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강진의 여파, 사회적 불안정과 폭력이 덮친 아이티

아이티의 악몽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8월, 중미 아이티 남부에서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다. 강진으로 인한 위기가 사그라들기도 전에 아이티에서 연료난, 식수난에 대중교통난까지 발생해 아이티 국민들의 인도적·의료적 위기가 악화했다.

2021년 말, 중미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에서는 무장단체 간 충돌이 거세짐에 따라 갈등이 고조됐다. 올해 8월 강진이 덮친 아이티에서는 2018년 하반기부터 정치경제적 위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강진의 여파에 더해 수개월째 수도 곳곳에서 다양한 집단 간 무력충돌과 폭력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데, 총격, 방화, 약탈 등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민간인이 피해를 입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연료난까지 발생하여 필수 사회 서비스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고 의료 접근성 또한 크게 저하됐다. 

최근 몇 달 사이 포르토프랭스에서 폭력 사태와 무력충돌이 이어지며 약 19,000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이 중에는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장애를 가진 사람 등 취약 인구도 있는데, 피난민 대부분이 거주지에서 강제로 쫓겨나거나 어쩔 수 없이 피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사람들이다. 

“시내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총성이 들렸습니다. 집까지 갈 수조차 없었고, 집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던 모든 게 전부 불에 타버렸어요. 자녀들과 함께 파크 셀티크(Parc Celtique)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곳 상황은 참담합니다.” _마리 조세(Marie-Jose) / 피난민 여성 

현재 포르토프랭스의 학교, 스타디움, 교회 등 8곳에 임시 피난민 캠프가 설치됐는데, 위생 수준이 열악하고 과밀집되어서 피난민이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영향을 받으며 취약성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여성과 소녀의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고 안전지대가 없는 임시 캠프 내에서는 성폭력, 성추행과 물리적 폭력도 빈번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두 곳의 임시 캠프에서 이동진료소를 운영하며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식수를 공급하며 위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피난민을 위한 식량, 식수위생 서비스, 영구 거처 등 인도적 지원의 확대가 시급한 상황이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델마스5(Delmas 5) 실향민 캠프의 한 여자아이.©Pierre Fromentin/MSF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델마스5(Delmas 5) 실향민 캠프의 한 여자아이.©Pierre Fromentin/MSF

최근 아이티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팔에 부상을 입은 3세 아동 오스메(Osmé)가 물리치료사와 놀고 있다. ©Pierre Fromentin/MSF

아이티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팔에 부상을 입은 3세 아동 오스메(Osmé)가 물리치료사와 놀고 있다. ©Pierre Fromentin/MSF

응급센터에 입원한 총상 환자. ©Pierre Fromentin/MSF

응급센터에 입원한 총상 환자. ©Pierre Fromentin/MSF

사회적 불안정이 팽배한 가운데 포르토프랭스에서는 폭력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2021년 5월, 국경없는의사회 타바레(Tabarre) 병원의 한 직원이 퇴근길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기도 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매일같이 총상이나 자상, 폭행으로 인한 부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한다.  

“포르토프랭스 어딘가에서 무력충돌이 발발하면 하루에 많게는 12명이 넘는 부상자가 병원에 유입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모든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_ 타니아 요아힘(Tania Joachim) / 국경없는의사회 타바레 병원 수술실 간호사 

화상 및 외상 전문 병원인 국경없는의사회 타바레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에 따르면 폭력 사태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한다. 쌍둥이를 임신 중이었던 마누엘 리나(Manuelle Lina)는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총격전을 피해 달려오던 차에 치었다. 즉시 타바레 병원으로 이송된 마누엘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시 한쪽 발과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였습니다.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그때만 해도 뱃속의 아이들은 무사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두 아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_마누엘 리나 / 국경없는의사회 타바레 병원 환자 

2021년 한 해 국경없는의사회 응급센터에서 매달 평균 약 100명의 총상 환자를 치료했다. 지난 6월, 이 응급센터를 대상으로 한 총격이 발생하여 병원 위치를 마르티상(Martissant)에서 투르고(Turgeau)로 옮길 수밖에 없었고, 시테 솔레일(Cité Soleil)에서 운영하던 화상치료 프로그램도 올해 2월 발생한 무력충돌로 인해 타바레 지역으로 이전해야 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타바레 병원은 주로 투르고 응급센터에서 이송된 외상 환자를 받는데, 외상 환자 중 절반 정도가 폭력 사태의 피해자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사회적 불안으로 많은 의료시설이 운영을 중단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면서 포르토프랭스 일부 지역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저하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발생한 연료난으로 의료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버거워졌고,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오는 것 또한 힘들어졌다. 불안정과 불확실함이 계속되면서 아이티에서 의료지원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 반면 필요는 채워지지 않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무상으로 의료지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환자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현재 아이티의 상황은 재난과도 같습니다. 신속히 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_타니아 요아힘 / 국경없는의사회 타바레 병원 수술실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