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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상황이 가라앉았다고 믿고 돌아왔는데, 우리 생각이 틀렸습니다.”

2017.04.11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리아 남부 마을로 돌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구호품 키트를 배급하고 있다.

구호품을 배급하던 당시 근처에서 폭격이 일어났다.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어느새 아이들이 폭력에 적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약사는 이렇게 말했다. “제일 이상한 건, 사람들이 폭력에 적응해 가고 있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항공기를 바라다 보더라고요. 다라 시를 폭격하던 항공기들이었죠.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어요.” ⓒ MSF

2017년 4월 11일

알 누아이마(Al Nuaymah) 마을은 한때 시리아 남부에서 약 1만 명이 살던 곳이었다. 그러나 6년간 전쟁이 이어지면서 이 마을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시리아 정부군·반대 세력들·IS 관련 단체들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많은 사람들은 살던 집을 떠나 탈출해야만 했다. 그러나 가진 돈도 거의 없고 마땅히 찾아갈 안전한 곳도 없던 사람들은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쪽을 택해, 훼손된 건물이나 천막 혹은 농지에서 지내며 비참한 여건을 견디며 살고 있다. 이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또한 임시 거처·식량·의료 등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크게 우려된다.

최근 국경없는의사회는 도움이 필요한 이 사람들에게 필수 구호품 키트 893를 배급했다. 키트 안에는 위생물품, 옷, 취사 도구, 담요, 매트리스 등을 담았다. 이 키트는 알 누아이마(Al Nuaymah), 다라 시 동부 농지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에게 배급되었다.

모하메드 알리 아부드(Mohammed Ali Aboud) 가족도 구호품 키트를 받았다. 모하메드 가족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날마다 어떤 어려움을 견뎌 내야 하는지 들어 보았다.

식구들과 집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손주들까지 해서 21명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원래부터 알 누아이마 출신이에요. 전쟁이 있기 전에는 여기서 택시 운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에 우리 마을에서 엄청 심한 교전이 터졌어요. 그래서 부스라(Busra)로 떠나 거기서 3개월쯤 있었죠. 그러다가 상황이 가라앉았다고 믿고 돌아왔는데, 우리 생각이 틀렸습니다. 제 아내와 아들 셋이 여기서 목숨을 잃었어요. 2015년 7월 통폭탄에 맞아 죽고 말았어요. 그래서 아들은 두 명이 남았고, 그 아들들의 자녀, 그리고 죽은 세 아들의 자녀들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딸은 둘 있는데, 다 결혼을 했습니다.

지금 알 누아이마 상황은 어떤가요?

수시로 공습이 터지고 있습니다. 움 알 마야텐(Um al Mayathen), 사이데(Saideh) 이렇게 두 도시로만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요. 그 너머 마을들은 정권의 통제 하에 있거든요.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3년 동안 아이들은 전혀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마을에 학교가 없어요. 아이들 교육을 생각해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배급 활동에는 트럭 20대가 사용되었다. 트럭마다 구호품 키트 10개를 실어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을 방문했다. 키트 안에는 위생물품, 옷, 취사도구, 담요, 매트리스, 양동이 등을 담았다. ⓒ MSF

식량이나 물, 그 밖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어떻게 구하시나요?

인도주의 단체들한테서 받는 구호품에 전부 의지하고 있습니다. 우유, 밀가루, 쌀, 건조 밀 같은 것을 받아요. 아기들 분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집 아이들도 아직 어리거든요. 이제 겨우 8개월 된 아이들이에요. 그리고 지금 여기는 전기가 없어요. 물은 이곳 활동가들이 파 준 우물에서 얻죠. 우리 식구는 옛날 우리 집에서 살고 있어요. 전에는 방이 4개 있었는데, 폭격에 다 무너지고 지금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요. 제 아들과 제가 거기서 지내죠. 나머지 식구들은 집 밖에 있는 천막 2곳에서 지내고 있어요.

난방은 어떻게 하시나요?

기름을 구할 수 있긴 한데 너무 비싸서 우리는 쓰지 못해요. 그래서 불을 피우죠. 겨울 내내 침실에 있던 가구를 태워서 불을 피웠어요. 집 근처에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를 잘라다가 불을 피우는 데 쓰기도 했어요. 여기서 나무를 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아요. 통조림 음식을 좀 더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불이 없어서 쌀이나 건조 밀을 요리하기가 힘들거든요.

의료는 어떻게 하시나요?

시내에 의사도 없고, 약도 많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간호사가 딱 한 명 있어서, 두통이나 배탈이 났을 때 도움을 주고 있어요. 아직 너무 어린 손주들은 자주 아파서 의사 선생님을 보러 가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진료소까지 가려고 해도 30km를 가야 해요. 제 아들들 중 한 명은 통폭탄 때문에 머리 부상을 입었어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구호품 키트는 받으셨나요?

네 받았어요. 이제 담요, 매트리스, 위생물품, 그리고 취사도구도 좀 마련했어요. 정말 큰 도움이에요. 그 어느 단체든 우리한테 뭐라도 준다면 정말 반가운 일이거든요. 미래를 생각하면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그저 믿는 것이 있다면 신뿐이죠. 언젠가 이 분쟁을 해결해 줄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어요.