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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신건강의 날] “파키스탄에서는 사람들이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요.” - 발루치스탄 주민 심리치료 지원

2014.10.08

10월 10일은 세계 정신건강의 날입니다. 폭력의 경험이나 목격,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생계활동의 파괴 등 충격적인 사건들은 한 사람의 심리적 안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문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도록 국경없는의사회는 외상 피해자들에게 심리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3년, 총 14만 1100여 명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총 1만 4200건의 집단 상담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쿠츠락 진료소 심리치료실에서 상담가를 지도감독하고 있는 심리치료사 사라 디나 ©Ikram N'gadi

“대화와 상담이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파키스탄 사회는 약물에 굉장히 의존하는 편이라, 뭔가 문제가 있다 싶으면 그저 입에 약을 털어 넣는 거죠.” 호주 심리치료사 사라 디나의 말이다. 9개월 간의 활동을 마치고 파키스탄을 나서 디나는 분쟁, 빈곤, 열악한 삶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심리치료 지원이 끼친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 큰 용기를 얻었다. 활동 기간 동안 디나는 파키스탄 남서부의 발루치스탄 주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상담 팀의 임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디나는 인터뷰를 통해 파키스탄 활동에서 배운 교훈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1. 발루치스탄 주에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발루치스탄 심리치료 프로그램은 발루치스탄의 주도 퀘타와 인근 도시 쿠츠락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환자들에게 유익을 주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008년에 시작했습니다. 당시 쿠츠락에서 일하던 의사 한 분이 신체적 불편, 통증, 두통 등을 호소하며 진료소를 찾는 많은 여성들을 진료했는데 도무지 증상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증상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니 그 여성들의 고통에는 심리적 원인이 숨어 있었습니다. 결국, 쿠츠락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몇 년 전에 퀘타의 소아과 병원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2. 어떤 사람들이 국경없는의사회의 심리치료 서비스를 찾습니까?
환자 대부분(82%)은 여성이며 대개는 성인입니다. 하지만 아동들도 있어서 프로그램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심리치료 혜택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배경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이 많은데요, 이들은 몇 년 전에 난민 신분으로 파키스탄에 들어왔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일반적인 우울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전 세계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 같지만, 조금만 더 깊이 살펴보면 이 문제들의 원인이 이곳의 구체적인 상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곳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는 가장 일반적인 요인은 무엇입니까?
여기서는 가난, 폭력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심리적 안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을 가지고 우리들을 찾아옵니다. 전쟁이나 분쟁 상황을 겪었던 사람들, 큰 슬픔과 상실을 겪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부모나 자식의 죽음을 보고 엄청난 비탄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지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그 모든 역경을 헤쳐나가는 이곳 사람들은 참 강인한 면모를 가졌네요.

4. 사람들은 주로 어떤 문제들로 찾아옵니까?
전형적인 문제를 콕 짚어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만, 실례를 하나 말씀 드릴 수는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우리를 찾아 왔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남편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부 여성들의 경우, 이런 생각이 평생 스스로를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다른 식구가 없으면 자녀들을 위해 경제적인 책임도 맡아야 하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압박이 됩니다.

가정 폭력을 겪다가 그 상황을 피하려고 상담가를 만나러 오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자신이 겪은 일을 열린 마음으로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거죠.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남성, 여성)도 있습니다. 전쟁, 분쟁에서부터 가정 폭력에 이르기까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과거가 꿈속에서 나타나거나 문득문득 생각 나서 견딜 수 없어서 상담을 받으러 옵니다.

5. 이 여성들은 어떻게 슬픔에 대처합니까?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요. 30대 후반, 40대 초반 여성들은 자녀를 10명 넘게 두는 경우도 있고 많게는 15명, 16명의 자녀가 있는 사람도 있는데, 아이들 모두가 살아남지는 못합니다. 아이 네다섯을 잃은 여성들도 있는데, 자녀가 한 명 한 명 죽을 때마다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또 삶을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런 경우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6. 심리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화와 상담이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파키스탄 사회는 약물에 굉장히 의존하는 편이라, 뭔가 문제가 있다 싶으면 그저 입에 약을 털어 넣는 거죠. 수년 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하다가 우리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간 약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얘기합니다. 증상에 맞지 않는 약을 과도하게 처방했거나 오진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과연 이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발루치스탄에서는 굉장히 새로운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심리치료 서비스를 받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상담가들은 보통 하루에 환자 5명 정도를 만나는데, 각 환자와 상담하는 데 걸리는 상당한 시간을 고려해 본다면 이 수치는 적은 것이 아닙니다. 환자들은 대개 3~4회 정도 상담가를 만나러 옵니다. 상태가 호전된 환자들은 3~4회의 상담 후에 치료를 종료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계속해서 상담가를 만나러 와야 합니다. 우리는 정신병과 같은 급성 정신과 질환에는 대응할 역량이 없습니다. 그런 환자들은 특수 센터로 이송해야 합니다. 또한 환자들을 여러 해 동안 치료할 수도 있지만, 장기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다.

7. 활동 중에 경험한 긍정적인 사례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제가 일하던 곳의 상황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환자와 추후 상담 약속을 잡을 수 있을지 결코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만났던 여성들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상담 팀에서 제게 알려주곤 했죠. 한 번은 한 여성이 다른 상담가를 만나러 온 적이 있었는데, 저의 활동 기간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그 여성은 자신의 상담가에게 영어 단어 몇 개를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서툰 영어로 제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같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깊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발루치스탄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발루치스탄 두 지역(발루치스탄의 주도 퀘타, 인근 도시 쿠츠락)에서 심리치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쿠츠락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부인과, 소아과 진료를 실시하는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고, 리슈마니아증(모래파리에 의해 전파되는 기생충 질환) 관련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퀘타에서는 주로 신생아들을 돌보는 소아과 병원을 운영하며, 영양 서비스도 제공한다. 2014년 1월~7월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총 3176건의 심리치료 상담을 진행했다. 처음에 계획했던 2014년 목표 상담 건수는 4000건이었는데, 지금까지 얻은 긍정적인 결과에 따라 이 목표는 상향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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