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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국경없는의사회, 지난 30년간 결핵 환자 치료 

2019.03.26
  • 우크라이나에서 2011년부터 약제 내성 결핵 환자 치료에 참여    
  •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 2012년부터 약제 내성 결핵의 새로운 약물치료법 제공 

3월 24일은 세계 결핵의 날이다. 결핵은 현존하는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결핵 발병률 및 사망률 1위로, 1996년 OECF 가입 이래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70명으로 216개국 가운데 84위지만, OECF 회원국에서만 비교해 보면 2위 라트리아 (32명)보다 배 이상 높고 가장 낮은 미국 (3.1명)보다 20배가 넘는다. 
결핵이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 30년간 세계 곳곳의 결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결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키르기스스탄의 사례를 살펴본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우크라이나 결핵 치료소에서 환자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Oksana Parafeniuk

국경없는의사회, 우크라이나 결핵 환자 치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유행성 결핵으로 20년 간 고통받고 있으며 완전한 퇴치는 요원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통원치료 실행 등 새로운 형태의 치료법 개발로 앞으로 국내 결핵 치료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 정치적 의지와 재정적 지원 약속이 있어야만 진정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서 결핵 유병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결핵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며, 우크라이나는 다른 국가들의 사례와 새로운 연구들로 얻은 교훈을 통해 국가 내 유행성 결핵을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티나 팔코니(Cristina Falconi)국경없는의사회 현장 총괄

작년, 세계 결핵의 날에 앞서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기존 결핵 입원치료를 통원치료 방식으로 변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결핵 환자들이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동네 진료소 등에서도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의 치료 모델은 이미 여러 국가들에서 도입되어 실행되고 있으며 여러 이점들이 있다.

 “통원 치료 모델을 지지하는 이유는 의료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질병 확산 위험도 막을 수 있으며, 특히 환자들이 후속 치료를 받을 곳을 스스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_ 마르브 두카(Marve Duka),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레퍼런트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통원 치료 모델이 아직 실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앞서 먼저 갖춰져야 할 중요한 여건들이 있다. 감염 통제 정책들이 만들어져야 하며 통원 센터도 매일 운영하여 환자들이 언제든 가서 약물을 비롯하여 여러 치료들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이와 관련 교육을 받고 있으며 결핵 및 HIV나 C형 간염 등 환자들이 다른 질병을 앓고 있을 시 그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치료 장비 및 수단도 보유하고 있다.

성공적인 치료 모델을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환자들을 위한 심리적 및 사회적 지원이다. 결핵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주로 부작용이나 사회에서 겪는 차별 등이 결국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우크라이나에 있는 환자들 대부분은 이러한 통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토미르(Zhytomy)에서 시범 프로젝트 운영을 통해 우크라이나 보건부와 각 지역의 결핵 치료소와 협력하여 약제내성 결핵 환자들을 위한 환자 중심 치료 모델을 도입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10개월이 지난 후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프로젝트를 통한 첫 번째 환자가 완치됐 최근 발표했다. 결핵 환자였던 아이호어 부카인비키(Ihor Bukhinevych)는 전체 결핵 치료 동안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 통원 치료를 받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1년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약제내성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있으며 지난 30년간 세계 곳곳에 있는 결핵 환자 치료에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결핵 환자의 사례 

우크라이나 지토미르 (Zhytomyr):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 활동이 치료한 첫 번째 환자, 약제내성 결핵 완치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의 치료를 받은 아이호어는 약제내성 결핵이 완치 판정을 받았다.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지원 총괄 올가 시도룩(Olga Sydoruk)과 함께 걷고 있는 모습 ©MSF

작년 5월 약제내성 결핵 (DR-TB) 판단을 받은 아이호어(Ihor) (33)는 우크라이나 북서부 지역의 지토미르 지역 결핵 병원 (Zhytomyr Regional Tuberculosis Hospital)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신규 프로젝트 의료팀으로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우크라이나 보건부와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약제내성 결핵의 효과적인 치료 모델이 우크라이나에서도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는 1995년부터 유행성 결핵 환자가 발견됐으며 현재 약제내성 결핵 유병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지만 지금까지 전체 환자 중 절반 정도만 완치된 상태다. 

아이호어의 결핵 치료는 우크라이나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됐다. 기존 방식의 약제내성 결핵 치료는 대부분 거의 2년 정도 걸리며 환자들은 결핵 치료 전용 병원에서 몇 달 또는 몇 년까지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이호어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혁신적인 치료법으로 치료 시작 두 달 만에 퇴원을 하고 나머지 기간은 집에서 생활하며 동네 병원을 다니면서 통원 치료를 받았다. 이 전체 치료 과정 동안 간호사, 사회 전문가, 정신 건강 전문가들로 이뤄진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지원팀은 아이호어가 약물 치료의 부작용, 우울증, 가족과 친구들의 외면 등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호어는 결핵 치료 경험 이야기를 나누고 결핵 진단을 받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해주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아이호어가 다제내성 결핵 치료에 참여하고 감독한 국경없는의사회, 보건부의 의료진, 환자 지원팀과 서있는 모습. 왼쪽부터: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지원 총괄 올가 시도룩,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의료 레퍼런트 마브 듀카(Marve Duka),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아이호어, 보건부 소속 간호사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 마리나 신카르추크(Maryna Shynkarchuk), 의료 활동 책임자 올레나 트루쉬(Olena Trush) ©MSF

“처음 결핵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 우울증이 왔어요.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치료 기간 자체가 너무 길고 모든 사람들과 완전 단절된 상태로 지내야 했어요. 혼자 외톨이처럼 지내야 하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들었어요. 처음 60일 정도는 결핵 전문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그 기간도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병원에서는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 약을 받아요. 간단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실제 겪어보면 정말 힘들어요. 정신적으로도 약 먹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었어요. 약을 먹으면 정말 고통스럽거든요. 피부가 붉어지고 구토를 했어요. 약 냄새도 고약했죠. 예를 들어, 엄청나게 몇 배 더 강한 락스 냄새라고 생각하면 돼요. 정말 참기 어려웠어요. 

