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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 HIV 치료 진전에도 주요 난제들 남아

2023.12.01

2003년, 기니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수도인 코나크리(Conakry)에서 무상 HIV 검사 및 치료 센터를 개소하고 항레트로바이러스(ARV) 치료제를 사용해 HIV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현재,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지만 국경없는의사회는 여전히 해당 질병 퇴치에 힘쓰는 핵심 단체 중 하나이며, 검사와 치료에는 여전히 주요 격차가 존재한다.

코나크리 소재 보건소의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HIV 외래병동 대기실에 환자들이 앉아 있다. 2018년 3월. ©Albert Masias/MSF

2003년, 기니는 HIV/AIDS 프로젝트를 전개하기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었다. 성인 4명 중 1명이 HIV를 보유하고 있는 남부 아프리카 등 해당 팬데믹의 진원지에 있는 국가들과 달리 기니에서는 인구의 1.7%만이 HIV 양성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낮은 유병률로 인해 HIV/AIDS 치료 및 관리는 기니 주민들에게 우선시되지 않았고, 그 결과 해당 질병 치료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적이게 되었다.

무나(Mouna)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지역사회 담당자 마이무나 디알로(Maïouna Diallo)도 한때 해당 질병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2000년대 초반에 몸이 계속 안 좋아서 수많은 의사들을 찾아갔지만 아무도 저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럽에 살던 친오빠가 저를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영국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죠. 의료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심각한 상황이라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오빠는 집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저를 돕겠다고 했죠.”_마이무나 디알로

무나의 가족 중 일부는 그녀를 낙인 찍긴 했지만, 무나는 가족 중에서도 특히 오빠의 도움을 받아 해외에서 ARV 치료제를 구할 수 있었다.

높은 비용 부담과 낮은 ARV 접근성 탓에 일부 환자들은 치료를 받다 중단하기를 반복했고, 그 결과 1차 약제에 내성이 생겨 효과적인 치료 요법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국경없는의사회 지역사회 교육자로 활동 중인 아부바카 카마라(Aboubacar Camara) 또한 HIV 보유자다.

어느 순간부터 기존에 받던 치료가 더 이상 잘 맞지 않았습니다. 치료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곤 했죠. 결국 치료에 내성이 생겼고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_아부바카 카마라

2004년, 국경없는의사회는 기니에서 HIV 환자들에게 ARV를 무상으로 제공한 최초의 단체였다. 그로부터 3년 후, 기니 전역에서 해당 치료제가 무상으로 이용 가능해졌다.

그 후 10년 간 HIV 치료를 받는 환자 수가 급증했다. 오늘날 국경없는의사회는 16,425명의 HIV 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기니 전역에서 치료를 받는 86,000명의 환자들 중 20%에 해당한다.

프로그램 초기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수직감염예방(PMTCT)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전개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PMTCT 프로그램 덕분에 제 아이 두 명 모두 HIV 음성 상태로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두 아이는 현재 9살, 13살이 되었어요. 딸은 제 상태에 대해 알고 있고 저에게 큰 의지가 되어줍니다. 저는 아이가 나중에 충격받지 않도록 미리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었죠. 언젠가 제가 다쳐서 피를 흘리게 되면 제 피를 만지면 안 된다고도 알려주었고요. 아이는 모든 걸 이해하고 이제 저한테 약을 제때 챙겨 먹으라고 일러주곤 합니다.”_카디아투 보디에 발데(Kadiatou Bodié Baldé) / REGAP+(HIV 보유자들을 위한 지역사회 기반 단체) 대표

국경없는의사회의 기니 PMTCT 프로그램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 덕분에 HIV 보유 모친에게서 태어난 아동 5%만이 양성 반응을 보였는데, 이는 기니 전역에서 기록된 20%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입니다.”_히폴리트 음보마(Hippolyte Mboma) /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혁신적인 치료 모델

해당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몇 년 후, 국경없는의사회는 진료 및 치료가 무상 제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HIV 보유자들이 의료 공백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2021년, HIV 보유자 4명 중 1명만이 ARV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HIV로 인한 사망률은 여전히 높았다. AIDS 관련 합병증 환자들을 위한 전문 치료는 수도 코나크리 소재 돈카(Donka) 병원 피부과와 이그나스딘(Ignace-Deen) 병원 등 일부 의료시설에서만 가능했다. 이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시세(Cissé) 교수와의 협력 하에 돈카 병원 내 전문 치료실을 설치해 결핵 동시 감염자 치료 및 완화치료 포함 HIV 말기 환자들을 치료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동시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최신 HIV 치료 가이드라인을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기니에서 바이러스 부하 모니터링을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ARV 치료를 받으면 HIV는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이 되어 보다 건강한 삶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환자가 매일 빠짐없이 ARV 치료를 받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하지만 의료보건 종사자가 부족한 국가에서는 매달 병원을 방문해 해당 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니 내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R6M’으로 알려진 ‘6개월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해 건강상태가 양호한 환자들에게 1개월분이 아닌 6개월분의 ARV 치료제를 처방해주어 치료를 받는 데 필요한 시간•비용•이동량을 줄이고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더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R6M 프로그램에서 처방되는 6개월치 ARV 치료제가 책상에 놓여있다. 2018년 3월. ©Albert Masias/MSF

