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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시에라리온: 소아 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항가 소아병원에서의 활동

2022.05.18

이름: 신경수
포지션: 소아과의 (ICU Pediatrician)  
파견 국가: 시에라리온
활동 지역: 케네마
파견 기간: 2021년 8 월 - 2022년 2월  

1.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시에라리온 동부 케네마(Kenema)에 위치한 항가 소아병원(Hangha Children’s Hospital)에서 2021년 8월부터 2022년 2월까지 근무하였습니다. 2017년 발간된 UN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시에라리온의 5세 이하 소아 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105명으로 유럽 지역에 비해 30배 정도로 매우 높았습니다. 항가 소아병원은 2019년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케네마 지역의 5세 이하 소아 사망률을 줄이고, 의료 인력의 양성을 위하여 만든 병원입니다.  

항가 소아병원은 응급실, 집중치료실, 일반 소아 병동, 입원 환자 영양 치료 병동(Inpatient therapeutic feeding center, ITFC), 격리 병동 등을 갖춘 100병상이 넘는 규모입니다. 응급실에는 질병의 중증도를 분류하는 환자 분류소(Triage)가 있어 증상의 경중에 따라 환자를 구분합니다. 경증을 의미하는 ‘녹색’으로 분류된 환자(Green Case)는 간단한 처치나 경구약 처방을 위해 다른 클리닉이나 병원으로 이송하고,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 (Yellow Case)는 일반 소아 병동으로 입원 치료를 받습니다. 집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Red Case)는 응급실에서 응급 처치를 한 후에 집중치료실로 입원합니다.  

제가 담당한 집중치료실은 2개의 격리 병상과 16개의 집중치료 병상이 있고, 산소 발생기, 주사기 펌프 등의 장비가 비교적 현대화되어 있었습니다. 한 명의 간호사가 4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어 의료 인력 배치도 나쁘지 않았지만,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의사 역할을 하는 의료 담당관(community health officer, CHO)이 환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매일 중환자실이나 일반 소아병동의 병상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러한 환자 분류 체계가 환자 수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항가 소아병원은 외과 의사가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과적 질환은 치료가 가능하지 않았지만, 병원으로 찾아오는 가벼운 외상 환자나 화상 환자는 치료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술이 필요한 중증 외과계 환자들은 수도인 프리타운(Freetown)에 있는 병원이나 케네마 주정부 병원(Kenema Governmental Hospital)으로 전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가 소아병원 집중치료실 ⓒ국경없는의사회 

 

시에라리온은 의과대학이 한 곳밖에 없어서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입니다. 항가 병원에는 의사 역할을 하는 의료 담당관이 약 50명이 있고, 이들이 환자의 진료를 담당하였습니다. 두 명의 소아과 전문의와 2명의 일반의가 항가 병원의 환자 진료와 의료 담당관의 교육과 진료 조언을 하였습니다. 응급 상황과 의료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네 명의 의사들이 매일 당직 근무를 해야만 했고, 거의 모든 주말을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시에라리온 케네마 현장 활동은 건설팀, 관리팀, 아카데미팀, 의료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아카데미팀’이 조금 생소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아카데미(MSF Academy)’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현장에서 현지 의료 직원에게 전문 보건 교육을 제공하여 취약한 현지 의료시스템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출범한 프로그램입니다. 의료 담당관의 교육은 한 명의 소아과 전문의가 맡고 있었지만, 의료 술기 교육이 있는 경우에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소아과 전문의가 교육을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2. 시에라리온 케네마 지역의 주요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인가요? 

