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8월19일은 ‘세계 인도주의의 날’이다. 2003년 8월 19일 이라크 바그다드 유엔 본부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은 22명의 인도주의 활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유엔 총회 결의로 제정됐다. 지금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구하는 의료 지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인도주의 활동가와 의료 종사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날이다. 특히 올해 세계 인도주의의 날은 코로나19가 초래한 전례 없는 위기 상황 속에서 다른 이들을 돕고 있는 구호 활동가를 기리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유엔에서 제시한 올해 세계 인도주의의 날 주제는 ‘현실의 영웅들’(#RealLifeHeroes)로, 인도주의 활동가를 ‘영웅’으로 칭하며 이 날을 기념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 지역의 한 요양 시설 거주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응원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코로나19에 대응해 마르케 지역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감염 예방 및 통제 조치를 시행했다. ©Vincenzo Livieri/MSF
모든 인도주의 활동가의 헌신적인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며, 이들이 일하는 과정에는 최전선에서 직면하는 위험과 어려움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호 및 의료 종사자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우선 공공 보건과 복지를 담당해야 하는 각국 정부의 기본적인 책임이 외면될 여지가 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 국가에서는 수년간 공공 의료 프로그램에 재원을 투자하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만들었다. 여러 지역에서는 개인 보호 장비가 부족해지며 의료 종사자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감염의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인도주의 활동가를 ‘영웅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준이 된다면 정부는 실패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국민의 의료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않는 상황이 묵인될 위험이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공공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부족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바즈 로보(Vaz Lobo)에서 노숙자를 중심으로 보건증진 활동과 환자중증도 분류 및 기본 진료를 제공하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위생키트 보급 등을 진행하고 있다. ©Mariana Abdalla/MSF
국경없는의사회는 코로나19에 특히 취약한 프랑스의 노숙자를 위한 이동진료소를 설치하고 파리 및 근교에서 1차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프랑스 내 긴급 대피소에서 취약계층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식별했다. ©Benjamin Matuszenski
안타깝게도 인도주의적 가치는 보편적인 규범이 되지 못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과 압제가 증가하며 인간의 존엄, 평등, 다양성, 연대 등의 원칙에 의문을 가지거나 방치하는 일이 많아졌다. 전쟁과 무력 분쟁 가운데 민간인과 인도주의 활동가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 인도주의 법’은 무시되거나 괄시받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환자와 인도주의 활동가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 대한 무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전세계 난민을 향한 혐오적인 대우로도 해석된다.
2015년 10월 3일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이 미군의 공습을 받아 42명이 사망했다. ‘국제 인도주의 법’이 지켜지지 않아 환자와 인도주의 활동가가 공격을 받고 있다. ©Victor J. Blue
아프가니스탄 쿤두즈 1주기 행사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분쟁 상황에서 민간인과 인도주의 활동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로 "병원, 환자, 의사는 공격 목표가 될 수 없다(Not A Target)"는 메시지를 전했다. ©Alex Yallop/MSF
모든 인간은 존중받고 존엄성을 지킬 자격이 있으며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종교, 국적, 사회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이러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인도주의적 행위의 핵심은 인간성과 공정성의 원칙이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원칙들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국경없는의사회가 환자의 의료적 필요를 최우선시하고, 정치적 이해관계, 숨은 의도나 계획의 영향 없이 환자와 지역사회를 지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돌보는 ‘공동의 책임의식’이라는 패러다임 아래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인류를 위한 전세계적 협력은 윤리적 의무로 볼 것이 아니라 존재와 관련된 문제로 봐야 한다.
인도주의 활동가를 영웅으로 미화하며 우리는 이들을 거의 신화적인 수준으로 격상시킨다. 나아가 인도주의적 가치에 대해서도 높은 기준을 세워 매우 특별하거나 달성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특별한 업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돕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공공 보건을 최우선으로 두고, 현재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전세계에 공평하게 분배되는 공공재임을 확실히 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기념해야 할 영웅의 행동일 것이다.
예멘 이브(Ibb)의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코로나19 치료 센터인 알사홀 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 크리스티나 마르텔 마틴(Cristina Martel Martin).
“좋은 팀이 있는 한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없습니다. 퇴원하는 환자를 보는 것은 우리 팀에게 선물 같은 일이며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이런 순간들이 우리에게 더 큰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가 퇴원할 때마다 보건 인력이 가족을 만나는 지점까지 환자를 동행하며 축하하죠. 매일 마주하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힘이 되는 기념의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