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가 달려온 50년] 1981 - 1990

1981 - 1990

국경없는의사회는 1981년부터 1990년까지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1981  |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폭격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네 곳이 폭격을 당했다.

1982  |  태국 난민 위기 대응 
국경없는의사회는 태국 남 야오(Nam Yao) 난민 캠프에서 지원을 제공하며, 1975년부터 캠프에 거주해 온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출신의 피난민을 도왔다.

1982년 태국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1983  |  
1983년 수단 메다니(Medani)의 국경없는의사회 수술실.

1984  |  에티오피아 기근 대응 
국경없는의사회는 에티오피아에서 기근이 극심한 지역의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영양실조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1984년 에티오피아에서 의료물자 및 식량 구호품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1985  |  에티오피아 활동 강제 중단 
국경없는의사회가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인구를 강제 이주시킨 에티오피아 정부를 규탄하자 정부는 국경없는의사회를 에티오피아에서 추방했다.

1985  |  모잠비크 의료물자 수송 
항공기를 통해 모잠비크에 의료물자 및 영양실조 치료식 등의 물자를 수송했다.

1985년 모잠비크.

1986  |  스리랑카 내전 대응  
국경없는의사회는 내전으로 부상당한 주민을 위해 이동진료소와 병원을 운영했다.

1986  |  국경없는의사회의 성장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브뤼셀, 제네바와 파리에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소가 설립됐다.

1987  |  에이즈 치료제 승인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아지도티미딘(Azidothymidine, AZT)을 승인했다.

1988  |  아르메니아 지진 대응    
국경없는의사회는 3만 8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진도 6.8규모의 지진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소련에서 의료지원을 제공했다.

1988년 아르메니아 지진 당시.

1989  |  이라크의 쿠르드족 공격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 구호 단체로서 최초로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마을인 할라브자(Halabja)에서 발생한 화학무기 공격에 대해 증언했다.

1990  |  라이베리아 내전  
라이베리아에서 내전이 고조됨에 따라 국경없는의사회가 긴급 의료지원을 제공했다

1990년 라이베리아에서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에티오피아 기근에 대응하다

1984년 에티오피아에 심각한 기근이 발생하자 국경없는의사회는 기아로 고통받는 주민을 대상으로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제 원조 단체의 지원을 이용해 기아에 처한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고,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 처하게 됐다. 인도적 지원이 국내외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책임을 느낀 국경없는의사회는 ‘재정착 프로그램’ 지원을 거부했다. 이에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직원들을 에티오피아에서 강제 철수시켰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에티오피아에서 추방된 이후 그간 목격한 것을 세상에 증언하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기아 위기는 인도주의 단체가 인도적 지원과 증언 사이에서 마주하는 딜레마를 보여준 사례였다.

1984년 에티오피아 기아 위기.

에티오피아 정부가 강행하는 이주 정책에는 정당화할 만한 근거가 있겠으나, 수십 개의 난민 수용 캠프 중 인도적 지원 단체의 접근이 허가된 곳은 단 두세 곳뿐이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난민이 처한 상황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에 그곳의 현실이 어떨지 매우 우려됩니다.
_국경없는의사회 회장(1977-1978) 클로드 말뤼레(Claude Malhuret)

1984년 에티오피아 기아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