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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위기: 시리아 난민의 눈으로 – 2. 바하르(Bahar)

2016.03.15

시리아 난민 바하르(Bahar)는 이라크 도미즈 난민캠프에서 3년간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한 후, 유럽으로 떠나겠다는 힘든 결심을 했다. 관처럼 생긴 상자 속에 숨어 며칠을 버틴 끝에, 바하르는 덴마크 국경까지 갈 수 있었다.

5년 전, 시리아 쿠르드족인 바하르(36세)는 다마스쿠스에 살고 있었다. 결혼해 두 아이를 둔 엄마였던 바하르는 회계사로 일하고 있었다. 보람 있는 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듬직하면서도 개방적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던 바하르의 앞날은 편안하고 안정돼 보였다.

그러나 2011년,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바하르 남편이 체포된 것이다.

바하르는 “남편은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어요.”라며 “남편이 사라지고 나서 제 삶은 복잡해졌어요. 아이들을 위해 저는 엄마 역할도, 아빠 역할도 해야 했거든요. 아이들이 안전한 곳에서 충분히 먹으며 지낼 수 있도록 제가 책임져야 했어요. 그렇다고 다시 엄마에게 돌아가 같이 살 수도 없었죠. 엄마는 제 남동생과 그 아이들까지 돌봐주고 계셨거든요. 모두가 함께 지낼 공간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직업도 잃은데다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시내에서는 나날이 폭력사태가 늘어나자, 2012년 바하르는 아이들과 함께 다마스쿠스를 떠나 다른 곳에서 피난처를 찾기로 결심했다. 부모님도 그 뜻에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함께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 있는 도미즈 난민캠프로 향했다.

바하르에게 있어서 그것은 뿌리가 뽑히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바하르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각오를 다졌고, 이내 캠프 안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일을 구했다. 다른 난민 여성들이 자신과 자녀들의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후 3년여 동안 바하르는 나날이 불안해졌고, 도미즈에서는 바하르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캠프에서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어요.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죠. 우리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는 혼자 가족을 책임져야 했어요. 날마다 사람들이 떠나는 것도 눈에 보였어요. 그래서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달리 방법이 없었거든요.”

부모님의 도움 속에, 바하르는 식구들은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홀로 유럽으로 향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걸어서 터키 국경을 넘고, 이틀 뒤에 이스탄불에 도착해, 유럽에 들어가려고 밀수업자와 합의를 했다.

“저는 밀수업자와 단 둘이 있었어요. 그가 누군지도 몰랐고요. 그는 저를 나무 상자 같은 곳에 숨겨 줬어요. 마치 사람 관처럼 생긴 상자였죠. 저는 그 안에 대충 누웠어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요. 도로 위를 지나는지, 마을을 지나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죠. 마치 제가 죄수 같았어요. 그렇게 4일을 차로 이동했어요. 딱 한 번 화장실에 가려고 밤에 차를 세워서, 바깥 공기를 한번 마셨어요. 그리고 굶지 않으려고 대추야자 열매를 먹고 물도 좀 마셨어요. 그것 말고는 없었어요. 지옥 같았죠. 그런 여정을 끝까지 해내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하지만 제게 다른 방법은 없었어요. 저는 저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감수했어요.”

덴마크 난민 센터에서 7개월을 보낸 후, 바하르는 마침내 망명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거주 허가를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는 사이, 바하르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아이들을 덴마크로 데려오려면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하르는 “아이들과 3년이나 떨어져 산다는 건 제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과연 누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아이들을 이리로 데려오지 못하게 한다면, 저는 이라크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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