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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호 및 의견표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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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표명과 증언 활동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구호 활동을 하는 동안 폭력과 잔혹 행위, 소외의 장면을 자주 목격합니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국제사회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장에서 활동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환자들과 그들의 지역사회에 가능한 한 최상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현지 당국, 교전 당사자, 그 밖에 다른 구호 기관들과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그러나 때로 국경없는의사회는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기도 합니다. 이는 잊혀진 위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주요 뉴스 바깥에서 일어나는 학대 상황을 대중에게 알리고, 구호 체계의 결함을 비판하고, 인도주의 구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의료나 필수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정책을 지적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르완다에서 스레브레니차까지, 체첸 공화국에서 에티오피아까지, HIV/AIDS에서 에볼라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증언하고, 그 비극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몇 가지 예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서아프리카 에볼라 위기 (2014년-현재)

2014년 초에 발생해 서아프리카를 강타한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의 예측할 수 없는 전례 없는 확산은 국제사회 보건 체계의 복합적인 결함, 또한 과거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 데서 오는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에볼라 창궐은 국제사회의 느린 대응, 대규모 보건 긴급 상황에 대한 대응에서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 기구들이 보인 협조 및 활동 부족, 전염병 확산을 통제하지 못하는 저소득 국가들의 취약한 보건 체계, 주로 빈곤층에서 발생하는 소외 질병에 대한 연구 및 개발의 심각한 부족 등도 보여 주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통제 불능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매우 이례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에게 군 의료 인력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종교 분쟁 (2013-현재)

2014년 초, 국경없는의사회는 날로 심각해지는 폭력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나라 안팎에서 지원하기 위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여러 주변국에서 운영 활동을 확대했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반대 입장 선언에도 불구하고 국경없는의사회는 그 곳의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활동을 지속해 왔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는 인도적 재난에 대응하지 못하는 국제사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시리아 내전 (2011년-현재)

근 5년 사이에 25만 명이 사망했고 900만 명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은 지금도 계속해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고, 정부의 통폭탄 공격 아래 여전히 갇혀 있거나 난민캠프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내 주민들과 인근 국가의 난민을 포함해 도움이 필요한 시리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리아인들을 지원하려는 대규모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전 당사자들은 꼭 필요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방해해 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활동의 일환으로 국제법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러한 노골적인 경시에 대해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 세계 HIV/AIDS 확산 (2000년-현재)

1981년 이후 2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HIV/AIDS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00년에 처음으로 저소득 국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HIV 치료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30여 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20만여 명의 HIV 감염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의료적 의견 표명과 ‘필수의약품 접근성 강화 캠페인’(Access Campaign)을 통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정부와 제약업계, 국제사회에 HIV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시급하게 필요한 새로운 치료법과 진단 프로그램 개발을 촉진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습니다.

코소보 전쟁 (1998년-1999년)

1998년 3월, 당시 '유고연방공화국'은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촉발된 분쟁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수백만 명을 살던 곳에서 내몰았으며, 결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개입으로 겨우 끝이 났습니다. 코소보에서 수년간 활동하고 있었던 국경없는의사회는 잔혹 행위와 공습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에게 즉시 긴급구호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살인과 파괴가 계속되고 고위급 국제 중재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과 안전이 악화되고 있는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르완다 대학살 (1994년)

국경없는의사회는 1991년부터 2007년까지 르완다에서 활동했습니다. 르완다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하자 국경없는의사회 일원들은 대학살이자 20세기 후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인식될 그 사태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들의 임무와 원칙이 학살의 주범들에 의해 끊임없이 침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들은 인도주의 단체 역사상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인 무력 개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가뭄과 강제 이주 (1984년-1986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에티오피아 북부를 강타한 기근이 수백만 명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던 1984년에 에티오피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환경 요인과 전쟁,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 등이 불러온 에티오피아 기근은 국제사회로부터 전례 없는 규모의 원조를 이끌어 냈습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지원 받은 기금의 일부를 그 나라의 인문 지리학을 새롭게 설계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는데, 그 결과 10만 명의 추가 사망이 발생했습니다. 1985년, 이주자들에 대한 정부의 학대를 목격한 국경없는의사회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등에 업고 이러한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는 에티오피아 정부에 대해 명백한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 후 며칠 뒤, 국경없는의사회는 에티오피아에서 추방 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