는의사회가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의사와 언론인으로 구성된 13명의 설립자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지원자가 뜻을 함께했다. 성별, 인종, 종교, 정치적 성향을 떠나 누구나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신념, 그리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지원이 국경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치를 바탕으로 국경없는의사회가 설립됐다. 단체의 시초부터 의사와 언론인이 함께한 만큼, 국경없는의사회는 전 세계의 취약하고 소외된 환자를 위한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의 관심 밖에 있는 인도적 위기를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한 사명으로 여긴다. 현장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을 전하고, 고통받는 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증언(témoignage)’이라 부르는 일이다.
 

말이 항상 생명을 구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침묵은 분명 목숨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_전 국경없는의사회 국제회장 제임스 오빈스키(James Orbi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