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라고 하면 부상당하거나 질병을 앓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시나요?

국경없는의사회가 신체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 바로 ‘정신건강 지원’입니다. 한국에도 겨울이 되면 해가 짧아져 피곤함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지는데요. 그만큼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호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요르단, 남수단, 그리스, 그리고 시리아 등지에서 펼쳐온 정신건강 지원 활동을 알아봅니다.
 

요르단요르단 암만 소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가자지구 출신 청소년 카림은 힘든 여정이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회복하고 싶다”고 전했다. 2024년 8월. ©Moises Saman/Magnum Photos

암만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팀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실업, 빈곤, 높은 중 독률, 이전 전쟁으로 인한 장애 및 절단으로 인해 이미 우울증과 좌절감을 겪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 주민들의 정신건강은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주민 다수가 자택이 파괴되고 가족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삶을 뒤바꾸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암만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활동하는 정신건강 팀은 이전부터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 주변 지역에서 분쟁으로 인해 급성 트라우마를 입은 환자들에게 종합적인 치료를 제공해 왔습니다. 이제 가자지구에서 의료 대피를 통해 암만으로 전원될 수 있었던 소수의 아이들에게 일대일 심리 지원은 물론 교육 활동과 작업 치료도 제공하여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자 노력합니다. 보다 심각한 경우에는 정신과적 지원과 약물 치료를 받도록 합니다. 암만 병원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 닥터 알 살렘에 따르면 청소년은 특히 급성 스트레스와 삶을 뒤바꾸는 부상에 취약합니다. 그는 끔찍하고 삶을 뒤바꾸는 부상을 입은 청소년 환자들이 괴로운 기억과 정신적 트라우마 대처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회복하고 장애 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청소년들의 경우 이제 막 성격과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엄청난 불행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세상에서 자신들 이 처한 위치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언젠가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돈을 벌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죠. 이들에게는 자존감을 회복하 기 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이들과 작업치료를 하고 성장과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_닥터 아흐마드 마흐무드 알살렘

남수단남수단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교육 직원이 정신건강 인식 제고에 초점을 맞춘활동을 전개하며 지역사회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2024년 8월. ©Isaac Buay/MSF

남수단에서는 빈곤과 폭력, 실향 문제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건체계로부터의 소외와 깊게 뿌리박힌 낙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건강 문제를 홀로 감내하며, 매일 보이지 않는 고통과 싸우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남수단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우울증, 산후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건강문제를 가진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2024년 1월부터 7월까지 9,600건 이상의 정신건강 상담을 실시하고 54,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그룹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여전히 남수단 내 정신건강 지원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폭력과 빈곤, 그리고 이로 인한 반복적인 스트레스는 남수단 주민들에 게 큰 부담을 주고 있으며,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가족들이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을 집에 가두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슬로 묶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자원 및 인프라, 정신건강 전문 인력 부재 등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종종 교도소와 같은 부적절한 장소에 수감되어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수단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로 인해 병원에 도달하는데 며칠이 걸리는 경우가 많으며, 이 또한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이들은 가족과 함께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며, 이는 지역사회에서의 활동 제한과 취업 기회의 축소로 이어져 삶의 질이 더욱 크게 떨어집니다. 남수단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폭넓은 보건체계에 정신건강 관리가 통합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남수단 주민들이 빈곤과 실향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그리스 사모스의 외딴 해변에 갓 도착한 남성에게 의료 및 심리적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 2024년 3월. ©Myrto Mouzaki/MSF

그리스에서 난민과 이주민들은 망명 신청 과정에서 자신의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비인간적인 경험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이자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는 파노스 밀로나스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고향에서부터 여정 도중 겪은 폭력, 고문, 성폭력 등의 경험이 그리스에 도착한 후 복합적인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며, 이주민들은 자살 충동과 불안, 불면증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일상을 견뎌야 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망명 신청이 거부되면 의료 접근성을 잃게 되는데, 이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의료 접근성 상실은 이들이 몸과 마음을 회복할 기회를 앗아가고, 심리적 고통을 더욱 깊어지게 만듭니다.

특히 보호자 없이 홀로 여정을 떠난 미성년자들은 가장 취약한 집단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지원이 중단되고 캠프에 이송되어 보호와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성년자들에게 심각한 심리적 부담을 줍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난민과 이주민들에게 인종, 성별,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존중받는 공간을 제공하며, 심리적 지원뿐만 아니라 이들의 실질적, 정서적 수요를 모두 충족하는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경없는의사회 지원만으로는 모든 수요를 충족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파노스는 보다 빠른 망명 신청 절차, 캠프 내 생활 여건 개선, 의료 접근성 보장과 같은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시리아 북서부
시리아 북서부 소재 실향민 캠프의 전경. 2023년 12월. ©Abdulrahman Sadeq/MSF

시리아 북서부에서는 13년 넘게 이어진 전쟁과 계속되는 인도적 위기로 인해 400만 명 이상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이 중 350만 명은 국내 실향민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폭력과 상실, 열악한 생활 여건, 반복된 이주 등은 주민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영향을 미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 우울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2023년과 2024년에 발생한 지진은 이러한 정신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시리아 북서부 내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북서부에서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체 환자의 63%는 경제적 어려움, 열악한 생활 여건과 폭력, 가족 문제 등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입니다. 2024년 해당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12,000건 이상의 개인 상담과 69,000건 이상의 그룹 상담을 통해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시리아 대응 계획 Syria Response Plan 의 재원 부족으로 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시리아 북서부 주민들의 불안정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리아 북서부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여전히 큰 장애물로 남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편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환자들은 약물 중독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과 치료를 피하고 있으며, 이는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렇듯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시리아 북서부에서 심리 지원과 의료지원을 결합한 통합적 접근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치유를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세계 각지에서 펼치고 있는 의료 구호 활동에 정신건강 지원 요소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이유, 분명해 보이지 않나요? 정신건강, 생명을 살리는 데 필수적인 활동 분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해 주시는 여러분도 정신건강을 보살피시며 몸도 마음도 건강한 겨울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