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의 비극: 대테러리즘은 어떻게 인도주의 활동을 위기로 내몰았는가
프랑수아 부쉐-솔니에(Françoise Bouchet-Saulnier) 국경없는의사회 전 법률 국장
2021년 1월 13일 반군의 공격을 당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Bangui) 지역. ©Adrienne Surprenant/Collectif Item for MSF
대테러리즘 담론은 국가가 ‘비국제적 무력 충돌(non-international armed conflict)’을 진압할 때 흔히 사용하는 레토릭의 일부로 존재해왔다. 예컨대 1999년, 체첸 공화국에서 대테러 작전을 개시한 러시아 연방은 ‘전쟁’이나 ‘무력 분쟁’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일체 거부했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쌍둥이빌딩 테러사건 이후, 국가들의 대테러 레토릭은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싸움을 위한 국
제 법체계의 마련으로 이어졌다. 지난 20년간, 대테러를 위한 국제법적 체계는 유엔의 비호 아래 개발되고 검증되어 왔다.
이러한 체계가 공정한 인도적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다. 인도적 활동은 각 분쟁의 성격과 특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반면 체계적인 대테러 활동은 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인도주의 구호활동가와 지원 받는 인구, 활동 자체의 안전에도 명명백백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현장의 구호활동가가 겪은 공격 사건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공격의 유형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호활동가를 겨냥한 반군 무장단체의 납치 및 공격 사건보다 정부군이 자행하는 공격, 체포, 구금, 혐의 제기 등이 더욱 빈번히 발생한다.
그렇다면 국경없는의사회가 5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전개한 인도주의 의료 구호활동이 왜 지금에 와서야 활동가와 환자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는가?
활동가 및 환자가 공격당한 사건은 국제인도법에 의거해 허가된 인도주의 의료 구호활동을 사실상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 정부의 형사법 및 대테러법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제인도법은 민간인, 민간시설, 의료진, 의료시설뿐 아니라 공정한 의료지원을 받을 권리 등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국제 및 비국제 무력 분쟁 관련 법이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중 범죄 행위 및 테러 행위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을 여지가 있는 네 가지 활동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분쟁 지역이나 테러 또는 범죄 집단으로 규정된 집단의 통제를 받는 지역의 주민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행위는 테러리스트를 위한 물적 지원이라 여겨질 수 있다.
2.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무장단체의 수장과 연락을 유지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범죄 행위라 여겨질 수 있다.
3. 의료적·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테러리스트 또는 범죄자로 의심되는 인물을 이송하는 행위는 해당 인물이 분쟁 상황을 빠져나가거나 의료시설에 숨어 신문 받거나 체포당하지 않고 쉽게 탈출할 수 있게 도운 행위로 간주하여 이들의 탈출에 체계적으로 공모한 행위라 여겨질 수 있다.
4. 의료시설에서 테러리스트 또는 범죄자로 추정되는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는 이들에게 피난처 및 숨을 장소를 제공한 것으로 간주하여 범죄 공모에 가담한 행위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법적 위험은 가설이 아닌 실제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여러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혐의가 위험한 이유는 항상 개인이 형사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직원에 대한 주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에게 지워진 책임은 기관 차원에서 대신할 수 없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에서 정부의 허가 없이 테러 집단으로 규정된 무장단체의 통제를 받는 지역주민에게 지원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테러 단체로 간주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체포 후 구금되었고, 테러 행위에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 나이지리아에서는 범죄 집단 또는 테러 집단으로 규정된 단체가 통제하는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했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 집단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했다는 혐의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이때 구호활동을 개시하기 위해 해당 집단과 연락을 취했단 이유로 범죄 집단과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범죄 집단 혹은 테러 집단과 연락을 도모했단 이유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기소된 사례도 있다. 카메룬에서는 범죄집단 또는 테러 집단이 통제하는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부상자를 이송하여 테러 범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직원 여럿이 기소 후 구금됐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과 환자가 시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의 병원에서 정부군에 의해 공격당한 사례도 있다. 정부측은 대개 실수였다고 주장했지만, 대부분 ‘비민간인’ 으로 분류되는 테러 집단의 일원이 치료를 받고 있던 시설에서 발생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6년부터 유엔 고위급 회의에서 정치적·법적 옹호 활동을 펼치며 이러한 현상에 대항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또한 국제인도법이 대테러 활동 및 규정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회원국들이 인정하길 촉구했다.
국제인도법이 대테러 활동에 우선한다는 것을 재확인할 방법은 국가나 국제기구가 도입하는 국내 및 국제 대테러 정책에 인도주의적 예외사항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시행으로, 대테러 활동으로 인한 제약이나 제재에 구애받지 않고 인도주의 구호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 결의안과 각국 법률에 국제인도법에 따른 인도주의 구호활동 예외조항을 포함하자는 주장이 드디어 빛을 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는 ‘테러 행위’라 규정됐던 무력 분쟁 상황에서의 인도주의 의료 구호활동은 재검토됐으며, 이제 각 정부는 국제인도법에 따라 이뤄지는 인도주의 구호활동을 대테러 전략으로 저지할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고무적이긴 하나 첫걸음에 불과하다. 국경없는의사회가 국제인도법을 주창하는 것은 법체계를 맹신해서가 아니라 국제인도법은 소위 ‘적’이라 불리는 이들과 이들이 통제하는 인구를 지원하고 치료하는 것을 정당한 활동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제인도법을 따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장의 활동가가 최대한 안전하려면 현장의 위험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 활동의 정당성 훼손에 이용될 수 있는 새로운 법적 위험 또한 세밀히 파악해야 한다. 또한 협상 능력 및 국제인도법에 따른 활동 체계와 환경을 조성할 능력을 배양하고, 정부가 적군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구호활동을 범죄화한다 해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활동가를 지원하고 교육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