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야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는 전 세계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고, 국제 구호활동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형성하고자 2021년 5월에 [국경없는백일장 2021]을 개최했습니다. 지난 7월, 최종심사를 통해 15~19세 청소년 부문, 20~24세 청년 부문에서 각 한 편의 수상작이 선정되었습니다.
혼자가 아니야 (조수영 作)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 (서영은 - 혼자가 아닌 나)
‘존엄성을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국경없는의사회가 노마병에 시달리는 환자를 치료하는 나이지리아 소코토 병원의 일상을 담담하게 다루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위 노래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노래의 가사가 희망적이듯 노마병 환자들의 현실은 참혹하지만 비극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해 나는 그저 선진국의 의료진이 의료혜택이 열악한 지역에서 봉사하는 단체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 관련자료를 찾아보았다. 참고할 만한 영상이 많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존엄성을 찾아서’라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존엄성’이라는 단어가 내 눈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오지의 의사와 환자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한 영화의 제목에 ‘존엄성’이라는, 사회 과목에서 자주 등장할 만한 단어가 왜 들어가 있는 걸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내가 구호활동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왼쪽) 18세 아미나(Amina)는 2016년 11월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나이지리아 소코토 노마 병원을 찾아왔다. ©Claire Jeantet - Fabrice Caterini/INEDIZ
(오른쪽) 나이지리아 소코토(Sokoto) 노마 병원 앞뜰에 서 있는 3세 아동. ©Claire Jeantet - Fabrice Caterini/INEDIZ
다큐멘터리 영화 ‘존엄성을 찾아서’ 포스터.
노마병. 가난한 나라 어린 아이들에게서 주로 발병하며, 입안을 시작으로 얼굴 전체가 급속히 무너져 내리는, 아직도 정확한 원인 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질병. 이 병이 무서운 것은 단지 80%에 이르는 치사율 때문만은 아니다. 이 병에 걸린 아이는 얼굴이 기형적으로 변해버려 놀림의 대상이 되고 학교도 못 가서 교육의 기회도 잃어버리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외모의 심각한 이상으로 인해 스스로 위축되고 자존감에 상처를 받은 채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더욱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병의 치료와 더불어 시급한 것이 얼굴의 정상적인 복원일 것이다. 예뻐지기 위한 성형수술이 난무하는 우리나라 현실과 비교해 볼 때 환자들의 상황은 너무나 절실해 보였다. 그리고 그 절실함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과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실현하는 곳에 구호활동가가 있었다. 소코토 병원의 구호활동가들은 단지 입을 절개하고 보형물을 넣어 성형을 하는 의학 전문가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게 하고 절망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환자의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고 있었다.
환자는 얼굴이 무너지면서 자신의 얼굴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해 거울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외출을 할때도 항상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다고 한다. 결국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활동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체적 장애가 정신적 장애로 이어지는 것이다.
노마병이 진전된 중증 환자의 경우, 수술로도 100%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미 파괴된 외형을 복원하기 위해서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수술 흉터 자국이 대신 남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의료진의 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발병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자칫 수술 후에도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정신적 치료가 함께 수반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구호활동가가 된다면 정신적 치유에 도움을 주는 정신건강 지원 전문가로 지원하고 싶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여 보다 전문적으로 이들을 돕고 싶다. 그렇게 환자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면, 도움을 받은 환자역시 다른 환자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이고, 희망이 희망을 낳아 치유의 연쇄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호해야 한다고 하면 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왜 거기까지 가서 활동하지?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 많은데.”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꼭 우리나라에 한정해서 활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구호의 대상은 국적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되고 도움이 절실한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이건, 우리나라 재해 현장이건 구호활동은 어디서든 필요한 곳이면 실행되어야 한다. 구호활동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튼튼한 체력과 정신력, 능숙한 외국어 구사력과 전문성, 인간에 대한 사랑과 직업에 대한 긍지가 필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은 절망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극복하는가이다. 도저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감동적이다. 그 감동의 주인공은 절망을 딛고 희망을 찾은 환자들이고 이들을 빛나게하는 무대 뒤에는 구호활동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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