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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리포터] Issue #5 난민의 삶, 순간이 아닌 과정

2022.06.20

 

현장에 나와 있는 국경없는리포터입니다!  

오늘은 난민의 날을 맞아 지금은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에서 인도적 지원 총괄을 맡고 있는 인류학자 김태은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난민에 대한 소식을 사진과 단편적인 이야기로만 접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어보면 각자의 길고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김태은님의 글을 통해 찰나의 이야기가 끝없는 과정의 연속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케냐 다다브 캠프 다가할리(Dagahaley) 병원에서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어머니. ©Chali Flani Productions for MSF 

 


새하얀 눈으로 덮인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의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낯선 공항에 내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불러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운전기사였던 젊은 20대 청년과 목적지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제가 소말리아에서 온 난민들과 일하면서 자주 듣던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케냐의 다다브(Dadaab) 난민캠프를 거쳐 미국으로 재정착하러 온 난민가정에서 태어난 청년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당시에 하고 있던 일이 미국에 재정착하는 난민들을 지원하는 일이었고, 또 개인적으로 케냐에서 2년 정도 지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편의상 이 청년을 아흐메드로 부르겠습니다.

 더 알아보기 >  케냐: 다다브 캠프 폐쇄까지 남은 6개월, 난민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2021년 12월)

소말리아에 가본 적이 없는 소말리아 청년

아흐메드는 사실 소말리아에 가본 적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부모님이 내전에 휘말린 소말리아를 떠나 난민캠프에 도착한 후에 태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10살이 되기 전까지 케냐 동북부에 있는 다다브 캠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아흐메드는 지금도 소말리아어는 부모님이 하시는 말을 알아듣는 정도는 되지만, 말하는 것은 어렵고, 다다브 캠프에서 배운 스와힐리어를 조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했을 때, 어린 아흐메드의 눈에 비친 유타주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길에 쌓인 눈을 보고 깜짝 놀라서 밀가루인 줄 알았어요.”

그는 눈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 살다가, 지금은 동계올림픽이 열릴 정도로 눈이 많이 오는 도시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아흐메드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만, 앞으로의 그의 삶을 응원하고 헤어졌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통 우리가 난민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난민캠프에서 태어나서 눈이 밀가루처럼 보였던 난민소년 아흐메드의 삶과 같은 ‘과정’이 포용 되고 있을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난민의 삶은 어쩌면 신문과 뉴스에서 보는 사진 한 장에 담긴 ‘순간’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딸과 남편을 잃고 살기 위해 떠나야 했던 마마 마툰다

“어느 날, 캄캄한 밤이 되도록 큰딸이 돌아오지 않았어.”

함께 집으로 향하던 저녁, 재정착 난민지원일을 하면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동료인 마마 마툰다가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온식구가 돌아오지 않는 딸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결국 참다못한 마마 마툰다의 남편은 딸을 찾아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결국 다음날 돌아왔지만, 그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마마 마툰다는 짐을 싸서 다른 자식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는 것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걸을 수 있는 아이는 걷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업고 그렇게 떠난 그녀의 고향은 내전으로 집단학살과 전시성폭력이 점철되고 있던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동부 북키부주(North Kivu)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수년간 우간다의 난민캠프에서 생활했던 마마 마툰다와 아이들은 미국에서 재정착할 기회를 얻었고, 이제는 모두가 잘 성장하여 영어도 잘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각자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었고, 이제는 여기가 터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비가 많이 내려서 고향의 우기가 떠오르는 날이면 마마 마툰다의 마음에는 딸과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시신을 찾지도 못한 딸은 어쩌면 어디서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 전쟁이 두려워도 조금 더 참고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한다면서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더 알아보기 >  콩고민주공화국: 치안 불안과 수사 지연으로 일부 지역 활동 잠정 중단 (2022년 4월)

 

케냐 다가할리(Dagahaley)에 도착한 가족이 임시거처를 만들고 있다. ©Paul Odongo/MSF

순간으로 재단할 수 없는 난민의 삶

난민의 삶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은 피난의 시간을 겪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기약 없이 난민캠프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아흐메드처럼 가족이 떠난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난민캠프에서 태어나서 살게 되면, 사실 그곳이 고향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재정착하러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난민지위를 얻고 평화로운 곳에서 재정착을 했다고 마치 무 자르듯이 여기까지가 난민의 삶이었고, “지금부터는 난민이 아닌 삶”이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새로운 문화와 언어 속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어쩌면 마마 마툰다와 같이 고향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알 수 없는 새로운 과제와 고민에 부닥쳐 일상 속에 잊고 있었던 난민의 삶을 다시 꺼내 보는 순간도 올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사실 난민의 삶은 순간으로 재단되는 것이 아닌 끝없는 과정의 연속인 셈입니다.

오늘은 난민의 날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앞에 신문과 뉴스를 통해 세계 곳곳의 난민에 대한 사진과 소식이 제법 많이 전달되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아마도 아직은 먼 곳의 이야기로 스치는 생소한 인상만 남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났던 난민들의 이야기, 그러니까 아흐메드와 마마 마툰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시면서 부디, 순간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난민의 삶을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케냐 다다브 캠프에서 지내는 한 여자아이.©Paul Odongo/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