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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전쟁중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정신건강

2024.05.08

6개월 이상 끊임없이 이어진 전쟁으로 가자지구 내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데 있어 전례 없는 어려움을 마주하는 동시에 전쟁이 그들의 삶에 입힌 피해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직원들에 따르면, 그렇게 극심한 환경에서의 활동은 향후 수년간 지속될 상처를 남길 것이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몇몇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계속해서 환자들을 치료하며 끊임없는 두려움, 스트레스,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폭발로 사지가 부러지거나 화상을 입은 사상자들이 반복적으로 대거 유입되는데 충분한 진통제나 마취제도 없이 절단을 감행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 발발 이후 첫 몇 달 동안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한 탓에 생명을 살리는 데 필요한 의료 물자가 심각하게 부족해진 점을 규탄했다. 그들은 이스라엘군에 의해 강제 대피령 혹은 공격이 발생한 병원들을 떠나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환자들을 뒤에 남겨두어야 하는 상상조차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가자지구 중부지역(Middle Area) 소재 알 아크사(Al Aqsa) 병원 복도에서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있다. 2023년 11월. ©MSF

전쟁이라는 무게 아래 놓인 의료진

최근 팔레스타인에서 돌아온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과의 닥터 오드리 맥마혼(Dr. Audrey McMahon)은 가자지구 내 의료진들이 깊은 심리적 부담을 겪으며 근무하고 있다고 말한다.

폭격이나 불안정한 치안 때문에 의료진들은 환자들을 뒤로한 채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공동의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때로 병원에 환자들을 치료하러 가는 대신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것을 택한 데서 죄책감이 비롯되기도 하죠.”_오드리 맥마혼

라파 인도네시아 야전 병원(Rafah Indonesian Field Hospital)에서 근무하는 의사 루바 술리만(Ruba Suliman)을 포함한 약 300명의 팔레스타인 출신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이 가자지구에 있다. 술리만은 남편과 두 명의 자녀를 데리고 집을 떠나 현재 가자지구 남부 소재 라파에 있는 거처에서 지내고 있다.

드론 날아다니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가끔 잠에 들기 힘들 정도예요. 저는 제 주변 사람들을 도와야 할 도덕적 의무도 있지만 한편으론 제 아이들을 지켜야 할 책임도 있죠. 우리는 살아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건 아닙니다. 우리는 지쳤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죠.”_루바 술리만

가자지구 남부 소재 나세르(Nasser) 병원 내부 모습. 2024년 3월. ©MSF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의료진은 220만 명의 가자지구 주민들과 같은 종류의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 긴급대응 직원들 또한 집을 잃었다. 그중 일부는 텐트에서 지내고 있으며 수많은 친구와 가족을 잃었다.

[가자시(Gaza City)에서 파괴된 건] 집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소한 것들을 전부 잃었어요. 제일 좋아하는 커피 컵, 어머니 사진들, 굉장히 좋아하던 신발같은 것들이요.”_팔레스타인 출신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심리적 피해와 인적 피해

가자지구 내 일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렇듯 충격적인 사건들에 장기간 노출되어 심리적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의료진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전쟁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하러 온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환자들이 겪는 일이 자신 혹은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벌어질 거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의료진들은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가족들의 안전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면서도 일하는 걸 멈추지 않습니다. 일터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이미 높은데, 이로 인해 더 높아지는 거죠. 모든 환자 사례가 의료진에게 감정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_기셀라 실바 곤살레스(Gisela Silva Gonzàlez) / 국경없는의사회 가자지구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

가자지구 내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직원들에 따르면, 이러한 수준의 계속되는 심리적 스트레스 및 피로와 관련된 각종 증상이 의료진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불안증•불면증•우울증•강박적 사고•정서적 회피•악몽 등을 겪는데, 이는 정신건강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긴급히 의료진들에게 정신건강 치료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이러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행되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 다비데 무사르도(Davide Musardo)에 따르면, 의료진들의 경우 자신의 활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지원 접근 방식은 환자들과 매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리는 직원들에게 다른 종류의 활동을 제공합니다. 좀 더 개인의 경험에 기반을 둔 활동이죠. 주로 다른 직원들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적 개입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는 심리 교육을 많이 해서 보다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_다비데 무사르도

라파에 임박한 공격, 가중되는 스트레스

심리적 지원 및 치료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는 안전이다. 하지만 의료진조차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회복력과 대처 능력을 키우기란 불가능하다. 가자지구에서는 그 누구도,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 현지 보건 당국에 따르면, 10월 7일 이후 499명의 보건의료 종사자들을 포함해 34,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중 5명은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이었다.

가자지구 최대 의료시설인 알시파(Al Shifa) 병원에서 의료진이 얼굴에 부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2023년 10월. ©Mohammad Masri

오늘날 가자지구에 안전한 곳이 없다는 말은 비단 포격에 대한 얘기만은 아닙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마음에도 안전한 공간이 없죠. 한시도 방심할 수 없으니까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도 잘 수 없습니다. 만약 잠에 들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재빨리 일어나 도망치거나 가족을 보호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_암파로 빌라스밀(Amparo Villasmil) / 2-3월에 가자지구에서 활동한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

빌라스밀은 의료진과 민간인 모두 약 150만 명이 밀집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라파 대상 이스라엘군 공격이 임박해 오는 상황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막 라파 공격 소식을 들었던 동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느 날, 계단에서 임상심리사인 동료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평소에 굉장히 활기가 넘치고 긍정적인데 그날은 계단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군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제게 너무 지쳤다고 말했어요. 그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 전쟁이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묻더군요. 저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_암파로 빌라스밀

국경없는의사회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더 많은 죽음과 파괴를 막기 위해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휴전을 거듭 촉구한다.


▶[영상으로 보는 현장소식] 가자지구: 더 많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