해당 프로그램은 성공적이었다. 2022년, 국경없는의사회 R6M 프로그램에 등록한 환자 92%가 12개월 후에도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었다. 정규 프로그램에 등록한 환자의 경우 61%가 12개월 후에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전개한 R6M 프로그램이 효과를 보이자, 현지 보건부가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했습니다. 현지 보건부는 R6M 프로그램을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_샬루브 술리마네(Dr. Chaloub Souleymane)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마찬가지로 국경없는의사회는 다른 국가에서 개발된 다른 성공적이고 간소화된 치료 모델을 기니에 도입해 환자 치료 체계를 탈중심화시키고 지역사회의 치료 접근성을 제고했다. 가령 2010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처음 시범 운영 후 2020년에 기니에 도입한 ARV 치료 배급 지점(PODIs)도 이러한 치료 모델에 포함된다.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환자 치료 제공을 간소화하고 동시에 HIV 말기 환자에게 전문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사망률을 낮추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곧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당 질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 두려움, 그로 인한 차별같은 강력한 요인들이 사람들이 검사를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죠. 반면, HIV 양성인 사람들이 ARV 치료를 받고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해당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낙인을 줄이며 치료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_데이비드 테론드(David Therond) /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책임자

2001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역사회 기반 단체 및 지역사회 중재자, 그리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HIV를 보유한 사람도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HIV 보유 자원봉사자들과 긴밀히 협력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죽이는 건 HIV가 아니라 사회적 낙인과 질병에 대한 정보 부족입니다.”_무나

국경없는의사회 지역사회 담당자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무나 디알로. 2020년 11월. ©Namsa Leuba

아부바카는 2008년에 HIV 진단을 받았다.

검사를 받은 후, 의사들은 진료 노트에 ‘HIV 양성’이라고 적힌 종이를 스테이플러로 찍어 붙이더군요. 제가 문맹이라고 생각한 거죠. 저는 종이를 보자마자 놀라서 의자에서 떨어졌어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죠. 의사는 3개월치 약을 처방해주었습니다. 3개월이 지나자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죠. 하지만 약이 다 떨어졌을 때 저는 처방전을 재발급받지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제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몰랐으면 했어요. 하지만 그러자 다시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람들로부터 낙인이 찍히고 차별을 받고 있었죠. 결국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저는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어요.”_아부바카

이런 아부바카에게 동료 지원(peer support)은 생명줄과도 같았다.

어느 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국경없는의사회 동료 교육자(peer educator)인 한 활동가가 HIV와 자신의 진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었어요. 그녀는 저와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죠. 방송 끝 무렵에 전화번호를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다음 날 그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제게 ‘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당신도 저처럼 될 수 있습니다. 저는 HIV를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삶을 지속할 겁니다. 저는 그 그룹에서 위안을 얻었어요. 심지어 제가 아프다는 사실조차 잊었죠’라고 말했어요.”_아부바카

그 이후로 아부바카는 HIV 환자 주도 단체의 일원이자 국경없는의사회 동료 교육자로서 다른 환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저는 ‘내 피에는 HIV가 흐를지 몰라도, 내 영혼 안에는 HIV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있다'와 같은 슬로건을 생각해 냈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니에서 HIV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제 경험을 다른 환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저처럼 긍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격려하는 거죠.”_아부바카

국경없는의사회 동료 교육자이자 지역사회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아부바카 카마라. 2020년 11월. ©Namsa Leuba

기니에서 HIV 보유자에 대한 낙인이 대체로 줄어들긴 했지만 일부 지역사회, 특히 성 노동자 및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들에게는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두 그룹 모두 안전한 검사와 치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격차

20년이 지난 현재, 기니에서 HIV 치료는 혁신과 진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방•검사•치료•자금 조달 측면에서는 여전히 난제가 존재한다.

오늘날 기니 내 모든 의료시설이 HIV 환자에게 완전한 무상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재정적 장벽과 사회적 낙인 때문에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질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돈카 병원의 HIV 병동을 찾아온다. ARV 치료제 재고가 계속해서 소진되고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의료보건 종사자들이 HIV 및 동반 질환 관리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기니의 HIV 대응 활동은 대부분 글로벌 펀드(Global Fund)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한다. 모든 의료시설에서 PMTCT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환자에게 바이러스 부하 및 유아 조기 진단 검사가 제공되는 것은 아니고, 1차 의료서비스에서는 기회 감염에 대한 검사•예방•치료가 제공되지 않는다.

HIV 양성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가 유아 조기 진단 검사를 받고 있다. 2018년 3월. ©Albert Masias/MSF

특히 아동들이 HIV 검사 및 치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0-14세 아동 11,000명이 HIV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3,612명만이 치료를 받고 있다.

소아용 HIV 치료제는 매달 재고가 부족해 치료제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적체 현상이 최대 3주까지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바로 그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죠. 성인은 물론 아동들도 치료를 받지 않고 몇 주를 보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ARV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변종이 출현할 수 있습니다. HIV 양성 산모에게서 태어난 일부 아동들은 소아용 ARV 치료제 부족으로 인해 출생 시 소아 예방 조치를 받지 못하고, HIV를 보유한 아동 중 일부는 ARV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_샬루브 술리마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의 95-95-95 캠페인 목표는 2030년까지 모든 HIV 양성인의 95%가 진단받고, 진단받은 이들의 95%가 ARV 치료를 받고, 치료받은 이들의 95%가 바이러스 억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건부, 글로벌 펀드, 기타 후원 단체 등 모든 관련 기관이 힘을 합쳐 현재 대응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