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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시리아 : 심리 치료 - 입을 꽁꽁 닫아버린 소녀

2013.11.12

1화, 장애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 보고오기 
2화,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 보고오기

심리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정든 고향을 떠나 피난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많았다. 이 어린 환자들은 자신이 부상을 당했거나 끔찍한 폭력을 직접 목격한 아이들로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 샬롯이 치료했던 환자들 중에는 심지어 6살 소녀도 있었다.

 

눈 앞에서 자신의 오빠가 폭탄에 맞아 몸이 찢기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로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던 6살 소녀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원색을 많이 사용한 그림들을 잔뜩 그리곤 했지만 그 나이 또래 다른 아이들의 그림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단순한 그림들이었습니다.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사람의 형태는 전혀 없이 온갖 색으로 범벅을 해놓은 아이의 그림은 마치 아이의 오빠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고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와의 치유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제가 스무고개 게임이나 수수께끼 게임 등을 통해 이해하고자 애썼던 구체적인 무언가를 그 그림들이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저를 자신의 세계에 초청하고 매우 즐거워했지만 그것도 아이가 원할 때만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의 그림에 표현된 엄청난 고통을 존중하면서 아주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가야만 했습니다. 아이는 그림에 대한 제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서 답하거나 때로는 짧게 말을 하기도 했는데 너무도 작게 말해서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는 펜을 너무 세게 눌러 종이가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알 수 없는 형체를 거칠게 칠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내면 깊숙히 자리한 감정과 머리 속 생각을 비워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매 세션이 끝날 때마다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아주 기쁘게 저에게 주고 갔습니다. 마치 자신의 고통을 그림에 담아 버림으로써 고통을 달래는 것처럼요. 하지만 아이는 대신 다른 무언가, 예를 들어서 작은 인형이나 장신구 같은 것을 받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아이의 맘속에 있는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어쩌면 우리의 관계가 무언가를 공유하고 서로 주고 받는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 세션마다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의 선물처럼 내어놓고, 이처럼 힘들고 아픈 과정을 이겨내기 위해서 자신을 북돋아줄 무언가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제 겨우 여섯 살에 아이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벌써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살아계셨고 지금은 아이와 함께 있습니다. 이 소녀에게 신체적 부상은 없었지만 그녀의 보이지 않는 상처는 영원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Robin Meldrum /MSF
친절한 너구리 아줌마가 아기 너구리를 돕는 방법

그림책을 사용하는 방법은 아이들과 소통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언가 끔찍하고 무서운 일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기 너구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구체적으로 그 무섭고 끔찍한 것이 무엇인지 나와있지 않아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 이 책은 멋진 삽화로 이러한 트라우마 경험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이 아기 너구리는 자신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아기 너구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그 사건을 기억에서 지우려고 애씁니다. 그러면 한동안은 괜찮다가 다시 그 기분나쁜 감정이 돌아옵니다. 입맛도 없고 배가 아픕니다. 뭔가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슬퍼지고 불안해집니다. 자기를 억누르는 그 무언가를 잊어버리기 위해 아기 너구리는 지나치게 빨리 달린다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과잉행동을 합니다. 잠에 들기 어렵고 간신히 잠에 들면 악몽을 꿉니다. 아기 너구리는 항상 화가 나 있고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버릇없이 굴고, 그러다가 종종 혼이 납니다. 그러면 더 슬퍼집니다. 아기 너구리는 혼란스럽습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행히 아기 너구리의 엄마, 아빠는 아기 너구리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는 한 친절한 너구리 아줌마에게 아기 너구리를 데리고 갑니다. 때로 어른 너구리들은 어떻게 하면 아기 너구리들이 자신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도록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친절한 너구리 아줌마와 함께 하는 동안 아기 너구리는 놀고,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이를 통해 아기 너구리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너구리 아줌마는 아기 너구리에게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기 너구리가 목격한 끔찍한 사건은 아기 너구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안심시켜줍니다. 그런 다음 아기 너구리가 자신을 갉아먹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너구리 아줌마는 아기 너구리를 칭찬해줍니다. 아기 너구리는 기분이 좋아지고, 더 강해진 느낌이 들고 분노도 덜 느끼기 시작합니다. 잠도 잘 자고 신기하게도 배 아픔 증상도 없어졌습니다. 아기 너구리는 자신이 본 끔찍한 사건에 대해 잊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항상 그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림책 속 삽화가 유쾌하고 또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글이 영어로 씌어있기는 하지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조차도 정말 쉽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기 너구리의 이름을 아랍식 이름인 아흐메드로 바꿔주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오빠가 폭탄으로 인해 죽는 모습을 목격한 아이에게 그 책을 주었습니다. 통역의 도움을 받아 저는 소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저는 아이에게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소녀는 처음에는 아기 너구리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아기 너구리가 배가 너무 아픈 나머지 배를 움켜잡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기 너구리가 친절한 너구리 아줌마의 상담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기 너구리가 밤에 푹 잘 자고 일어나서 햇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션이 끝난 후 아이는 책을 가져가고 싶어했고 저는 기쁘게 책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에게 책을 읽어주라고 말했습니다! 그 그림들은 아이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아이에게 그 책을 여러 번 읽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은 놀랄 만큼 유용하고 또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함께 나눈 아이들 모두 ‘아흐메드’에게 일어난 일을 쉽게 파악했고 자신들을 압도하고 있는 감정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예전처럼 힘들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