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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폭력과 추위 속 발이 묶인 이주민과 망명 신청자

2019.12.12

아침 8시 30분, 크로아티아-보스니아 국경 인근 자바예(Zavalje)의 아침기온은 영하에 가깝다. 칸(Khaan)*을 비롯해 30여명이 지역 보건소 앞에 줄을 섰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작은 진료소에서 일주일에 네 번, 의료 및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한다. 칸은 외투도 없이 헤진 옷만 걸쳤고, 신발끈이 없는 신발은 진흙범벅이다. 

보스니아 부샥 캠프에서 2km 떨어진 지역 보건소 대기실에서 한 환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Anna Pantelia/국경없는의사회

보스니아 부샥 캠프에서 2km 떨어진 지역 보건소 대기실에서 한 환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보건소에서 하루3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벨리카 클라두사에서도 불법 거주 건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진료소를 운영한다. 주로 피부 질환, 상하기도감염, 저체온증, 동상 등을 치료한다. 대부분 증상은 폭력이나 열악한 생활 조건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끼리는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으려는 것을 ‘게임(the game)’이라고 불러요. 2주 전 저도 ‘게임’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당시 같이 있던 사람 모두 크로아티아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경찰을 우리를 폭행했고, 외투, 가방, 휴대폰, 현금, 신발까지 빼앗았습니다. 그리곤 다시 보스니아에 벨리카 클라두사(Velika Kladusa)로 돌려보냈어요. 그 중에는 12살 아이도 있었습니다. 경찰은 아이들도 폭행했어요. 여기선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_칸

칸은 북쪽으로 이동하던 중 보스니아에 도착했다. 올해만 약 2만명이 칸과 같이 보스니아에 도착했다. 발칸 반도의 국경 경비가 갈수록 삼엄해지면서, 다른 유럽 국가의 안전한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수 천명이 다양한 대안 경로를 모색 중이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며 보다 열악해지는 생활 환경과 크로아티아의 강한 반발로 보스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지나기 힘든 이주 루트의 ‘병목 구간’ 중 하나가 되었다.

기온이 영하 가까이 떨어지는 밤에는 4천여명이 국경 도시 비하치(Bihac)나 벨리카 클라두사 주변의 폐건물이나 임시 보호소 또는 부샥(Vucjak) 캠프의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부샥 캠프는 보스니아의 지역 정부가 공식 난민 캠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임시로 제공한 보호소다. 하지만 이곳의 생활 환경은 어떤 인도주의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한다. 또한 휘발성이 높은 메탄 가스로 오염된 지뢰 지대에 위치해있다. 이런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도 정부는 지난 11월 13일, 이 캠프를 현재 상태로 유지하고 새로 도착하는 난민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보스니아 부샥 캠프의 비인도적인 생활 환경 ⓒAnna Pantelia/국경없는의사회

보스니아-크로아티아 국경을 넘고자 이동하는 이주민과 망명 신청자는 비하치와 벨리카 클라두사 인근으로 몰린다. 부샥 캠프의 생활 환경은 어떤 인도주의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하며, 이 캠프에 사는 약 1천명의 사람들은 매우 낮은 기온에도 텐트에서 생활하며 차가운 물을 사용해야 한다.  

“이곳 생활은 매우 어렵습니다. 밤에는 차가운 바람이 텐트 안까지 들어오고, 비가 오면 물이 샙니다. 먹는 것도 상태가 좋지 않고, 화장실은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럽습니다. 씻을 때 사용하는 물은 매우 차갑습니다.”_파키스탄에서 온 무할릴*

무할릴은 16살 동생과 함께 두 달 째 부샥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 무할릴이 이야기하는 동안, 텐트를 같이 쓰는 동료들은 텐트 안에서 지핀 불로 납작한 빵을 구웠다.

보스니아 부샥 캠프의 비인도적인 생활 ⓒAnna Pantelia/국경없는의사회

부샥 캠프의 생활 환경은 어떤 인도주의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하며, 이 캠프에 사는 약 1천명의 사람들은 매우 낮은 기온에도 텐트에서 생활하며 차가운 물을 사용해야 한다.

“부샥 캠프의 환경은 매우 위험하고 비인도적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환경에 방치되어선 안됩니다. 부샥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때론 양말이나 외투도 없이 샌들만 신은 채로 옵니다. 대부분 매우 열악한 생활 환경 때문에 호흡기 감염이나 피부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환자를 만나고 치료할 때마다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이들이 결국 다시 텐트로 돌아가 차다운 바닥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캠프를 이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즉시 폐쇄되어야 합니다.”_국경없는의사회 현장 부코디네이터 니할 오만(Nihal Oman)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 8월 보건부와 함께 보스니아의 이주민 및 망명 신청자를 위한 의료 지원을 재개했다. 공식 난민 센터에 들어가지 못한 이주민과 망명 신청자를 대상으로 하며, 특히 폭력과 성폭행 피해자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현재까지 의료 접근성이 없는 환자 1,200명에게 의료 상담을 제공했다.  이중 많은 수는 동행자가 없는 미성년자다. 

“공식 캠프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모든 형태의 서비스에 접근이 제한되고 폭력의 위험에 더욱 노출되어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가장 도움이 시급한 이들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정부에서 방한 설비를 갖춘 안전한 거처를 제공하고 기본적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것입니다.”_오스만

* 환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대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