말라리아, 영양실조, 유행성 출혈열이 주요 보건 문제입니다. 첫 활동 현장이었던 나이지리아에 비하면 말라리아 환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항가 병원에서는 환자 분류를 하여 경증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경련을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는 중증 말라리아 환자가 많았습니다. 말라리아 병원체가 뇌에 침투하는 뇌 말라리아 환자가 많았는데, 말라리아를 치료하더라도 정상으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기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말라리아는 모기장 보급, 계절적 말라리아 화학예방요법(seasonal malaria chemoprevention, SMC), 간헐적 기생충 제거(Intermittent Parasite Clearance, IPC), 예방 접종 등으로 예방이 가능하지만, 현지 주민에게는 예방 활동의 필요성이나 효과가 와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기장을 많이 배포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열대야로, 또는 모기장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모기장을 사용하지 않고 야외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양실조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곳의 소아 환자가 겪는 모든 질병은 영양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양이 부실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폐렴이나 피부 질환 등 세균 감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항가 병원은 영양 치료를 위하여 영양 치료 병동을 따로 두고 있지만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많아서 항상 병상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호흡기 질환인데요. 제가 도착했을 무렵 시에라리온은 우기였습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호흡기질환 환자가 증가했습니다. 시에라리온은 사하라 사막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10월 말부터 차가운 모래바람이 불어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큽니다. 이때는 모기가 번식하거나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어서 말라리아 환자 수는 감소하지만, 호흡기 질환 환자는 증가합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하여 의료진이 손쓸 새도 없이 사망하는 중증 폐렴 환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 민간요법에 의존하여 약초를 먹다가 독성 반응으로 인한 간부전이 나타나서 치료 방법이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환자들도 자주 보았습니다.  

3. 코로나 19 환자도 있었나요? 

이곳에서는 코로나19 의심환자가 나오면 선제 격리를 먼저 합니다. 환자 검체를 프리타운으로 보내서 검사를 진행해야 하고, 4~5일 후에야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 검사 자체가 용이하지 않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코로나19에 대응 전략으로 환자의 신속 진단보다는 백신 접종에 더욱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지 직원들을 포함한 모든 항가 병원 근무자들에게 최소 2회 이상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코로나19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라사열(Lassa fever)이나 에볼라 같은 유행성 출혈열(hemorrhagic fever) 등이 더욱 심각하고 눈앞에 닥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유행성 출혈열이 의심되는 모든 환자를 격리 병동으로 이송하고, 격리 병동에서 라사열이나 에볼라 바이러스 검사를 합니다. 검사 결과가 음성일 경우 다시 일반 병동이나 중환자실로 이송되어 치료를 계속합니다.  

라사열 환자를 격리 병동으로 이송하는 의료진들 ⓒKyung-Sue Shin/국경없는의사회 

4.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계절적으로 10월 하순부터는 중증 세균성 폐렴 환자가 많습니다. 기존의 항생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항생제 내성균을 의심하는 사례들이 많았는데, 항가 병원에는 내성균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가 없습니다.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를 적절히 조합하여 항생제 내성균을 의심하는 폐렴을 치료해야만 했습니다.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항생제 조합을 생각해내어 완치된 환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 항생제 조합을 병원 의료진들은 ‘마법(magic)’이라고 불렀습니다. 항가 소아병원에서는 2021년 8월부터 올바른 항생제 처방과 사용, 항생제 내성균 방지를 위하여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Antibiotic Stewardship program)’을 운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항가 병원에도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감염 전문가가 합류하였는데, 중증 폐렴 치료에 사용한 ‘magic’을 보고서는 ‘어떻게 생각해내었느냐’고 감탄하였습니다. 새로운 조합의 항생제로 완치된 환자가 많아지면서 현지 의료진들도 중증 폐렴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 이 조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중증 폐렴 환자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는 ‘아이사타’라는 1살 여자아이입니다. 너무 늦게 병원에 와서 예후가 좋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폐 전부에 폐렴이 생겨 숨을 잘 쉬지 못하였고, 거의 한 달 동안을 한쪽 폐로만 호흡하였는데, 아이가 잘 버텨 주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항생제의 효과도 없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magic’으로 항생제 조합을 바꾸어서 치료를 시작하였고, 다행히도 페렴이 좋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소 공급을 중단하기까지 집중치료실에서 두 달을 보내고, 다시 일반병동에서 두 달을 더 입원하고서는 결국 넉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긴 입원 기간 동안 잘 견디고 퇴원하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폐렴으로 4달간 입원하고 완치된 환자 아이사타와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폐렴으로 4달간 입원하고 완치된 환자 아이사타와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항가 병원은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진 병원이어서 엑스레이 장비가 있습니다. 단순 엑스레이 사진도 환자의 자세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다릅니다. 이 사실을 잘 몰랐던 현지 의료진에게 환자 상태를 잘 알 수 있는 촬영 자세를 알려주었고,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폐농양과 흉수(pleural effusion)를 구분할 수 있는 촬영 자세입니다. 제가 있을 때부터 이 방법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환자를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의료 담당관들과 엑스레이를 판독하고 있는 신경수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 