 

집중 치료가 끝난 후 4개월 동안은 매일 16정씩 알약을 먹었어요. 이후에는 하루에 10정씩 먹었고요. 약을 먹고 나면 속이 쓰리고 구역질이 났어요. 약을 한번에 16정을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약을 입에 대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았어요. 그러나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했기 때문에 매일 매일 약을 잘 먹고 치료도 잘 받을 수 있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의 치료로 결핵이 완치된 아이호어가 국경없는의사회가 우크라이나 지토미르에서 진행한 약제내성 결핵 치료 프로젝트에 참여한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아이호어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최초로 약제내성 결핵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다. ©MSF

"통원치료 당시에는 집에 돌아갈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점점 낫고 있어 기분이 좋기도 했고요. 완전히 몸이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일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회사 동료들은 대부분 저를 이해해주는 분위기였지만 평소 가까웠던 친구들은 저랑 더 이상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거리를 두고 얘기하자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전염 단계를 지났는데도 저에게 결핵이 전염될까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음성 판정을 받아 전염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계속 설명해야 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8시간을 일하는 것이 가능할 때도 있지만 굉장히 피곤합니다. 삶의 균형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력이 약해지니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결핵과 투병하는 환자들에게 절대 믿음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치료를 잘 받고, 약도 잘 먹어야 해요. 지금은 어렵지만 완치되고 나면 그 과정을 되돌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게 될 거에요. 오랜 치료 기간은 물론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를 일단 시작하는 거에요.” 

 

키르기스스탄 결핵 환자 치료

국경없는의사회는 2012년부터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인 카라수(Kara-suu)에서 약제내성 결핵의 새로운 약물치료법을 제공하고 혁신적이고 분산형 치료 모델을 장려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다제내성 결핵 유병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죽느냐, 결핵과 싸우느냐, 이 중 선택을 해야 했죠.” – 키르기스스탄의 광범위 약제내성(XDR-TB) 결핵 완치 판정을 받은 리마 (가명)의 이야기

리마(Rimma) (22)는 4년 전 결핵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결핵 박테리아가 점점 더 결핵 치료약에 내성이 생기면서 더 강한 약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위에 무리가 가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카라수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치료 프로그램에 등록했고, 새로운 결핵 치료약으로 치료를 받은 후 완치가 된 환자로는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없는의사회의 환자 중 처음이다. 

카라수의 결핵 병동. 의사가 결핵 환자의 엑스레이를 확인하고 있다 © Maxime Fossat

“18살 때 결핵 진단을 받았어요. 알고 보니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 한 명이 아팠는데 나중에 7-8명정도가 결핵에 걸리게 되었고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어요.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심하게 하곤 했는데 저는 별 다른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기침이 너무 심해져 결국 병원을 찾았죠.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그 결과 저는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즉각 결핵 전문 병원으로 옮겨졌어요.

결핵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2주째가 되자 제가 겪고 있는 결핵은 일반 치료약이 들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결국 다제내성(MDR-TB) 결핵 병동에서 세 달간 입원해 치료를 받고 그 이후는 통원 치료를 시작했죠. 그로부터 6개월 후, 약이 너무 독한 나머지 저는 간염에도 걸리게 되었어요. 간을 잠시 쉬게 해줘야 해서 병원에서는 약을 이주간 끊었었는데 그 이후 약을 아예 먹을 수 조차 없게 되었어요. 약을 보기만 해도 역겨웠고, 음식 조차 삼칠 수 없는 상태였어요.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카라수 병원에 있는 환자들의 일간 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Maxime Fossat

통원 치료를 시작했을 때, 병원에서는 제가 이미 2년 동안 약을 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처방을 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 때 국경없는의사회가 다제내성 환자들을 치료하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따는 얘기를 들었고, 국경없는의사회를 찾아갔어요.

국경없는의사회의 의사선생님은 제가 결핵 치료를 충실히 받을 의지가 있는지 계속 물었어요. 이전 치료 이력을 여기서도 조회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했죠. 저는 다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어요. 치료를 계속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죠. 2주 후, 제 다제내성 결핵은 광범위 약제내성 결핵(XDR-TB)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치료 과정에서 저는 극심한 부작용을 겪었어요. 구토와 두통 증세가 나타나고, 심지어 다리까지 아팠어요. 잠도 잘 수 없었고요. 

어떤 약은 피부색을 어둡게 하기도 했어요. 10kg나 체중이 불어나기도 했어요. 결핵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살이 쪘냐며 무슨 일이 있냐며 묻곤 했어요. 그 당시 저는 18살의 나이에 결핵 진단을 받았었고 한 달 동안 내내 울면서 우울하게 지냈어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했고, 제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카라수의 FGP(Family Group Practitioner) 병원. 베다퀼린정을 세고 있다. © Maxime Fossat

그 이후 광범위 약제내성 결핵 판정까지 받게 되자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내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까? 죽어 버릴까? 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결핵을 옮기게 될까? 아니면, 결핵과 싸워야 할까? 저는 훨씬 이전에 결핵 완치가 되었어야 했어요. 지금까지 결핵으로 결국 죽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저는 살고 싶었기 때문에 결핵과 싸우겠다고 다짐했죠.결핵 완치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저는 이제 직장도 다니고 있고, 대학에 다시 복학해 공부를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는 결핵과 관련된 모든 것은 잊어버리고 살고 싶어요. 이제 모든 과거는 떠나 보내고 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