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전쟁의 그림자가 남은 레바논의 삶

국경없는의사회의 레바논 대응 활동

지난 9월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이 이어지며 국경없는의사회는 여러 지역에서 대응 활동을 펼쳤습니다. 11월 말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수많은 실향민 가정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전쟁은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와 세계 최악의 경제 붕괴 등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복합적인 위기의 장기화에 더해 전 국민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동진료팀을 파견해 심리적 응급처치, 일반 진료, 약물 제공,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하고, 필수 물자를 배급하며, 실향민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식수를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실향민을 위한 ‘키친 프로젝트’
알 아자리에 피난처에서 실향민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2024년 10월. ©Tracy Makhlouf/MSF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중심부에는 알 아자리에 Al Azarieh 피난처가 있습니다. 한때 번화한 상업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습격으로 집을 떠난 실향민 2,500명에게 쉼터가 되고 있죠. 국경없는의사회는 여기에서 ‘키친 프로젝트’를 지원했는데, 현지 비정부단체 아흘라 파우다 Ahla Fawda 와 바르자크 Barzakh 식당이 합작해 지역 주민에게 무상 식사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단순히 식사 제공뿐만 아니라 재료 공급도 목표로 하고 있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요리해서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식품 안전과 위생에 중점을 두고 교육도 제공하고 있어요.
_코도르 알 아크다르(Khodor Al Akhdar) / 바르자크 식당 운영 책임자

국경없는의사회 물류팀은 알 아자리에 피난처에 있던 빈 공간을 완전한 주방으로 탈바꿈 시켰고, 아흘라 파우다와 바르자크 식당은 위생 및 안전 기준을 충족하도록 시설을 갖추고 무상으로 제공한 재료를 사용해 주민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했습니다. 이 주방은 매일 약 2,500인분의 끼니를 제공했습니다.
 

전쟁 속 레바논에서는 지역사회 주도 이니셔티브들이 잘 이루어지고 있어요. 절실히 필요한 연대와 협동 분위기를 조성하여 전쟁에 대한 지속적인 대응을 가능케 합니다. 
_엘레나 페르난데스 타자두라(Elena Fernandez Tajadura) / 국경없는의사회 긴급대응 물류 코디네이터

국경없는의사회는 이외에도 레바논 전역에 22개의 이동진료팀을 파견해 심리적 응급처치, 1차 의료 및 의약품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담요, 매트리스, 위생 키트와 같은 필수 물품을 배급하고, 실향민이 모인 학교와 대피소에 물을 트럭으로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헬프라인
공습이 발생한 레바논 남베이루트 지역의 전경. 2024년 9월. ©MSF


국경없는의사회는 알 자리에와 같은 집단 피난처에 머무는 주민들의 의료 및 정신건강 지원 수요에도 대응했습니다. 폭력이나 파괴를 목격하는 경험은 특히 아동의 심리적 및 정신적 건강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레바논의 아이들은 강제로 집을 떠나고, 학업이 중단되며, 친구들과 헤어지고, 기본적인 생필품도 구하지 못하는 등 전쟁의 가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죠.

전쟁 속 삶은 어른에게도 힘겹습니다. 많은 국경없는의사회 환자들이 끊임없는 폭력 위협으로 압도감과 트라우마를 겪었고, 불안정한 상황 속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했습니다. 가족을 잃거나 피난 중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은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죠.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서 행동 문제, 가령 분노 공격성, 기타 문제가 되는 행동들을 발견하고 있고, 아동들의 안위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어른들에게도 정신적 외상이 수면 장애부터 식욕상실까지 초래하면서 그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죠.

_아마니 알 마샤크바(Amani Al Mashaqba) / 국경없는의사회 베카(Bekaa)주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 

국경없는의사회는 레바논 전역의 이동진료소에서 심리적 응급처치와 심리교육을 제공하는 등 실향민들에게 1차 의료서비스와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헬프라인을 개통해 실향민들이 불안, 슬픔 등 정신적 외상과 관련된 증상 관리를 돕는 임상심리사들에게 원격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죠. 헬프라인으로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서비스를 대면으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 특히 격렬한 폭격과 이동제한으로 인해 이동이 어려운 레바논 남부 지역 주민들에게 지원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팀은 2024년 10월 21일 기준 약 5,000명에게 심리적 응급처치 그룹 세션을 제공했고 450명 이상에게 정신건강 개별 세션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환자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고민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거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알려주는 등 심리적 응급처치를 제공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레바논의 인도적 위기
칼릴 Khalil 의 아내와 손녀 자흐라 Zahraa 는 대피소가 된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다. ©Tracy Makhlouf/MSF

겨울이 다가오면서 실향민의 상황은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수천 가구가 여전히 파괴된 집, 임시 대피소, 버려진 건물 등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혹독한 추위에 더해 적절한 주거지가 부족한 상황은 특히 아동과 고령자의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휴전 이후에도 고위험 지역에서 의료지원, 이동진료와 식수위생 지원을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지만, 영하의 기온 속에서 주민들의 수요는 막대합니다. 특히 아카르 Akkar 와 같은 산악지역에는 난방시설이나 깨끗한 물이 부족한 가구가 많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담요와 기타 물품을 배급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취약한 가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한복, 난방시설, 겨울철 대피소 마련 등 긴급한 수요가 남아 있습니다.

휴전이 선언된 이후에도 레바논의 인도적 위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자지구의 야전병원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 발라 소재 야전병원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소아 환자들에게 필수 치료를 제공한다. 2024년 10월. ©MSF


2023년 10월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최소 43,000명의 사망자와 102,000명의 부상자(출처: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 11월 5일 기준)가 발생했습니다. 인구의 90% 수준인 약 190만 명의 실향민이 발생했고, 그중 100만 명 이상이 이스라엘이 지정한 알 마와시 Al Mawasi 지역 내 열악한 생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밀한 피난처에서는 여러 질병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알 마와시에 고립된 피난민들은 식량이나 비누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물품부터 의료지원을 포함한 필수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2024년 9월 데이르 알 발라Deir al Balah에 야전병원을 개원한 지 한 달 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의료 활동을 확대하여 소아 입원 치료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11월에는 병상 18개를 추가 설치해 전체 병상 수를 51개까지 늘렸습니다. 지난 9월 이 야전병원을 개원한 이후로 국경없는의사회는 16,000여건의 외래 진료를 실시했으며, 이 중 약 36%는 호흡기 감염 환자, 약 22%는 피부 감염 환자였습니다. 10월 중순 이후부터 한 달간 치료한 입원 환자들은 약 134명이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보건부와 협력해 데이르 알 발라에 조기 개원한 야전병원. 2024년 8월. ©MSF


가자지구 내 의료지원 수요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피난민 캠프 내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고통받고 있고, 겨울에는 전문 치료가 필요한 환자 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환자들은 퇴원하더라도 애초에 질병을 얻었던 열악한 환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휴전’뿐입니다.

야전병원은 전쟁으로 보건의료가 무너진 데 대응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일 뿐, 가자지구의 의료 수요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1년간 10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현재 가자지구에서는 36개 병원 중 16곳만이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