5. 케네마에서의 하루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매일 오전 6시에 병원에 도착하여 7시 반까지 혼자서 회진합니다. 방해받지 않고 환자들의 상태나 치료를 점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회진이 끝난 다음에는 아침 인계 미팅에 참석하고, 의료진들과 환자들에 대한 치료 계획을 상의하고, 검사나 시술들을 하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입니다. 12시 30분에는 오전과 오후 근무자들의 인계 미팅이 있습니다. 저는 오전에 정해 둔 치료 계획이 제대로 인계가 되는지 확인하고, 각별히 주의가 필요한 환자들에 대해 당부를 하기 위하여 가능하면 이 미팅에 꼭 참여하려고 하였습니다. 1시부터 2시까지 잠시나마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보냅니다.  

오후에는 참석해야 할 회의들이 많습니다. 퇴근 시간은 5시이지만 퇴근 시간에 맞춰 숙소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저녁을 직접 해결해야 했지만, 음식을 잘 만드는 활동가들이 많아서 다 같이 모여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저녁 식사를 함께 즐겼습니다. 그날 일어났던 이야기나 이슈가 되는 일들에 대해서 토론도 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직인 날 밤에는 응급 환자를 보러 병원으로 가는 날도 있습니다.  

 

현지 의료진과 함께 한 신경수 활동가 ⓒKyung-Sue Shin/국경없는의사회 

항가 소아병원 병동을 나서는 신경수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저녁을 함께 하고 있는 활동가들. 마침 한국인 활동가 3명이 모두 모였다 ⓒKyung-Sue Shin/국경없는의사회 

7. 이곳의 환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2021년은 국경없는의사회가 시에라리온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35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동안 시에라리온에서 쌓았던 현지 주민들과 국경없는의사회와의 교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지 주민들은 국경없는의사회가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보다 우리 병원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항가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 때 이송을 거부하고 항가 병원에서 계속 치료해주기를 바라는 환자 보호자들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현지 주민들이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가끔 항가 병원에서 일하는 현지 직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할 정도로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 주민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8. 이번이 두 번째 활동입니다. 어떤 점이 가장 달랐나요?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있나요? 

시에라리온에서의 활동은 저에게는 그 의미가 특별합니다. 처음 국경없는의사회를 알게 된 계기가 2014년 시에라리온의 에볼라 대유행이었고, 그때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일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지금도 시에라리온이 가끔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첫 번째 활동에 비하여 치안 상황이 좋았습니다. 낮 동안은 안전한 편이어서 가끔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출퇴근하기도 하였고, 주말에는 인근 도시로 여행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병원 규모도 더 컸고, 병원 시설이나 현지 의료인들도 잘 교육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첫 활동에서 목격했던 아프리카의 의료 불평등의 현실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불평등한 의료 상황을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이나마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9. 나에게 국경없는의사회란? 

지금은 떠나 있지만 언제라도 다시 돌아갈 곳, 가야만 하는 곳과 같은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서 당장은 돌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언제라도 저를 더 필요로 하는 현장이 있으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려고 합니다.    

10. 미래의 활동가에게 한마디 

2022년에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는 설립된 지 10년째가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국가 역량에 비하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활동가 수가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젊고 훌륭한 재원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활동가 중에는 젊은 인재들이 많지 않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젊고 유능한 한국 활동가들이 필요합니다. 활동가로 지원하셔서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주고, 현장에서 느끼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