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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만 저는 반은 장님이나 다름없습니다.”

2013.02.13

마튼 데커(Maarten Dekker)는 남수단의 마반 카운티(Maban county)내 위치한 바틸(Batil) 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 의사다. 마반 카운티에 위치한 4개의 국경없는의사회 난민 캠프 모두 현재 유행성 E형 간염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바틸 캠프에서 E형 간염 발생이 확대되다

바틸 캠프에서 처음으로 E형 간염 환자가 보고된 것은 작년 7월이었습니다. 제가 10주 전 이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환자 수는 감소하고 있었고,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응급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3, 4주에 걸쳐 환자 수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2주 전에 신규 환자수가 271명이었던데 반해, 지난주 신규 환자수는 494명이었죠. 뿐만 아니라 우리 E형 간염 병동의 입원환자 수 또한 한 주당 16명에서 23명, 그리고 46명으로까지 증가했고, 단 하루 만에 26명의 신규 입원 환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망자 수 역시 조금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당시만 해도 한 주에 약 한 두 명에 그치던 사망자 수가 4명으로, 또 7명으로 늘어나더니 지난 주에는 11명의 입원환자가 사망했습니다.

E형 간염은 간에 영향을 주는 질병으로서, 이 질병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습니다. 이 질병은 비정부 기관, 세계 보건 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을 비롯한 대다수 단체의 일상적인 활동 영역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저 또한, 이 곳에 오기 전까지 이 질병을 치료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이들이 이 질병에 대해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최적화된 지지 요법(supportive care)을 제공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온 여러 내과 전문의들과 함께 ‘업무 계획(working protocol)’을 마련 중에 있습니다.

마튼 데커 의사가 마반 카운티에 위치한 바틸 난민 캠프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있다.

E형 간염, 치료법이 없다

E형 간염에는 치료법이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증상을 치료하고 출혈 혹은 저혈당, 탈수, 감염 등의 일부 합병증을 예방을 하기 위해 지지 요법을 제공하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간부전(liver failure)입니다. 이는 우리가 치료할 수 없어 정말로 좌절감을 주는 일입니다.  그저 의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 기본적으로 반은 장님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간이 제대로 해독작용을 하지 못해 체내에 독성이 가득 쌓이게 되면, 환자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 혹은 의식 변화(altered mental state)상태로 병원에 오게 됩니다. 보통 이런 환자들은 4일 내지 5일 동안 혼수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들의 생존율은 50퍼센트에서 60퍼센트 정도입니다. 즉 회복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죠.

죽음에 대처하기

이 곳에 있는 동안, 저는 약 20명의 환자의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처음 사망자가 생기면 좌절감이 들지만, 차츰 너무 감정적이 되지 않도록 자신 안에 벽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의사와 환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를 돕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환자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과, 동시에 너무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니 참 어려운 일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질병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젊고 건강한 연령층입니다. 이 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은 나처럼 젊은 청년들로서 대부분 20세, 25세, 30세입니다. 젊은 남녀들이 주요 환자이며, 아이들이나 40세가 넘은 이들 중에는 환자가 많지 않습니다.

산모들, 가장 큰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전체 사망률을 보면 백 명의 환자들 중 2명 꼴로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치사율은 약 2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산모들에게 그 비율은 약 20퍼센트에 이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실 저희도 잘 알지 못합니다. 산모들 중에 출산을 하고 난 이후에는 괜찮아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몇의 산모들은 조산아를 낳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아기만 살아남고 산모는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병동에서 환자 사망 후 감정적으로 크게 반응하는 사람을 본 것은 단 한번뿐입니다.  보통은 누가 사망하면 유가족은 되도록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몇 분 안에 15여 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시신을 옮기거나, 우리가 시신을 옮길 수 있도록 당나귀 수레를 제공해 집으로 향합니다. 그들에게는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죽어간다는 사실이 매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이 제게로 와서 “고맙습니다. 애쓰셨어요.”라고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그들의 눈에서 보기도 합니다.

도로 캠프(Doro camp), 유행병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다

때로 의사로서 실패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적절한 때에 그 곳에 없었다든가 혹은 적절한 때에 알맞은 치료를 못했다든가 그럴 때 이런 느낌이 들죠. 이러한 개인적인 실패는 저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이지만, E형 간염에 있어서는 최선의 치료를 다 했기 때문에 제가 개인적으로 부족했다거나, 큰 실수를 했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습니다. 최선의 치료를 했지만 여전히 죽어가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도로 캠프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몇몇의 의사들이 이 곳을 방문했습니다. 도로 캠프에서도 최근 E형 간염으로 의심되는 환자들이 있어 이 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E형 간염 환자들을 관리하고 있는지를 배우러 왔습니다. 도로(Doro)에는 약 4만 5천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일어났던 일이 그 곳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될까 봐 두렵고, 그들이 장기적인 E형 간염 문제를 겪게 될까 봐 염려되기도 합니다.

관련글 : 국경없는의사회, 남수단 난민 캠프 내 E형 간염 발생 확대에 대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