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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산모를 살리는 일  

2018.08.30

산부인과의 정의 활동가는 지난 5월까지 6개월간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시에라리온 카발라 병원에서 유일한 산부인과 의사로 산모들의 출산을 도왔습니다. 마지막 활동을 마친 지 2년 만에 다시 구호 현장을 찾은 정의 활동가는 “현장에는 경험 있는 의료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현장과 한국을 오갈 것”이라며 이번 활동의 소회를 밝혔습니다. 시에라리온의 열악한 의료 환경, 그리고 그런 여건 속에서도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며 느꼈던 감동의 순간을 들어 보았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스태프가 응급 환자를 카발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Joosarang Lee/MSF

첫 임신이었던 18살의 아다마(Adama)가 우리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진통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집에서 2~3일간 진통을 했지만 진전이 없어 지역 보건소에 찾아갔고, 산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더 큰 시설인 우리 병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아무 문제없이 출산할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에 아다마는 자궁이 파열되었고 아기도 잃고 말았다. 다행히 아다마의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이곳 시에라리온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내가 한국에서 만났던 산모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야말로 책에서나 보았던 희귀 케이스인 임신 중 말라리아, 임신중독증, 자궁파열 환자들이 쉴 새 없이 들어왔다.

내가 있었던 카발라 병원은 시에라리온 코이나두구 주에서 2차 전문 진료가 가능한 유일한 의료 시설이다. 코이나두구의 중환자들은 전부 카발라 병원으로 온다고 보면 된다. 그중 국경없는의사회는 응급실, 소아과, 산부인과, 입원 치료식 센터 운영을 돕고 있는데, 내가 있던 5개월 동안 산부인과에 전문의는 나뿐이었다. 일반적인 출산은 대개 조산사들이 돕고, 그 외 복잡한 치료와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내가 제왕절개술로 분만을 돕는다. 

이곳에서는 환자들이 병원까지 오는 것부터 쉽지가 않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카발라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거리도 멀고 비포장 도로를 달려와야 하기 때문에 환자를 이송하는 데 왕복 1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카발라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Joosarang Lee/MSF

정의 산부인과의가 카발라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Joosarang Lee/MSF

출산을 앞둔 파투(Patu)는 내가 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리 병원에 왔다. 파투는 5년 전 힘겨운 진통 끝에 제왕절개로 출산한 이력이 있었다. 당시 파열된 자궁을 꿰매면서 ‘다음 임신 때는 절대 진통하지 말고 반드시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주의를 받았다. 하지만 또 다시 진통을 오래 겪다가 결국 아기도 잃고 본인의 목숨도 잃고 말았다. 이럴 때는 정말 화도 나고 무력감도 들었다. ‘왜 진작 병원에 오지 않았을까?’ ‘누공이 생겨 수술까지 받았는데 왜 좀더 일찍 병원에 오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시에라리온은 산모사망률이 1,360명(출생아 10만 명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우리나라 산모사망률이 11명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태어난 신생아를 잃는 경우도 안타깝지만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는 산모 생명이 먼저고 산모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다.

환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현지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그 산모가 언제 어떻게 입원했고 어떤 원인으로 사망했는지 자세히 되짚어 보면서 앞으로 이와 유사한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교육하는 것이다.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정의 활동가가 초음파로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Joosarang Lee/MSF

반면에 환자가 살아서 돌아갈 때면 ‘내가 여기 오길 정말 잘했구나’ 하고 보람을 느꼈다. 집이 병원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산모들은 제왕절개 후 2주 동안 병원에 머물게 되는데, 함께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의료진과도 가까워진다. 출산 직후에는 몸도 붓고 혼란스러워하던 산모들이 병원에 머물면서 하루가 다르게 회복해 가는 모습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 

흔히들 분만 과정에서 피를 많이 본다고 해서 산부인과 일을 ‘블러디 비즈니스’(Bloody Business)라고 부른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산부인과는 의사와 혈액만 있으면 산모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죽어가던 산모도 출산 후에 적절한 관리를 받으면 하루 이틀 지나 멀쩡하게 집에 돌아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게다가 산부인과에서 쓰는 약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어 그 약만 있으면 치료가 까다롭지 않다. 산부인과 의사인 내게 시에라리온은 혈액만 있으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렇다,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산모를 살리는 일이었다.

 

영상 1 |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정의' @시에라리온

 

 

 

영상 2 | [현장 구호활동가 채용 웨비나] #5 산부인과 전문의 OBG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