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활동가 인터뷰
‘더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한 훈련
올여름, 아프리카 차드로 다섯 번째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다녀온 산부인과 전문의 정의 활동가.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환자를 치료하며 ‘점점 더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정의 활동가의 다섯 번째 활동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정의 활동가님,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지난해 수단 전쟁 발발 이후 난민이 급증한 차드의 아드레에 다녀왔습니다. 산부인과는 과 특성상 근무 강도가 세서 파견 기간도 짧은 편입니다. 당직을 서야 한다는 것은 밤중에도 언제든 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아이는 예고 없이 언제든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웃음). 이번엔 특히 산부인과를 담당하는 의사가 저 혼자였어요. 즉, 두 달 내내 당직이었죠. 그러다 보니 이틀에 한 번 꼴로 밤에 병원에 불려가서 수술을 할 일이 생겼어요.
주로 어떤 환자를 보셨나요?
아드레 인근에는 보건소만 있고, 제가 근무한 곳이 차드 보건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보니, 보건소에 다니던 산모들도 수술이 필요하면 우리 병원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산전검사를 규칙적으로 하니 ‘어? 아기를 낳아보니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네?’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런데 차드는 보건소에는 물론 심지어 병원에도 초음파 검사 기기가 없으니까 산전검사 시 초음파로 진단을 안 해서, 그런 일이 왕왕 있습니다. 아드레 병원의 초음파 기기도 국경없는의사회가 제공한 그 병원에서 유일한 초음파 기기였어요. 산부인과 의사 경력이 20년이 넘지만, 그런 저로서도 한국에서 본 적이 없는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산모가 호흡곤란이 올정도로 배가 심하게 불러서 내원했다가 초음파 검사 후 양수과다증으로 진단된 경우도 있고, 전치태반인 경우도 있었고요.
차드도 그렇고 제가 가본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에서는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아기를 많이 낳습니다. 집에서 낳으면 물론 순산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문제가 있을 경우 2-3일 시일이 흐른 후에야 병원에 오게 되어 이미 아기도 죽어있고 산모의 자궁도 터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보건증진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죠. ‘병원은 아니더라도 보건소에라도 가서 아기를 낳으라’고 아웃리치나 교육 활동을 하니까요.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었나요?
자궁파열로 온 환자가 있었어요. 이미 진통을 하루 넘게 하고 자궁문도 다 열렸는데 아기가 안 나와 내원한 경우인데, 아기 심장 박동이 확인이 안됐어요. 초음파를 보니 아기는 이미 죽어 있고 뱃속에 피가 많이 고여서 자궁파열이 의심되었습니다. 자궁파열은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산모마저 사망할 수 있는 응급상황입니다. 사산된 아기는 수술실에 들어가서 꺼내고 파열된 자궁은 봉합했습니다. 보통 자궁이 파열되면 1-1.5리터 정도 출혈이 발생합니다. 수술 직후엔 환자가 괜찮아 보였는데 숙소로 돌아오니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환자가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은 오르며 배가 불러오니 다시 와서 봐 달라는 겁니다. 병원에 가보니 또 출혈이 있었어요. 6시간 만에 다시 배를 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재수술이란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언가 놓친 것, 찾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출혈로 재수술을 하게 되면 산모가 사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봐요. 그런데 이 환자의 경우는 재수술을 안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혈압이 너무 떨어졌어요.
‘아예 자궁을 들어내야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혈관에서 출혈되는 곳이 바로 보였어요. 그 부분만 지혈하고 다른 곳은 멀쩡한 것을 확인 후 다시 닫았습니다. 환자는 멀쩡해져서 퇴원했어요.
십 년 넘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속하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해 저도 젊었을 때는 ‘좋은 일을 하겠다’는 일종의 허영심으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첫 활동을 나간 곳이 이번 차드 현장처럼 아주 어려운 곳이었다면, 울면서 돌아와서는 ‘다신 안 나가겠다’고 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점점 어려운 현장에 나가서 활동하다 보니 저 스스로 ‘내가 그동안 굉장히 훌륭한 의사가 됐구나. 이제 웬만한 수술은 다 할 수가 있구나. 유착이 심한 6번째 제왕절개 수술도 간호사와 단 둘이 하고.’ 마치 제가 점점 더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것 같았죠. 내가 점차 내 몫의 일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고, 세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산부인과 관련 프로젝트에서 일하면 아기들을 포함해 정말 많은 생명을 살린다는 실감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