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이야기] 분쟁이 만연한 이곳에서 치료받을 유일한 병원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김영웅 활동가의 첫번째 활동 이야기

수단과 남수단의 국경 마을 아곡의 병원에서 첫 번째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김영웅 활동가(흉부외과 전문의)와 소감을 나눴다. 개인 간, 부족 간, 국가 간 분쟁으로 끊임없이 환자들이 몰려왔지만 오히려 환자의 미소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활동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남수단 아곡 지역에서 총상 등의 외상 환자, 복막염 등의 응급 환자, 제왕절개가 필요한 산부인과 환자 등 병원 근처 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외과적 질환을 가진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했습니다. 하루에 수술이 10건 이상 있었고 응급 수술도 거의 매일 있었습니다.

 

주요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인가요?

남수단 아곡 지역 근처에는 병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의료진의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면 전부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으로 와야 합니다. 허나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며칠에 걸쳐 걸어와야 하고, 최근에는 홍수 때문에 길이 끊겨 접근성이 더욱 악화된 상황입니다. 병원이 위치한 지역 특성상 총상을 포함한 외상 환자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원인은 다양했습니다. 국가 간, 부족 간, 마을 간 분쟁뿐 아니라 이곳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인 소를 빼앗기 위해 서로 다투다 총상이나 자상을 입고 내원하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환자가 있나요?

화상 환자로 병원 의료진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용감한 소녀가 기억에 남습니다. 동생이 모닥불 속에 넘어지자, 누나인 아촐 촐은 주저 없이 불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동생을 구했습니다. 동생보다 누나의 화상이 더 심했습니다. 양손과 배, 등, 허벅지까지 전신에 깊은 화상을 입었습니다. 장기간의 입원 및 수십 차례의 외과적 처치가 필요했고, 제가 환부를 열고 드레싱을 진행할 때마다 많이 힘들고 아팠을 텐데 용감하게 잘 버텨주었습니다. 몇 번의 피부 이식 수술도 진행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아 잘 회복한 뒤 퇴원했습니다. 입원 내내 아촐 촐은 까만 아기 인형을 안고 있었지요. 의료진을 항상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던 아촐 촐. 응급실이나 수술실에서 환자를 잃어 마음이 흔들리던 날이면 멋지고 용감한 아촐 촐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불 속에서 동생을 구하다가 화상을 입은 어린 소녀 환자 아촐 촐과 함께 ⓒMSF

불 속에서 동생을 구하다가 화상을 입은 어린 소녀 환자 아촐 촐과 함께. ⓒMSF


한국의 근무 환경과 비교해 다른 점, 그로 인해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남수단에는 중증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혈액이 많이 부족합니다. ‘헌혈을 하면 수명이 줄어든다’, ‘수혈을 하면 상대방의 혈액 속 유전자가 들어와서 몸이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등등의 미신 때문에 사람들이 병원에 와 치료받기를 꺼리고, 입원 후 치료 중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 전통 치료를 받기도 합니다.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단기간에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외과의사의 입장에서, 우리나라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환자를 현장의 여러 한계로 인하여 잃었을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동료들과 함께  ⓒMSF

 

구호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와 과정은 무엇인가요?

의대생 시절 읽었던 책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2005년에 ‘국경없는의사회’라는 책을 읽고 단체에 관심을 가진 후 언젠간 현장에 가리라 결심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설립 이념부터 활동 영역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외과의로서 현장에서 제 손으로 직접 환자를 돕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외과’가 이름에 포함된 어느 과를 지원할지 고민했는데 수련의 시절 흉부외과가 제일 재밌었기에 주저 없이 선택했
습니다. 이후 전문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며 현장 파견을 준비하였습니다. 사실상 10년 동안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할 날을 꿈꾸며 커리어를 쌓았는데, ‘난 나중에 국경없는의
사회의 하얀 티셔츠를 입고 말 거야’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며 긴 시간을 견뎠습니다.

 

미래의 활동가에게 한마디

현장에 가기 위한 거창한 이유가 없어도 됩니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번 해보고 싶다면 지원하시길 권유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 행위 자체가 가치 있는 것 아닐까요? 또한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하면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도 있고,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소중한 친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국경없는의사회 티셔츠도 편합니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귀국 후 국내의 3차병원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흉부외과 전문의의 수가 충분하지 않고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우리나라에도 많습니다. 어디서든 제가 치료하는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언젠가 현장에 돌아가고 싶으나 아직 계획은 미정입니다. 다시 가기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믿습니다.

숙소를 나눠 쓰던 국제 활동가들과 함께 남수단 아곡에서의 날들을 기억하는 한 컷을 남겼다 ⓒ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