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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나이지리아: 행정가 김아진 활동가의 일기

2016.04.25

국경없는의사회는 나이지리아 북부의 보르노 주에서 보코하람으로 인한 실향민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내 실향민 캠프 내의 진료소 운영, 위생/식수 공급, 긴급 콜레라 치료활동, 심리치료, 5세 이하의 유아와 임산부들을 지원하는 모자 병원 운영, 외과 수술 등의 활동이 여기에 속합니다. 구호 활동가 김아진은 이곳에서 2015년 5월부터 9월까지 긴급대응팀의 인사, 재정 담당 코디네이터를 맡았습니다.

나이지리아 파견에 앞서 이미 7차례나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에 참여했던 베테랑 김아진 활동가의 일상은 어떨지, 그녀의 일기를 살짝 들여다보았습니다.

 

 

 

2015년 6월 2일

오후 3시. 이틀간의 긴 여정 끝에 코디네이션 사무실이 있는 수도 아부자에서 현장이 있는 마이두구리에 도착했다. 안전 문제 때문에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이동해야 했다. 중간에 하룻밤을 묵고, 비포장 길을 쉴 새 없이 달렸더니 다리도 허리도 너무 아프다.

그동안 전화로만 이야기했던 현장의 동료들을 만나고, 보고서와 회의에서만 접했던 활동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떴다. 코디네이션팀에서 일한 지 3년째이지만 현장에 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마이두구리 진료소에서 김아진 활동가

도착하자마자 현지 행정직원인 이지케가 나에게 달려왔다. 처리해야 할 일들 - 채용절차, 급여지급, 신규직원들에 대한 인사절차 안내, 회계처리- 을 의논하고 일정을 잡았다. 회계서류를 검토하고 있으니 어느새 저녁 7시가 훌쩍 넘었다.

숙소로 가니 병원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보르노는 4월 말부터 시작된 긴급 프로젝트로 인력이 급격히 늘어나서 방이 부족했다. 임시로 거실에 파티션을 치고, 창고를 방으로 개조를 했지만 그마저 부족해서 몇몇은 근처 이름뿐인 호텔에서 묵고 있다. 내가 2주 동안 묵을 방 역시, 거실 한 켠을 판자로 나누어서 3개의 방을 만든 것이어서 방음도 되지 않고 조명도 하나로 묶여 있어 불을 끄는 것도 상의를 해야 했다.  

 

2015년 6월 3일

아프리카의 아침, 특히나 현장의 아침은 언제나 빨리 시작된다. 숙소에서는 10명이 넘는 동료들이 아침식사를 하느라 또 공동욕실을 사이좋게 나눠 쓰느라 분주하다.

마이무사리 병원 중환자실 © Abraham Oghobase

오늘은 새로 시작하는 마이무사리 병원에서 근무할 의사들을 채용하는 날이다. 보르노 주는 나이지리아인들도 위험하다고 오기를 꺼리는 곳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면접대상자가 5명이나 됐다. 의료 코디네이터인 알리와 면접 진행과 평가방식에 대해 상의를 한 뒤에 지필 시험을 진행했다.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병원 매니저이자 간호사인 르방과 간호사/간호조무사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함께 검토했다. 새로 운영할 입원병동을 맡을 인력을 뽑아야 한다. 수백 장의 이력서가 이메일과 인편으로 도착해 있어서 분류를 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이력서를 읽으면서 지원자들을 가려낸 뒤, 의사 면접을 위해 다시 옆 사무실로 달려갔다.

알리와 나는 각 지원자들을 30-40분 정도 개별 면접했는데, 아부자나 라고스 같은 대도시 출신임에도 마이두구리에 와서 보람 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의욕에 찬 젊은 의사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오후에는 현장책임 담당자 파이잘, 의료 코디네이터 알리와 함께 6월 말에 있는 예산 변경과 관련된 회의를 했다. 보르노는 추가적으로 진료소 2곳과 병원 2곳을 운영할 예정이라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다. 우리 셋은 필요한 인력, 사용될 의약품, 의료기기 그리고 진료소나 병원의 증축, 보수, 관리 등 올해 말까지의 운영계획을 의논하고 결정했다. 그 계획을 예산에 반영하고 본부에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예산 변경은 쉽지 않지만, 행정담당자인 내가 프로젝트의 활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마이무사리 병원에서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받고 있는 아이 © Abraham Oghobase

 

2015년 6월 4일

오늘은 마이무사리 병원 직원회의에 참석하고 국내 실향민 캠프를 방문하기 위해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섰다. 마이두구리에 도착한 이후 사무실과 숙소만 왔다 갔다 해서 바깥 공기를 쐬는 건 이틀 만이다.

마이두구리의 아침은 출근하고 등교하는 사람들로 꽤나 분주해서 교통체증이 생각보다 심했다. 마이두구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오지 시골이 아니다. 국경무역이 왕성한 국제도시이고 세련되고 큰 도시였다. 사람들은 분쟁이 있지만 그 속에서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6월 보르노의 햇볕은 따갑고 건조하다. 온통 황토색 흙먼지가 가득해 초록빛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늘이라고는 없다. 실향민 캠프를 둘러보기 위해 잠깐 걷기만 했는데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얼굴을 발갛게 익어버렸다.

근처 마을이 보코하람에 의해 불에 타면서 사람들이 캠프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국경없는의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기 위한 방문이다. 마을 지도자들은 식수와 화장실이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위생/식수 담당자인 폴은 필요한 식수 공급량을 계산하고 화장실과 샤워장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을 살펴보았다. 창문도 없고 페인트도 칠해지지 않은 미완성 건물의 방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힘없이 누워 있었는데, 실내 역시 더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