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5일
예멘 카미르(Khamir)에 위치한 알 살람 병원 응급실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외과 병동과 산부인과 병동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2만9000여 명이 이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이 병원은 카미르와 인근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치료센터다.
아랍어로 ‘salam’(살람)은 평화를 의미하는데, 전쟁 중인 예멘에 자리한 병원의 의미를 그대로 말해 주는 듯하다.
수마야의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알 살람 병원에 찾아왔다. 수마야 가족은 여러 병원을 다니느라 재산을 소진했지만 수마야를 도와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 Florian SERIEX/MSF
수마야와 아이샤
수마야(Sumaya)의 어머니 아이샤(Aisha)는 수마야가 이제 두 살이 다 되어 간다지만, 아이를 보고 있으면 채 몇 개월 되지 않아 보인다. 수마야는 비타민 부족으로 뼈가 약해지는 구루병에 걸렸다. 지난 몇 달간, 아이샤는 딸 수마야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며 치료책을 찾아 보려 했으나, 그 어떤 것도 수마야에게 효과를 보이지 않아 아이샤는 절망감에 빠졌다. 아이샤 가족은 수마야의 치료를 위해 예멘 곳곳의 여러 병원을 다니느라 모아둔 돈 대부분을 써 버렸다.
야흐야가 자는 동안 어머니 하디야가 아기를 돌보고 있다. ⓒ Florian SERIEX/MSF
하디야
하디야는 지쳤다. 반복된 임신에 지쳤고, 물을 구하러 두 시간씩 걸어가는 것도 지쳤다. 하지만 피로보다 더 힘든 건 불안이다. 하디야에게는 여섯 명의 자녀가 있다. 그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야흐야(Yahya)가 하디야 옆에 누워 잠들어 있다. 야흐야에게 젖을 먹이던 중, 하디야는 아이가 자주 열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열 증세는 나날이 악화되었고, 결국 하디야는 하는 수없이 일구던 밭과 다른 아이들을 그대로 둔 채 야흐야를 데리고 병원에 올 수밖에 없었다.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올해 열세 살 된 가장 큰 아이가 집안일을 다 챙기고 있어요.”
하디야의 남편은 병원까지 올 교통비를 벌고자 카트(현지 나무의 일종)을 내다팔려고 인근 시내에 나가 있다. 병원 치료비는 무료지만 카미르까지 오는 교통비가 만만치 않다. 여기까지 오는 데 15,000리알(미화 약 50달러)이 들었다.
하디야 가족은 산꼭대기에 있는 외진 마을 쉬하라(Shihara)에 살고 있다. 생필품과 교통 비용이 오르는 등 전쟁으로 인해 나타난 여파로 하디야 가족은 피해를 입고 있다.
간호사가 사기르 압달라의 상처 처치를 준비하고 있다. ⓒ Florian SERIEX/MSF
사기르 압달라
사기르는 서른 살쯤 되었다. 사기르조차 자신의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 사기르는 오트만(Othman)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 출신이다. 이 곳은 암란(Amran) 주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외진 곳들 중 하나다. 사기르는 공사장에서 일거리를 구하거나 카트 농장에서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 가는데, 보통 하루에 2000리알(미화 10달러 미만) 정도를 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한 뒤로는 일을 할 수도 없었고, 가족들을 챙겨주지도 못했다.
“앞으로 2주간 3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상처 처치를 받아야 합니다.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데 왕복으로 6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다 돈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여기 머물러 있기로 했습니다.”
사기르가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처를 소독하는 간호사를 바라본다. 오른쪽 허벅지에 12바늘을 꿰맨 자국을 보니 부상을 입게 된 그날 일이 다시금 떠오른다.
“친구랑 가볍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우리가 알던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오토바이를 세우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그가 제게 총을 쏘고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곁에 있던 제 친구가 병원까지 저를 태워다 주었죠. 병원까지 오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사기르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총을 쏜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그는 감옥에 있다고만 할 뿐이다. 예멘에는 사방에 무기가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구하기에는 가격이 어마어마하지만 (기관총 1대: 미화 약 50달러), 거리를 다녀 보면 어깨에 총을 메고 가는 남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