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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병원 진료비를 내는 것보다 빵 살 돈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2013.11.25

시리아 난민인 마흐무드 함마드(30세)는 요르단 북부 이르비드의 국경없는의사회 산부인과 병동에서 태어난 아기의 아버지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어떻게 요르단에 오게 되었는지,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한다.

제 이름은 마흐무드 함마드입니다. 저는 시리아 홈스(Homs)의 바바암로(Baba Amro) 출으로, 두 아이를 두고 있습니다. 큰 아이는 5살이고 작은 아이는 여기 이르비드(Irbid)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3시간 전에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저는 2012년 5월에 가족과 함께 요르단에 도착했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시리아 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요르단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었습니다. 시리아 국내 치안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로서 시리아에 계속 남을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가족의 안전을 생각하면 홈스를, 그리고 제 모국인 시리아를 떠나는 데에 망설임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홈스에서 계속 산다는 것은 자살시도나 마찬가지입니다! 싸움이 계속되면서 민간인과 전투원, 아이와 어른의 구별도 없어졌습니다. 살아움직이는 모든 것, 또는 심지어 모든 물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요르단 국경까지 오는 데에 2주가 걸렸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계속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정말 힘든 여정이었고, 우리는 신분증도 없이 이동했기 때문에 위험했습니다. 집을 떠날 때 우리는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몸만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딸아이는 4살이었는데 총소리와 공중폭격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이의 얼굴에 떠오르던 공포와 두려움의 표정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딸아이는 지금도 악몽을 꾸고 한밤중에 울면서 깨곤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저는 시리아를 떠나기로 한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곤 합니다.

우리 가족은 우선 람사(Ramtha)에 있는 ‘알-바샤브쉬 캠프(Al-Bashabshe Camp)’에서 두세 달을 보냈습니다. 고향에서 지내던 생활수준과 비교하면 캠프에서의 생활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캠프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캠프를 떠나면서 제가 꿈꿨던 생활은 ‘스스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정상적인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캠프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고 마프락(Mafraq)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어려움은 계속되었지만 그 전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습니다. 마프락에 정착해 지역사회에 통합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프락은 집세가 비쌉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가족이 사는 원룸 아파트의 월세가 160 디나르(약 160 유로)인데 대장장이로 한달 내내 일해야 겨우 그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일거리를 구했다고 해서 다음날도 일거리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운좋게 친절한 요르단 후원자를 만났습니다. 그가 5살 딸아이의 교육비를 지원해준 덕분에 아이를 사립 유치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딸아이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집안에만 있어야 했을 겁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개인병원에 갈 돈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에게는 진료비를 내는 것보다 빵을 살 돈을 남겨놓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난민으로 살아남으려면 생활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만 합니다.
 
이르비드에 살고 있는 사촌을 통해서 이 병원에 대해서,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가 무료로 모자 진료를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진료가 공짜라는 것을, 혹은 진료 수준이 이렇게 훌륭하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아내를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왔을 때 첫눈에 진료 수준이 아주 훌륭하고 스태프가 정말 친절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병원에 오기로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마프락에서부터 장장 60km를 달려왔답니다.

이 병원을 알게 되어서, 그리고 아내가 무사히 아이를 출산해서 정말 행복합니다. 아들이 정말 귀여워요. 저는 아이의 이름을 자인 알-아비딘이라고 지었습니다. 지금 아이는 신생아 병동에 있는데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들이 돌봐주고 있습니다. 아이는 건강하고 몇시간만 있으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름: 자인 알-아비딘 함마드

자인 알-아비딘은 요르단 북부 이르비드 지역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모자병원 신생아실에 입원한 첫 아기였다. 자인의 아버지는 시리아 홈스의 바바암로 지역 폭력사태가 심각해지면서 2012년 5월 가족을 데리고 홈스를 떠나야만 했다.

▲ 이르비드의 국경없는의사회 모자병원 신생아실에서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갓 태어난 시리아 아기 자인 알-아비딘을 돌보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신생아실 수간호사 이브 반 덴 부스체(Eve Van Den Bussche)는 “자인은 몸무게 3.3kg의 건강한 아기입니다. 다만 전신마취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기 때문에 한동안 집중관찰이 필요했습니다. 아기의 체온이 다소 낮아서 인큐베이터에서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해주고 있습니다. 곧 엄마 옆에 갈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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